"밥 한번 먹자는 말에 울컥할 때가 있다"

이상현 2023. 6. 10.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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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필국 앵커 ▶

어릴 적 먹었던 음식엔 저마다 그리운 향수가 배어 있기 마련이죠?

특히 고향을 떠나온 탈북민들은 그 정도가 아무래도 더 클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 차미연 앵커 ▶

네, 최근 한 탈북 여성이 이런 그리움을 담은 수필집을 냈는데요, 글을 통해 고향의 맛과 기억을 요리해봤다고 합니다. 이상현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 리포트 ▶

경기도 용인에 있는 조그마한 미술관.

미술품 전시 뿐만 아니라 수시로 지역 주민들의 크고 작은 행사와 만남이 이뤄지면서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공간인데요.

[정정숙/근현대사미술관 담다 관장] "남쪽에 와서 정착하고 싶지만 아직 여러가지 문화적인 차이, 갈등, 또 빈부의 격차 때문에 제대로 적응을 못하시는 분들, 이러한 분들이 모여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랑방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이곳에서 모처럼 특별한 요리의 향연이 펼쳐졌습니다.

"이거 범벅, 도토리 범벅이라고 우리 이런 거 먹었어요. 도토리 이거 많이 먹었죠. 근데 이게 건강식이잖아요, 남한에서는"

"남한에서는 건강식이지만 우리(북한) 쪽에선 그런 의미가 아니었거든요"

"(배고파서 먹었던 거에요?) 그렇지."

남북 출신 주민들의 합동 요리를 진두지휘하고 있던 50대 여성.

2006년 남한으로 넘어온 뒤 북한학 박사 학위를 딴 탈북민으로, 3년 전 시집 한권을 낸 데 이어 최근엔 고향음식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수필집을 출간했습니다.

[위영금/ 탈북 작가] "너무 그리우니까 제가 외롭고 고독한 시간을 좀 많이 보냈습니다. 너무 그리우니까 음식의 가지가지 사연들이 다 떠오르더라고요. 힘들고 아팠던 기억들이 다 떠오르고 그리고 또 잃었던 가족들의 기억까지 다 불러내는"

밥 한번 먹자는 말에 울컥할 때가 있다.

최근에 그리움을 담은 북한음식을 소재로 탈북민이 펴낸 수필집인데요, 남북통합문화콘텐츠 공모전에서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50가지 북한 음식에 대한 추억을 각각의 요리법까지 곁들여 맛깔나게 엮어냈는데요.

[김성신/출판평론가] "우리가 탈북민들의 삶의 정황이라든지 내면적인 정황, 또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탈북민들의 실질적인 문제들까지 많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이공감할 수 있는 그런 지점들을 만들어낸 것이 무엇보다도 이 책의 중요한 역할이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우선, 남한에선 인사치레로 곧잘 "언제 한번 먹자"고 말하는 밥.

밥을 먹겠다고 고향을 떠났고, 밥을 먹겠다고 비굴했고, 밥 때문에 가족을 잃었던 작가에게 밥은 곧 생명이고 하늘이고 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밥 한번 먹자는 말에 '심쿵'한다는 작가는 북한에서 쌀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섞어 먹었던 김치밥 감자밥 무밥 나물밥 등이 떠올랐고요,

이런 밥과 뗄 수 없는 김치, 고향인 함경도 식의 명태 김치가 가장 그립다는데요.

삶의 끈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엔, 가슴을 관통하며 오장이 시원해지는 이른바 쩡한 맛의 함경도 김치를 만들어 먹으며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고 합니다.

[위영금/탈북 작가] "명태가 들어갔고 발효과정이 양념이 많이 들어가지 않은 데다가 또 기후조건도 관계가 됩니다. 무를 또 많이 넣고 남한보다."

알싸한 맛에 독특한 향이 일품이라는 역시 함경도 특산의 영채김치.

그리고 강냉이라 부르는 옥수수는 거의 일상으로 먹었는데요.

부족함이 없을 때 먹으면 건강식이지만,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먹으면 슬픈 이야기이고, 죽마저 없어 먹는 행위를 그친 사람들이 있으니 강냉이 한 알에 죽고 살았습니다.

강냉이 국수, 또 함흥냉면의 원형인 감자 농마국수는 그런 슬픈 기억의 음식입니다.

"쫄깃한 맛에 먹거든요. 여기에 넣으면 아~주 쫄깃합니다. 가위로 잘라먹지 않고 질긴 그대로 먹습니다."

손 날을 이용해 조금씩 반죽을 잘라내며 꼬리 모양으로 만들어내는 이른바 꼬리떡은 가족에 대한 추억이 많이 담긴 음식인데요.

[윤경희/탈북민] (아, 그것도 기술이네요.) "이걸 쓰지 않으면 이게 나올 수 없다는 것, 이게 기술인 거죠." (근데 이걸 써도 꼬리가 안 나오잖아요.) "이걸 칼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얇게 들어가야 되는 거에요."

지금은 가족 대신 남한의 이웃 주민들이 함께 하며 서로를 알게 해주었고, 이런 음식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들은 남북을 이어주는 하나의 매개체가 되고 있습니다.

[이하영/ 남북하나재단 남북통합문화팀장] "우리가 여러가지 남북관계라든가 그걸 말로 풀어내기는 너무 어렵고 정말 방대한 숙제다. 이런 생각이 드는데 음식으로 뭔가 하나가 된다라고 할 때는 음식 하나하나 먹으면서 아 이게 진짜 우리 민족이지 이게 우리 음식이었어 하는걸 진심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러니까 작은 음식 하나를 가지고 남북한이 서로 소통하면서 남북 주민이 함께 할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이런 생각에서는 굉장히 의미있는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밥 한 공기와 김치 한 조각, 그리고 국수 한 그릇.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요리된 맛과 기억으로 남북의 주민들은 하나가 되고 있었고, 그 밥상엔 한 민족, 우리의 내일이 있었습니다.

통일전망대 이상현입니다.

이상현 기자(shon@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unity/6492165_291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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