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학동 참사’로 잃은 내 가족…2주기에도 하나만 호소했다

이문영 2023. 6. 10.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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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커버스토리][한겨레S] 커버스토리
광주 학동 참사 2년 <상> ‘망각의 구조’
건물에 깔린 버스에서 딸 잃고 생존한 아버지
부모는 괴로워하며 딸 흔적 남은 고향 떠나
희생자 기리는 추모 공간 자리조차 못 정해
현산 피고인들 전원 집유, 참사 책임 흐려지고
“서울 강남급” 업그레이드 제안해 시공권 유지
2021년 6월9일 오후 4시22분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공사 현장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이 무너지며 정류장에 정차해 있던 운림54번 버스를 덮쳤다. 붕괴 직후 119구조대원들이 매몰자들(사망 9명·부상 8명)을 구조하고 있다. 연합뉴스

버스는 무심히 도착했다.

365일을 두 바퀴 돌고 온 버스가 ‘그날 그 시각’의 기억을 싣고 정류장에 멈춰 섰을 때, 2년 전 그 버스에 딸과 함께 타고 있던 아버지 김원식(가명·71)씨의 고통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버스가 건물에 깔리는 순간 들렸던 “악마의 소리”가 그의 귓가에서 다시 들리는 듯했다. “지옥 불구덩이에서 악마가 울부짖는 것 같던” 소리는, “그렇게밖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그 소리는, “악마가 딸을 빼앗아 가는 소리”였다. 살아서 구조된 아버지는 끝내 숨진 채로 수습된 딸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시간이 갈수록 깊어지는 슬픔”을 지팡이 삼아 그 소리를 견뎠다.

깨끗이 지워진 참사 현장

2023년 6월9일 오후 4시22분 사회자가 시간을 알리자 참석자들이 고개를 숙이고 묵념했다.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공사 현장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이 정류장에 정차한 버스를 덮친 뒤로 정확히 2년을 채웠다. 그 2년 동안 딸은 사망자 9명에 포함돼 붕괴 참사의 희생자로 기록됐고, 부상자 8명 중 1명이었던 아버지는 수술을 받고 병원에서 1년을 보냈다. 어머니 이정순(가명·68)씨는 1주기 때처럼 흐느꼈다. 지난해 추모식에서도 그는 오열했다. 원식씨와 딸들은 다른 참석자들이 모두 돌아간 뒤에도 아내와 엄마 곁에 서서 울음이 그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2주기 추모식은 참사 현장 근처의 ‘철거가 끝난 땅’에서 열렸다. 재개발 구역의 도로 쪽 펜스 일부를 열고 안쪽에 추모식 천막을 쳤다. 참사 석달 뒤 ‘추석 추모제’(2021년 9월21일)와 지난해 1주기 추모식은 붕괴 건물의 오른쪽 상가 주차장에서 치러졌다. 그 상가는 이제 사라지고 없었다. 작년 11월7일 철거를 재개한 시공사와 재개발 조합은 지난 1월12일 참사 건물의 잔해까지 깨끗이 제거했다. 시공사와 철거업체 등에 대한 1심 선고(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가 내려지면서 해체 작업도 속도를 냈다.

“책임자 처벌은, 아직도 모든 관련자의 재판이 끝나지 않아 누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는지 알 수 없는 답답한 상황입니다. 1심에서 결정된 그들의 형량은 유족 입장에선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들이었습니다.”

이진의 학동참사유가족협의회 대표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추모사를 읽었다. 짓눌려 다시 출발하지 못한 버스처럼 2년 전 4시22분에 못박혀 있는 유족들은 참사 현장을 지우듯 죽음의 책임을 지우는 ‘망각의 구조’를 지켜봐왔다. 그럴 만한 시간이었다.

9일 오후 광주 학동 붕괴 참사 현장 근처에서 열린 2주기 추모식에서 당시 딸을 잃은 어머니(왼쪽)가 오열하고 있다. 광주/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2022년 9월7일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피고인들은 (돌아)가셔도 됩니다.”

재판장(광주지법 형사11부 박현수 부장판사)이 말했다. 피고인석에 앉아 있던 4명이 천천히 일어나 법정을 나갔다. 그들 가운데 3명은 원청 시공사 에이치디씨(HDC)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의 학동4구역 현장소장·안전부장·공무부장이었다.

