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해도 21득점, 그 시절 ‘람보 슈터’의 위엄

김종수 2023. 6. 10.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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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스토리④] 타고난 슛쟁이 문경은

 

농구대잔치, KBL을 가리지않고 그동안 국내 농구계에서는 이른바 슈터라는 호칭이 붙은 선수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실제로 플레이 스타일적인 측면에서 가장 많은 타입이기도 하다. 다른 능력치에 비해 가장 반등하기 쉬운게(상대적으로) 슛이기 때문으로 신체조건, 운동능력 등이 부족한 경우 그 의존도가 더 높아지기도 한다.


물론 다른 약점이 커도 장점이 워낙 대단하면 모든 것을 덮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역대로 봐도 슛 하나를 무기로 스타급 플레이어로 거듭난 케이스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신장, 기동력, 수비, 운동능력 등 다른 단점을 극복하지 못해 결국 기존의 장점까지 묻히는 경우도 허다했다.
 

‘람보 슈터’, ‘돌고래 슈터’ 등의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문경은(52‧190cm) KBL 경기본부장은 대한민국 최고의 정통파 슈터중 한명으로 명성을 떨쳤다. 당시 기준으로 사이즈와 운동능력이 좋았던 그는 거기에 더해 2대2 플레이 등도 일가견이 있어 활용도 높은 전천후 슈터로 평가받았다.


슛폼, 플레이 스타일 등 문경은은 슈터로서 교과서같은 존재로 평가받는다. 공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도 빈 공간을 찾아 부지런히 움직이는 등 스스로 최적의 공격 장소를 선점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빠른 슛 타이밍을 통해 상대 수비를 무력화시켰다. ‘가장 이상적인 슈터다’는 평가가 괜스레 나온게 아니다.


물론 모든 선수가 마찬가지겠지만 문경은이라고 항상 잘하지는 않았다. 수비에 막혀 제대로 힘을 쓰지못하는 것을 비롯 컨디션이 좋지못해 스스로 망쳐버린 경기도 있었다. 클래스가 있는 선수답게 그런 상황에서도 슈터로서 최소한의 역할을 하기위해 이를 악물었다. 인천 신세기 빅스(현 한국가스공사) 소속으로 경기에 나섰던 2002년 2월 7일 정규시즌 안양 SBS 스타즈(현 KGC)전이 딱 그랬다.


은희석이 조동현을 앞에 두고 레이업을 성공시키며 산뜻하게 공격을 시작한 SBS에 비해 신세기는 외국인선수 조니 맥도웰이 트레블링 바이얼레이션과 터치아웃을 연거푸 범하며 첫 단추부터 삐걱거린다. 문경은은 4:4로 팽팽히 맞선 경기 초반 가로채기를 성공시키며 골 밑으로 질주해 들어갔으나 아쉽게도 레이업 슛을 실패하고 만다.


물론 두 번 실수는 없었다. 바로 이어진 다음 공격에서 홍사붕의 패스를 받아 리버스 레이업 슛으로 속공을 깔끔하게 마무리짓는다. 문경은과 매치업된 김성철은 자신의 공격보다는 주로 문경은의 외곽슛을 저지하는 수비에 초점을 두고 나온 모습이었다. 그만큼 당시 신세기에서 문경은의 비중은 매우 컸다. 

 


김성철의 악착같은 수비에 문경은은 좀처럼 외곽슛 찬스를 잡지못했다. 삼성시절같았으면 난감했을 상황이었겠지만 신세기에서의 그는 조금 달랐다. 이전 소속팀에서의 역할이 전문 외곽슈터였다면 신세기에서는 그냥 주포였다. 받아먹는 플레이 외에 본인이 직접 전면에 나서서 공격전개를 펼칠 때도 많았다.


이를 입증하듯 문경은은 골 밑의 맥도웰과 얼 아이크에게 볼을 투입시켜주는 방향으로 주선택지를 바꾼다. 슈터로서의 능력이 너무 뛰어나서 보이지 않았을 뿐 다방면에 걸쳐 재능이 있는 선수임을 확인시켜주는 장면이었다. 김성철의 수비에 막혀 외곽슛이 주춤하자 신세기 유재학 감독은 1쿼터 막판 문경은을 빼고 최병훈을 교체 투입한다. 잠시 숨을 돌리라는 배려였다.


신세기의 맥도웰과 아이크 그리고 SBS의 퍼넬 페리 등…, 양팀의 주 공격루트는 파워 용병들의 골밑 경합이었고 난타전 양상 속에서 SBS가 22:20으로 근소하게 앞서나가며 1쿼터가 종료되었다. 문경은은 김성철에게 많이 막혔고 공격에서 조차 밀렸다. 속공시 레이업 하나 성공한 것이 득점의 전부였다.


외곽찬스가 안나자 드라이브 인으로 2쿼터 첫 득점을 올리는 등 문경은은 해법을 찾아가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삼성시절에는 자신이 아니더라도 득점할 동료들이 여럿있었지만 신세기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문경은이 막히면 두 외국인선수 말고는 답이 없었다. 물론 맥도웰과 아이크에게 가해지는 부담도 커질 것이 분명했다.


