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죽으면 3일만 울어줘"…SNS 댓글, 긴급 상황이었다[남기자의 체헐리즘]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직접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을 합친 말입니다. 사서 고생하는 맘으로 현장을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을 알리고, 가장자리에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스스로가 못나서 죽고 싶어요. 난 항상 짐 같은 존재. 가족은 내가 없는 게 좋겠죠. 장례식 3일만 울어주고 슬퍼해줘요. 전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거예요. 3일의 눈물만큼은, 가족들에게 슬픔을 주는 아들이었구나 하면서."
올라온 지 43분된 글이었다. 유 단장은 긴급히 문자를 썼다. 112에 신고하는 거였다.
'자살의심자 구조 바랍니다. 자살 결심, 곧 결행 예정.'
그에게 물었다. 어떤 걸 보고 위급하다 느꼈느냐고. 유 단장이 대답했다.
"마지막 유언처럼 보입니다. 장례식 3일 동안 함께 있어 줄 사람. 그만큼 외롭고 힘들었고, 친구도 없고, 혼자 끙끙 앓았다는 거예요."
평소라면 평범히 흘러갔을 밤. 어둡기만하던 그 시간에, 털어놓을 곳 하나 없어 댓글에 생(生)의 끝말을 남기던 아이와, 그걸 놓치지 않고 발견해 기어이 살리고픈 어른이 동시에 있었다.
14살 아이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단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였다. 어머니는 죽은 뒤 아이 휴대폰을 봤다. 숨지기 전 SNS로 대화를 나눈 게 있었단다. 그걸 본 어머니는 경악했다.
"한 성인 여성이 아이에게…죽는 방법을 가르쳐줬더라고요."
죽고 싶다는 14살에게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준 거다. 그 대화는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아이를 살릴 수 있는.
얼마나 보일까 싶었는데 웬걸. 해시태그 'ㄷㅂㅈㅅ'이라고만 검색해도 실시간으로 계속 올라왔다. 안 된다고, 함께 살자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어떡하면 좋을지 몰랐다.
무작정 '신고하기' 버튼을 눌렀다. 신고 항목은 '자해 또는 자살 의도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신고가 쌓이고 또 쌓여갔다. 그럴수록 의문도 더해졌다. 이런다고 살릴 수 있는 걸까 싶어서.
10대로 보이는 한 아이의 글을 보고서야 그 방법으론 안 된단 걸 알았다. 아마, 누군가 글을 신고해 계정이 정지당한 모양이었다. 내가 신고한 것의 '결과 미리보기'가 거기 있었다. 아이는 이리 말했다.
"보고 싶었어. 일주일 계정 정지 풀리고 돌아왔어."
그리고 또 말했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마땅한 장소를 못 찾았어. 내일 죽으려고 했는데."
"왜 죽으려 생각하나요. 이름 모를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게 힘든지 얘기해줘요."(기자)
"내가 죽지 않으면 당신이 날 평생 책임지고 살아줄 건가요. 미안하지만 그런 의미 없는 다독임 따위에 위로받지 않아요. 저처럼 되지 말고 본인을 더 챙기고 사랑해주세요. 그래도 걱정해줘서 고마워요."(죽고 싶다던 아이)
말문이 턱 막혔다. 묵직한 파도가 덮치듯, 힘든 감정이 온몸에 느껴져서였다. 그 말에 다시 진심으로 답했다. 아이는 말이 예쁘게 나가지 못했다고, 위로가 그래도 고맙다고 했다. 덕분에 좋은 하루가 된 것 같다고. 그러나 죽음에 대한 생각은 여전한 듯했다.
성인은 금전적인 문제인 경우가 많았다. 투자 실패, 도박 빚 등이었다. 자신이 쓸모없다며 자책하는 이들이 많았다. 죽지 않았음 좋겠단 말에, 한 남성은 이리 대답했다. "1억원이 필요해요. 도와줄 수 있어요? 없잖아요."
"답도 없고 어떻게 해줄 수도 없단 한계는 분명히 있어요. 그걸 인정해야 하지요. 그런데요. 그분들은 어디 호소할 데도 없을 거예요. 마음을 충분히 들어주기만 해도 돼요."
구하려는 조급함을 버리란다. 그럼 말에 여유도 힘도 생긴다고. 그래야 상대도 편안해한다고. 크게 느껴졌던 문제를 크지 않게 느껴지도록 에너지를 준다고. 그리 도움 주고 싶은 진심 어린 마음만 전해도 힘이 된다고.
이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잘 구분하고, 선을 잘 지키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상담센터나 정신건강의학과 치료 등 전문가 도움을 받도록 권유하는 것도 중요하단 얘기였다.
"정말 죽을 것 같은 사람을, 신중히 신고해야 해요. 살리고픈 순수한 마음이어야 하고요. 청소년 10명이 죽겠다는 글을 올린다면, 진짜 결의하는 아이는 그중 2명 정도이지요. 충동적으로 올리는 글도 꽤 됩니다. 잘 가려야 정말 살릴 사람을 살릴 수 있어요."
