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람과 아픈 사람을 구별하는 법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2023. 6. 10.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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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기자들이 직접 선정한 이 주의 신간. 출판사 보도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기자들이 꽂힌 한 문장.

법정으로 간 정신과 의사

차승민 지음, 아몬드 펴냄

“정확한 정신감정이야말로 나쁜 사람과 아픈 사람을 구분하기 위한 시작점이다.”

범죄자에 대한 정신감정 결과는 재판의 증거자료로 사용된다. 범법 행위를 할 당시 어느 정도 책임능력이 있었는지에 따라 벌금만 낼지, 교도소에 갈지가 정해지며 교도소에 간다면 어느 정도 형량이 적절할지도 ‘심신의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지은이는 국립법무병원(치료감호소)에서 5년간 형사 정신감정을 진행한 전문의다. 신기한 직업 세계를 소개하는 에세이는 아니다. “‘정신과 약을 먹고 있어서, 조현병 때문에’라고 호소하는 범죄자의 변명을 보느라 화를 내던 사람들”에게 말 걸기 위한 책이다. 프로파일링과 정신감정의 차이 같은 정신감정에 대한 기초 정보를 비롯해, 자폐나 조울증 등 정신질환별 정신감정 사례를 다양하게 소개한다.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

이반지하 지음, 이야기장수 펴냄

“근데 요즘 돌아가는 거 보니까 한 2050년쯤에 ‘차별금지 하알까 마알까 법’ 정도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보다가 ‘별종’이란 자막에 화들짝 놀란다. 저자에겐 “초겨울 기상이변 속 모기 물림” 같은 말이었지만 곧바로 “위기에 내몰린 제작진들이 발휘해낸 번뜩이는 재치와 어휘력”이었다고 감탄한다. ‘성소수’ ‘퀴어’ ‘젠더’ 같은 얘기를 대놓고 쓰기는 좀 그러셨을 것이다. 별종이란 단어만으로 종횡무진 풀어내는 이반지하의 농담을 따라가다 보면, '따뜻하고 상냥한 혐오의 세계'가 사실은 얼마나 ‘웃긴지’ 눈치 챌 것이다. “이성애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뭐랄까. 인정하는 편이다.” 가부장제, 퀴어성, 젠더와 매체의 경계를 가지고 놀며 작업하는 예술가다. 사람들이 그를 차별과 억압을 뚫고 나온 천재적 광대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다.

 

 

 

 

 

 

더티 워크

이얼 프레스 지음, 오윤성 옮김, 한겨레출판 펴냄

“누구는 손을 더럽히지만, 누구는 무거운 짐을 남에게 맡긴 채 양심을 지키며 산다.”

사회적으로 꼭 필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필수노동 가운데 ‘도덕적으로 문제 있다’고 여겨지는 노동을 ‘더티 워크’라고 한다. 구치소나 교도소 내 정신병동에서 일하는 노동자, 전쟁에서 표적 살인을 하는 드론 조종사 같은 이들이 더티 워커다. 이들의 노동은 사회를 유지시킨다. ‘선량한 사람들’은 이들이 수행하는 노동을 비윤리적이라 앞다퉈 비난한다. 하지만 더티 워커들에게 누가 노동을 위임했는지를 묻는 이들은 없다. 질문의 부재 속에 경제적 불평등은 도덕적 불평등을 반영하며 강화된다. 더티 워크를 하는 ‘비도덕적인’ 하위 인간 사회에 대해, “즐겁고 무심한 대화를 나누는 것 외에는 절대 아무것도 할 의도가 없는” 수동적 민주주의자들에 대한 일갈을 담았다.

 

 

 

 

 

 

 

코인묵시록

김태권 지음, 비아북 펴냄

“모르면 당한다.”

코인(가상화폐)이 뭔지 정확히 설명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코인에 투자하는 사람은 많다. 현실세계의 돈이 가상세계로 흘러가면 현실세계의 사기꾼도 가상세계로 따라온다. 그리고 사기를 계획하는 사람들은 당신보다 코인을 훨씬 잘 안다. 〈십자군 이야기〉로 유명한 김태권 작가가 블록체인 매체에서 일하며 직접 목격하고 부딪힌 기상천외한 사건 사고와 사기꾼들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냈다. 일론 머스크, 존 매커피 등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인물들의 수법부터 거래소를 기반으로 빚어지는 각종 사기 수법 중 다단계 사기와 코인이 결합할 경우 발생하는 끔찍한 사태까지 다양한 사례들을 보여준다. 코인 사기가 ‘나의 일’이 되기 전에 ‘잠깐…’ 하고 생각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출간된 책이라고 한다.

 

 

 

 

 

 

 

저널리즘 선언

바비 젤리저 외 2명 지음, 신우열·김창욱 옮김, 오월의봄 펴냄

“오늘날 저널리즘 제도의 사회적·정치적·문화적 적실성은 감소하고 있다.”

‘저널리즘의 현대적 가치는 언론인들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낮은 상태다.’ 책은 저널리즘에 대한 통렬한 현실 인식으로 시작한다. 언론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왔고, 21세기 공동체적 삶을 회복하는 과정에도 그 역할이 미미했다. 무엇보다 대중은 언론을 거의 신뢰하지 않는다. 영미권 언론학자인 세 저자는 소멸하는 저널리즘을 위한 제언을 내놓는다. ‘개혁’ 혹은 ‘혁명’ 노선이다. 정도의 차이일 뿐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다. 제목에서 보듯 저널리즘의 위기를 날카롭고 비장하게 담았다. 저널리즘이 ‘뉴스 황금기’ 동안 갖은 방법으로 소외시켜온 목소리를 재조명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일 년 내내 여자의 문장만 읽기로 했다

김이경 지음, 서해문집 펴냄

“모든 것이 저무는 가을에도 삶은 지속되니.”

김이경 작가의 글을 읽고 나면 자주 이런 기분이 든다. ‘읽어야지, 살아야지.’ 날마다 책을 읽고 쓰는 것이 그의 일이다. 독서가 일인 사람의 글은 다르다. 잘 읽히지만 문장 하나하나 가벼이 지나치기 어렵다. 쉽게 읽힌다고 쉽게 쓰이는 게 아니라는 걸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그가 한동안 분야를 가리지 않고 여성이 쓴 책을 읽었다. 그 흔적이 ‘독서집’ 형태로 묶였다. 성별이 뭐가 중요하냐고 하지만 편향을 극복하려면 편향된 독서가 필요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동안 이어온 남성 편향의 독서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자 여성인 나의 잠재력을 확인하고픈 열망 때문이었다.’ ‘상상도 못한 세계를 열어젖힌 거인들’의 문장을 통해 비관을 넘어 다시 나아갈 수 있었다는 작가처럼 ‘아침에 눈뜨는 게 두려운 날’, 이 책을 펴보면 좋겠다. 그의 문장에 기대 다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시사IN 편집국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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