붕괴 참사의 책임을 묻는 업무상과실치사상 1심 재판에서 그들은 모두 집행유예를 받았다. 현산에서 철거를 수주한 한솔기업의 현장소장과 실제 철거 공사를 진행한 굴착기 기사(백솔건설 대표), 현장 점검을 한 차례도 하지 않은 감리자에게만 실형이 선고됐다. 사복을 입고 출석했던 그들은 보석이 취소되며 법정에서 재수감됐다.

2021년 6월9일 오후 3시56분 “엄마 지금 출발할게요.”

희진(가명·당시 30)씨가 정순씨에게 문자로 알렸다. 원식씨가 “엄마 면회 가자”고 했을 때 희진씨는 신이 났다. 집을 나서려는 원식씨를 붙잡으며 희진씨는 “10분만 있다 가자”고 했다.

“엄마는 시간 맞춰 가는 걸 좋아해요.”

10분 뒤 엄마에게 문자를 보낸 희진씨가 아빠와 말바우시장(광주 북구 우산동의 오일장)의 팥죽집을 출발했다. 광주에서 소문난 식당이었다. 유튜버나 블로거들뿐 아니라 한국관광공사까지 추천하는 맛집이었다.

앞에서 폴짝폴짝 뛰어가는 희진씨를 보며 원식씨는 흐뭇했다. 첫째와 띠동갑인 늦둥이였다. 언니들이 엄마와 함께 키운 동생이 네 언니가 타지로 나가 살 때도 부모 곁에 남아줬다. 석달 전 암 수술을 받고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던 정순씨를 매일같이 찾아가 살핀 것도 희진씨였다. “방금 다투고도 어딜 같이 가자고 하면 강아지처럼 뛰며 좋아하는” 막내딸을 볼 때마다 원식씨와 정순씨는 “우리한테 와준 게 너무 과분해서” 가슴이 먹먹했다.

버스를 기다리던 희진씨가 선글라스를 쓰며 아빠를 쳐다봤다. ‘나 예뻐?’ 하고 묻는 듯한 표정에 원식씨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말바우시장(남)’ 정류장으로 운림54번 버스가 들어오고 있었다.

2022년 4월18일 검사가 참사 책임을 둘러싼 ‘소송 참가자별 증언’을 정리해 법정에서 읽었다. 현산의 공사 관리·감독과 개입은 어디까지 이뤄졌는지, 백솔이 해체계획서대로 철거하지 않은 책임(길이가 긴 장비인 ‘롱붐’을 사용한다던 계획과 달리 일반 장비 사용을 위해 건물 하부를 허물고 안쪽에 흙을 쌓아올려 높이를 보강하다 붕괴 초래)은 누구에게 있는지 등을 두고 피고인들의 주장이 엇갈렸다.

백솔 대표 ‘철거공사를 한솔로부터 재하도급을 받는 과정에서 공사 단가가 크게 하락(롱붐을 쓰지 못한 이유)했다. 해체계획서는 보지도 못했다. 현산 관리자들이 현장에 상주하며 해체 공사 진행을 모두 확인했다.’
한솔 현장소장 ‘백솔 대표가 해체계획서와 다르게 철거를 진행했다. 해체 작업 때 현산 관리자들과 협의를 거쳤고, 현산 관리자들은 철거가 계획서와 달리 진행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현산 관계자들 ‘해체 공사를 한솔에 하도급했으므로 관리 책임은 한솔에 있다. 공사를 목격하긴 했지만 관리할 능력도 의무도 없다. 해체계획서와 다르게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인지하지 못했다.’

책임은 서로에게 떠넘겨졌다. 검찰은 그들을 업무상과실치사상 범죄의 공동정범으로 봤다.

학동 참사 2주기인 9일 오후 당시 피해 버스와 같은 노선인 운림54번 버스가 철거를 끝낸 참사 현장을 지나고 있다. 광주/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붕괴 참사(2021년 6월9일) 2주기인 9일 오후, 당시 붕괴 건물에 깔렸던 피해 버스와 같은 노선인 운림54번 버스가 참사 현장을 지나가고 있다. 광주/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책임지는 사람 없는 죽음

2021년 6월9일 오후 3시56분 희진씨의 문자를 받자마자 정순씨는 병원 밖으로 나갔다. 버스가 도착하려면 30분쯤 걸릴 걸 알았지만 막내가 온다는 말에 한참 전부터 정류장에 앉아서 기다렸다.