드리블에 이은 골밑 돌파로 공격의 실타래를 풀어보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노장의 책임감마저 엿보였다. 5살이나 어린 매치업 상대 김성철은 미들슛과 자유투로 차곡차곡 득점을 올리며 대조된 모습을 보였다. 수비가 잘되니 슛감도 좋아지는 듯 했다. 고전하던 문경은은 설상가상으로 은희석에게 가로채기까지 허용해 완전히 그로기에 빠질뻔했으나 다행히도(?) 공을 가로챈 은희석이 실책을 하는 바람에 겨우 한숨을 돌린다.


문경은은 맥도웰에게 너무 바깥쪽으로 골밑 패스를 시도하다 서로 호흡이 맞지 않아 잘못된 패스를 주는 등 계속적으로 헤매다 이후 공격에서 힘겹게 레이업 슛을 하나 성공시킨다. 외곽슛이 서로 터지지 않는 가운데 미들슛을 주로 구사하는 김성철과 레이업으로만 득점을 올린 문경은 두 신구슈터가 묘하게 대비되고 있었다.


문경은은 잠시 후 골밑에서 우물쭈물하다 은희석에게 또 다시 스틸을 당하고 페리에게 속공 레이업 슛을 허용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이대로 람보 슈터의 발칸포가 봉인 되는가?'싶은 순간 이어진 공격에서 드디어 이날 경기 문경은의 첫 3점슛이 터진다. 지켜보던 신세기 팬들의 함성이 크게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날의 문경은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한번 터지면 걷잡을 수 없이 터지던 것과 달리 다음 공격에서 김성철을 달고 쏜 미들슛을 에어볼로 날려버리고 말았다. 한번 부진하면 이어서 만회하고, 한번 만회하면 다음에 휘청하는 알 수 없는 싸이클이 반복되고 있었다. 명콤비라는 맥도웰과도 호흡이 잘맞지 않았다. 

 


37:36으로 신세기가 한점 앞선가운데 전반전이 종료됐는데 1, 2쿼터까지의 문경은은 총 9득점을 올렸고 장기인 3점슛은 겨우 한 개 성공에 그쳤다. 문경은의 시련은 후반에서도 계속됐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은희석을 수비하다 세 번째 파울을 범하고 만 것이다. 주 매치업 상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날 따라 은희석에게 유독 자주 당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문경은은 풍부한 경험에 더해 배짱까지 두둑한 베테랑 슈터였다. 빠르고 힘 좋은 수비수들에게 시달려본 것이 한두번도 아닌지라 자신의 페이스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아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이어진 공격에서 두 번째 3점슛을 깔끔하게 성공시키며 반격의 숨통을 틔운다.


사실 이날 신세기는 문경은만 부진한게 아니었다. 다른 선수들까지 쉬운 외곽찬스를 놓치는 등 팀 전체적으로 슛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홍사붕과 교체 투입된 최명도가 사이드에서 3점슛 2개를 연거푸 성공시키며 64:64 동점을 만들어놓지않았더라면 흐름을 완전히 넘겨줄뻔했다.


문경은은 다시 마음을 다잡고 반격에 나섰다. 자유투 라인 근처에서 미들슛을 던져 4쿼터 첫 득점을 올린다. 4쿼터가 시작되기 무섭게 맥도웰이 4번째 반칙을 저질러 벤치로 물러난 상황이었던지라 더더욱 그의 역할이 중요했다. 여전히 김성철은 그림자처럼 문경은을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그러나 문경은은 달리 ‘람보 슈터’가 아니었다. 74대 74로 팽팽하게 맞서던 순간에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통렬한 3번째 3점슛을 성공시킨다. 집중수비 속에서 미세한 틈을 놓치지 않고 벼락같이 날아올랐던 것이다. 이어 매치업 상대가 순간적으로 김훈으로 바뀌자 골밑으로 들어가는 척하면서 반칙을 유도했고 그로인해 얻어낸 자유투를 깔끔하게 성공시킨다. 드디어 클러치 타임에서 문경은이 뜨거워지는가 싶었다.


하지만 들쭉날쭉한 이날 컨디션은 끝까지 이어졌다. 문경은은 3점차로 아슬아슬하게 앞서가던 종료 1분 30여초전 은희석에게 공격자 파울을 범하며 막 달아오르려던 팀의 분위기를 자신의 4번째 파울로 차갑게 식혀버린다. 결국 시소게임은 종료직전까지 이어졌고 경기는 83대 82 신세기의 한점차 승리로 끝이 난다.


유달리 힘든 경기를 치러냈던 문경은은 이날 승부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하지만 슛 난조와 집중수비로 인해 컨디션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속에서도 3점슛 3개 포함 총 21득점을 성공시키며 ‘경기력이 좋지않은 날에도 왜 문경은을 조심해야하는가?’를 상대팀들에게 다시 한번 보여줬다는 평가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

#사진_농구카툰 크블매니아(최감자 그림/케이비리포트 제작),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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