이른바 그만의 '감시 방법론'인 거다. 유씨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 자살자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단 걸 깨달았다. 암시 글을 찾아 신고하면, 다시 한번 살 기회를 줄 수 있다고. 그리 긴 시간 동안 자기만의 방법을 터득했다. 그가 쓴 책 '죽고 싶은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서'(2021, 북랩 출판사)를 참고해, 실제 신고했다는 자살 암시 표현을 살펴봤다.
"너네 만약 내일 죽는다면 어떻게 죽고 싶어."(신고 대상, '내일'이라고 날짜를 명시한 점)
"유서 쓸 때 편지 쓰듯 막 써도 되겠지."(신고 대상, 유서 쓰기 등 실체적인 모습)
"곧 있으면 끝낼 수 있겠죠."(신고 대상, '곧'이란 표현은 임박했다는 것)
"안 아프게 죽는 방법이 있을까."(신고 대상, 안 아픈 방법을 찾는 건 자살할 마음이 확고한 것)
"OO를 어디서 구매해."(신고 대상, 정보를 찾아보며 준비하는 것)
"자살하면 친구들이 울어주는 걸 보고 싶다. 그렇게라도 관심받고 싶다. 그냥 나를 좋아했는지 확인하고 싶다. 울어준 친구가 많으면 안 죽겠지만, 그건 죽어야만 알 수 있으니까 그냥 죽을래."(신고 대상, 관심 부족이며 결행 가능성 커)
유 단장이 112에 문자 신고하는 걸 봤다. 구조 바란다는 내용과 함께, 암시 글 링크를 담았다. 신고 이유도 적었다. 보호자에게 원문만 보여주고 전달하지 말란 것과, 사후 관리가 철저히 필요하다는 섬세한 당부도 담았다. 그는 이리 당부했다.
"이 사람을 살려야겠다면 바로 112에 신고해야 합니다. 제일 중요한 건, 신고에 부담을 갖지 말아야 해요."
끝으로 죽음을 생각하다 살기로 선택한 이들의 이야길 남긴다. 보는 이의 마음에 오래 살아 남아, 생을 부여 잡는 힘이 되길 바라며.
"아버지가 사업 실패로 무너졌어요. 집은 경매로, 가구엔 빨간 딱지가 붙었죠. 돈 문제에, 건강도 좋지 않아 취업이 잘 안 되더라고요. 여기에 가장 믿었던 친구 중 일부가 배신했죠. 삶에 회의가 들어 포기하려 했었습니다. 유서도 썼고요. 죽으려던 찰나에 저를 붙잡은 건, 정말 소박한 아이스크림 이모티콘 하나였어요. '열부터 식히자'며 친구가 보낸 거였지요. 그제야 이성을 찾고 죽음을 멈췄었습니다. 이후 상황이 좋아졌어요. 누구나 다 아는 기업에 취직해 고연봉을 받고, 잘 맞는 사람도 만났습니다. 지금 삶은 행복합니다."(영호씨, 가명)
"말라가는 제 모습이 기괴해서 좋았어요. 외모 강박으로 다이어트 약에 손을 댔죠. 조울증이 심하게 왔지요. 술 먹고 유서 쓰고 수차례 자살 시도를 했어요. 약봉지가 안 까지는 것조차 제가 죽어야 할 이유를 말해주는 거라 생각했고요. 정신병동에 강제 입원됐지요. 퇴원하자마자 죽으러 가려 했는데, 이상하게 충동이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하루, 이틀 미루다 저희 강아지를 만나게 됐어요. 이 작고 소중한 아이를, 내가 지켜주려면 살아야겠구나. 그리 살고 있습니다. 우울증은 질병이에요. 내가 아픈 건 잘못된 게 아니에요. 그냥 감기처럼 어쩌다 걸린 거고, 언제 또 금세 사라질 수 있는 거고요."(소정씨, 가명)
"고등학교 때 신체 콤플렉스로 학교 폭력을 심하게 당했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자살 시도도 몇 번이나 하고, 사람이 너무 무서워서 항상 피해 다녔습니다. 너무 죽고 싶었어요. 근데 웃기게도 저희 집 강아지 두고 떠날 자신이 없더라고요. 매번 시도하다 실패했어요. 지금은 제 길 찾아서 공무원으로 잘 살고 있습니다. 아직 트라우마 때문에 힘들긴 하지만 치료받고 있고요. 혹시 학교 폭력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어요. 제발 죽지 말라고요."(유진씨, 가명)
