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vs 모기, 최후의 승자는

백창은 기자 2023. 6. 10.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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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우리 피를 빨아먹고 각종 질병을 옮기는 대표적인 해충, 모기. 모기가 지구에서 사라질 수는 없는 걸까. 과학자들은 인류를 지키기 위해 오랫동안 모기와 팽팽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모기가 사라지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 불임 모기로 퇴치?

모기는 어떤 동물보다 사람을 많이 해치기로 유명하다. 지난해에는 전 세계에서 100만 명의 사람이 모기가 옮긴 질병 때문에 목숨을 잃었을 정도다. 고심하던 과학자들은 급기야 모기를 모기로 물리치자는 방안을 내놨다.

세계모기프로그램은 드론을 이용해 브라질에 불임 모기를 퍼뜨릴 예정이다. WMP 제공

● 살충제는 그만! 박테리아로 모기 잡자

뎅기열은 모기로 인한 대표적인 감염병 중 하나다. 보통 열이 나고 두통, 근육통이 같이 나타나는데, 치료가 늦어지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확률이 20%에 달한다. 특별한 치료제나 백신이 없어 더 위험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매년 1억~4억 명의 사람들이 뎅기열에 걸린다.

세계모기프로그램(WMP)은 뎅기열 환자를 줄이기 위해 2024년부터 10년간 브라질에 불임 모기 50억 마리를 매년 퍼뜨릴 것이라고 밝혔다. 불임모기는 더이상 자손을 만들 수 없는 모기를 뜻한다. 이를 위해 WMP는 뎅기 바이러스를 옮기는 이집트숲모기에 볼바키아 박테리아를 감염시켰다. 

볼바키아 박테리아는 주로 곤충의 생식세포에 기생하는 세균이다. 특히 암컷의 난자에 기생하며 짝짓기할 때마다 퍼져나간다. WMP는 볼바키아 박테리아에 감염된 모기가 뎅기열에 걸린 사람을 물어도, 모기의 몸속에서 뎅기 바이러스가 복제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볼바키아 박테리아가 모기의 몸속에서 다른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기생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볼바키아 박테리아에 감염된 수컷 모기가 암컷과 짝짓기를 해 태어난 알은 부화하지 않았다.

WMP는 2017년 인도네시아 욕자카르타 지역의 특정 구역에 볼바키아 박테리아에 감염된 모기 500만 마리를 뿌렸다. 3년이 지난 뒤 이 구역의 뎅기열 발병률은 다른 구역보다 77%나 낮았다. 볼바키아 박테리아에 감염된 모기가 뎅기열 예방에 효과가 있었다는 뜻이다. WMP는 매년 200만 명의 뎅기열 환자가 나오는 브라질도 볼바키아 감염 모기가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볼바키아 박테리아, 이렇게 뎅기열 막는다. 미드저니, 행니, WMP, 어린이과학동아 제공

○ 킬 스위치로 박멸?!

이집트숲모기는 뇌신경 장애를 유발하는 지카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일부 과학자들은 이집트숲모기의 개체수를 줄이는 걸 넘어 아예 모기를 박멸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 모기의 유전자를 바꾸는 방식이다. 

● 모기 잡는 ‘킬러 모기’

영국의 생명공학기업 옥시텍은 지난 2021년 미국 플로리다주에 유전자를 조작한 수컷 이집트숲모기알 500만 개를 풀어놨다. 1년이 지난 뒤 근처에 있는 모기 알 2만여 개를 모아 보니, 모두 조작된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어떻게 모기의 유전자를 바꿨을까.

옥시텍은 수컷 모기의 알 DNA에 tTAV라는 단백질, 이른바 ‘킬 스위치’를 삽입했다. 이 단백질은 한 번 모기의 몸속으로 들어가면 계속해서 과잉 생산된다. 이후 킬 스위치를 갖고 있는 수컷 모기가 야생에서 암컷을 만나 짝짓기를 해 알이 만들어지면 이 알은 모두 킬 스위치를 물려받는다. 