"23살부터 25살까지 우울증이 크게 왔어요. 자살 시도도 끊임 없이 했어요. 사람들과 잘 만나놓고, 홀로 집에 갈 때면 펑펑 울었어요. 더는 혼자 버틸 힘이 없었어요. 가족들에게 얘기했어요. 입원까지 했다가 돌아왔지요. 집에 와서 제가 키우는 고양이랑 눈이 마주쳤어요. 갑자기 미안한 감정이 들어, 눈물이 계속 쏟아지는 거예요. 그리 우울증을 치료하고 1년이 지났어요. 가끔 공허하고 우울감이 몰려올 때도 있지만 많이 나아졌어요. 확실한 건 곁에 누군가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를 만들자'는 말을 해드리고 싶어요. 우울증을 겪고 있다면 무조건 밖에 나가 뭐라도 해야해요. 햇빛도 보고 커피도 마시고요.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냐 하지만, 소용 있더라고요. 우리 소용 있게 살아봐요."(소연씨, 가명)
"19년 전 친정 엄마는 오래 아팠고, 24살에 엄마 병원비로 3000만원의 빚이 생겼습니다. 엄마 친구였던 분은 제 직장에 찾아와 돈을 내놓으라며 온갖 모욕을 줬지요. 이 세상 살면 뭐하나, 참 허무하더군요. 한겨울에 마포 대교로 올라갔습니다. 겨울 바람은 참 아팠습니다. 강물이 흐르는 걸 보다 '내가 죽어도 허무하게 사라지겠지, 아무렇지 않게 또 지나겠지' 싶었어요. 억울하더라고요. 저 한강이 오래 버틴 것처럼 나도 살아야겠다, 결심했지요. 3년 동안 하루 4~5시간 자며 열심히 돈을 벌었어요. 빚을 다 갚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아이가 첫 돌이 되던 해, 처음으로 마포대교를 지나갈 때였어요. '내가 살아 있구나, 이겨냈구나' 싶어 참 뿌듯했네요. 그 아이가 어느덧 중학생이 됩니다. 보란듯 살아가길, 세상을 벗하며 이겨내시길 부디 기원합니다."(희정씨, 가명)
"힘든 시기를 함께 보낸 친구가 오랜 우울증으로 자살했어요. 저도 2~3년간 우울증이 중증으로 발전했다 나아졌습니다. 매일매일 죽고 싶은 마음이 심했고, 기억 상실과 자학과 구토 증세가 있었어요. 뭘해도 즐겁지 않았지요. 우울증은 '병'이란 걸 자각해야 해요. 심리 상담과 정신과 전문의 치료를 받는 게 매우 중요하고요. 좋은 생각한다고 낫지 않아요. 과거에 얽매이거나 너무 먼 미래를 생각하지 말고요. 당장 오늘 하루 죽지 않고 사는 걸 최우선 목표로 해요. 남의 입장 생각말고 이기적으로 살고요. 그런다고 세상이 망하진 않아요. 아무리 내 상황이 엉망진창이어도, 죽는 것보단 낫다 생각했습니다. 내 기대치를 아주 낮추고 관대하게 대했어요."(주아씨, 가명)
"어릴적 집은 불화가 가득했어요. 살림살이가 깨졌고 제 이름을 부르던 엄마, 아빠 목소리가 무서웠고요. 늘 방 안에서 이불로 몸과 얼굴을 숨긴 채 작은 공간에서 고요를 찾았습니다. 집 밖을 뛰쳐나와 연락한 곳은 늘 친구였습니다. 한겨울 새벽, 공원에서 서너 시간 제 이야길 들어주기도 했고, 자기 집에 데려가 이불을 감싸주며 '울어도 돼, 많이 울어' 그랬지요. 그 기억이 몽글몽글 따뜻하게 가슴에 남아 있어요. 스무 살에 죽겠다고 자해했고, 기절했고, 흉터가 가득 남았고요. 어릴 적 기억이 건드려지면 다시 무너지지만, 진정 모든 이야기를 편히 나눌 한 명만 있다면, 죽음까지 내몰릴 일은 없을 것 같아요. 무기력과 우울은 자의로 얻은 게 아니며, 내 의지로 버릴 수 없어요. 뭐든 몰두할 수 있는 걸 찾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모두가 슬프면 슬프다, 불행하면 불행하다, 입 밖으로 꺼낼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아리님, 가명)
에필로그(epilogue).
자살 암시 글을 찾다 SNS 계정을 봤다. 10대 여자아이였다.
피드엔 담배 사진이 많았다. 죽어버리고 싶단 글도 있었다. 가족들이 힘들어할까 봐 겁난다고 했다. 그런데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했다.
글이 이어졌다. 몇 번 죽으려 시도한 모양이었다.
마지막 글은 이랬다. "난 곧 떠날거야. 좀 길어질 여행을. 기다릴 사람도 없겠지만, 혹시 있다면 기다리지마."
이후 더는 글이 올라오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자세히 보니, 첫 글과 마지막 글 사이에는 '여섯 달'이란 시간이 있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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