알 중 암컷은 킬 스위치가 필수 유전자의 발현을 방해해 결국 어른인 성충이 되기 전에 죽는다. 이렇게 암컷 모기의 수가 줄어들다 보면 자손의 수도 줄어 결국 모기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게 옥시텍의 계획이다.

옥시텍은 “변형된 유전자가 3세대 동안 이어지다가 사라졌고, 지역 생태계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유전자가 바뀐 모기가 지카 바이러스 같은 감염병의 발병률을 낮췄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에 옥시텍은 지난 4월 미국 플로리다주에 유전자를 조작한 수컷 모기 300만 마리를 다시 퍼뜨렸다. 옥시텍은 유전자 조작 모기가 퍼진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의 감염병 발병률 차이를 비교할 예정이다.

모기의 유전자를 바꾸기 위해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 연구진은 2018년 ‘유전자 드라이브’라는 기술을 개발했다. 유전자 드라이브는 자연의 유전 법칙을 따르지 않고 특정한 유전 형질만 다음 세대에 빠르게 전달하는 기술이다. 

연구진은 DNA의 특정 부분만 자르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에 불임 유전자를 탑재해 수컷 모기의 알에 삽입했다. 모기 안으로 들어간 유전자 가위는 가임 유전자를 더이상 임신이 불가능한 불임 유전자로 바꾼다. 다음 세대의 모기도 불임 유전자를 물려받아 번식이 불가능해진다. 

유전자 드라이브 기술이 적용된 모기는 아직 야생에 풀리지 않았다. 연구진은 “유전자 드라이브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말라리아를 매개하는 모기를 없애 지구상에서 말라리아라는 질병을 아예 없앨 수 있다”고 전했다.

유전자 조작 모기의 원리. CDC(W), 게티이미지뱅크, 어린이과학동아 제공
유전자 조작 모기의 원리. CDC(W), 게티이미지뱅크, 어린이과학동아 제공

○ 끈질긴 생명력의 비밀은

모기는 전 세계에 무려 110조 마리가 있는 걸로 추정된다. 인류의 계속된 노력에도 모기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모기가 이렇게 끈질기게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모기. 根川大橋(W),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모기. 신이현 제공

● 환경, 온도는 거들 뿐. 번식력 최강자

모기는 지구에 언제 나타났을까. 과학자들은 화석을 바탕으로 모기가 약 1억 7000만 년 전 중생대 때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추정한다. 모기는 대부분 공룡이 멸종했던 백악기-팔레오기 멸종 때도 살아남아 지금은 전 세계에 3500여 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기가 지구상에서 인류보다도 오랜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압도적인 번식력 덕분이다. 모기는 알, 애벌레, 번데기, 성충 시기를 거친다. 알인 상태에서 하루나 이틀 정도 있으면 부화하고, 암컷 모기를 기준으로 짝짓기 후 피를 빨 수 있는 성충이 되기까지 20일 정도가 걸린다. 

모기는 성충이 되고 나면 3번 정도 알을 낳고 죽는다. 종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한 번에 200개가량의 알을 낳으니, 암컷 모기 한 마리가 평생 낳는 알은 대략 600개다. 모기 한 마리가 죽기 전까지 열흘 남짓한 시간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하는 셈이다. 한국방역협회 신이현 연구소장은 “중국얼룩날개모기의 경우 최대 8번까지 알을 낳는 개체도 있었다”고 말했다. 

모기의 강점은 번식력뿐만이 아니다. 적응력도 뛰어나다. 모기는 알, 애벌레, 번데기 시기에는 물을 꼭 필요로 한다. 하지만 물이 깨끗한지 더러운지는 모기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물의 오염도에 따라 사는 모기의 종류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성충이 돼서 날기 시작한 모기는 온도도 크게 가리지 않는다. 종에 따라 아프리카 같은 열대지방, 우리나라 같은 온대지방뿐 아니라 추운 남극 부근에서 성충인 상태로 활동하기도 한다. 모기는 알을 낳기 위해 필요한 단백질을 섭취하려고 피를 빨 대상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날아간다.

●  모기는 어떻게 맨살을 알아볼까

모든 모기가 사람을 물진 않는다. 알을 낳는 시기에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암컷만 피를 빨 대상을 찾는다. 그동안 모기는 호흡, 땀, 피부 온도를 바탕으로 사람을 찾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난해 미국 워싱턴대 생물학과 제프리 리펠 교수팀은 한 가지 요소를 더 찾아냈다. 바로 색깔이다.

연구진은 이집트숲모기 등 세 종류의 암컷 모기를 여러 색상의 점이 그려져 있는 터널 안에 넣었다. 터널 안으로 이산화탄소를 넣어주자 모기들은 붉은색, 검은색, 청록색 점을 향해 날아갔다. 반면 녹색, 파란색, 보라색 점 쪽으로는 날아가지 않았다. 

제프리 리펠 교수는 “피부색과 상관없이 사람의 피부에서는 붉은색 계열의 파장이 나온다”며 “모기는 숨을 쉴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의 냄새로 우리의 위치를 파악하고, 우리 피부가 띠는 색상의 파장을 눈으로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기의 색상 선호도. 미드저니, Jeffrey A. Riffell et.al 제공

○ 박멸이 답일까

모기가 좀처럼 줄지 않는 데에는 우리의 책임도 있다. 인류가 초래한 지구 온난화로 한반도 평균 기온이 오르면서 우리나라도 점점 모기의 활동 시기가 길어지고 있다.

● 뎅기열, 우리나라도 안전지대 아니다

질병관리청은 매년 일본뇌염을 옮기는 작은빨간집모기를 발견하면 곧바로 일본뇌염 주의보를 내린다. 그런데 올해 주의보는 지난해보다 3주나 빨리 내려졌다. 최근 10여 년간 주의보 발령일의 추이를 봐도, 작은빨간집모기가 점점 빨리 나타나는 걸 볼 수 있다. 

곤충인 모기는 변온동물이다. 기온이 따뜻해질수록 체온도 따라서 같이 올라간다. 체온이 올라가면 대사 활동이 활발해져 유충이나 성충인 상태로 겨울을 보내던 모기가 자연스럽게 바깥으로 나온다. 이동규 고신대 보건환경학부 교수는 “지구 온난화로 모기가 활동을 시작하는 시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기의 활동 기간은 더 길어졌다. 서울시는 모기의 활동을 추적하기 위해 모기를 채집하고 있는데, 지난해 11월 초 610마리로 역대 가장 많은 모기를 잡았다. 이동규 교수는 “겨울철 가장 추운 1월의 평균 기온이 더 올라가면 뎅기열 등을 매개하는 흰줄숲모기가 성충인 상태로 겨울을 날 수 있어 우리나라에도 토착화하는 질병이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박멸 vs 공생, 정답은

인류는 온갖 과학적 방법을 동원해 모기 개체수를 줄이려 노력하고 있다. 모기의 개체수를 줄이려는 과학자들은 모기가 사람에게 미치는 피해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동규 교수는 “설사 모기가 아예 박멸된다고 해도, 모기는 생태계 먹이사슬에서 아래쪽에 있기 때문에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모기가 사라져도 모기를 대신할 다른 생물들이 많다는 뜻이다. 그에 비해 모기로 매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병을 앓고 사망에 이르기 때문에 모기의 개체수를 반드시 조절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모기의 개체수를 줄이기 위한 각종 기술에 조심스럽게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면 모기의 유전자를 바꾸는 기술에 내성을 가진 새로운 모기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신이현 한국방역협회 연구소장은 “모기의 애벌레인 장구벌레는 잠자리 애벌레, 물고기 등 다양한 생물의 먹이가 된다”며 “모기가 박멸될 경우 생태계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질병관리청 제공

※관련기사

어린이과학동아 6월 1일, [특집] 최후의 승자는? 인류 vs 모기

[백창은 기자 b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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