막내는 병원에 올 때 저녁 식사(오후 5시30분) 한 시간 전에 맞춰 왔다.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병원 내 면회는 금지돼 있었다. 딸이 찾아오면 정순씨는 병원 허락을 얻어 밖에서 한 시간쯤 만난 뒤 식사 시간 때 돌아가곤 했다. 희진씨는 수의대 편입 준비로 바쁜 중에도 엄마를 세심하게 챙겼다. 무등산 자락에 위치한 그 병원도 희진씨가 “요목조목 알아보고 잡아줬”다.

도착하고도 남았을 버스가 멀리서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버스 대신 재난문자가 도착했다. 학동·증심사입구역 옆에서 건물이 버스 위로 쓰러졌다고 했다. 정순씨가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남편에게 전화했다. 받지 않았다. 정신없이 택시에 올라탔다.

2022년 4월18일 “우리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고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현산의 변호인은 재판장에게 “성토체(롱붐을 쓰지 못해 부족해진 장비의 높이를 보완하기 위해 쌓아올린 흙과 잔해 더미)가 주저앉아서 그리(비산먼지 민원을 우려한 과도한 살수가 성토체 하중을 증가시켜 건물이 붕괴)됐다는 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의 조사는 타당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사조위가 건물이 넘어간 이유를 찾으려다 보니 부적절한 공식을 사용했다”며 “좀 더 전문적인 감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산의 변호인단은 국내 최대 법률사무소인 김앤장 변호사들로 꾸려졌다. 그들은 “우리는 과학적으로 확실하게 매듭짓고 싶다”며 별도의 토질 전문가와 구조역학 전문가의 증인 채택을 요청했다. 판사가 물었다.

“토질 전문가로 뭘 입증하려는 건가요?”

“살수가 성토체 압력 증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음을 전문가 의견을 통해 입증하고 싶습니다.”

“검찰 측 의견은 어떤가요?”

“이 사건 배경을 전혀 모르는 증인이, 변호인이 제시하는 몇 가지 자료만으로 연관성을 밝힐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사조위 조사를 토대로 붕괴 책임을 입증하고 판결을 내릴 검사와 판사를 상대로 현산 변호인들은 사조위가 밝혀낸 붕괴 원인 자체를 부정했다. 그들은 사실상 국가와 싸우고 있었다. 재판을 참관한 기우식 학동·화정동참사시민대책위 대변인(참여자치21 사무처장)은 “깜짝 놀랐”다. “국가 차원의 조사 결과가 부정되면 9명이 사망한 이유와 책임 자체가 증발해버릴 수도 있었”다.

유족 쪽에선 희진씨의 둘째 형부가 선임 가능한 법무법인을 알아봤다. 그는 국내 10대 로펌들의 명단부터 뽑았다. 김앤장을 뺀 9개 로펌에 규모 순서대로 연락해 수임 여부를 문의했다. “모두 거절당했”다. “현산이 우리 고객이어서 불가능하다”는 이유가 예외 없이 뒤따랐다. 유족들은 결국 광주의 한 로펌과 계약했다.

2021년 6월9일 오후 4시8분께 말바우시장 장날이어서 버스엔 자리가 없었다. 원식씨와 희진씨는 버스 출구와 접한 오른쪽 손잡이 봉을 잡고 섰다. 생일 맞은 큰아들에게 줄 미역국을 끓여놓고 식당 장사에 쓸 재료를 사러 갔던 여성(63)이 두 사람과 같은 정류장에서 버스에 올랐다. 친정 오빠 병문안을 다녀오던 이진의 대표의 어머니(63)는 계림사거리 정류장에서 탔고, 학교에서 음악 동아리 후배들을 만나고 귀가하던 고등학생(17)은 광주고 앞에서 차례로 승객이 됐다.

원식씨는 “난데없이 다리가 저릿”했다. 어느 정류장에선가 버스 기사 옆자리가 비었다. 그가 “저기 좀 앉아야겠다”고 하자 희진씨는 “그래 아빠, 어서 가서 앉아요” 했다. 원식씨는 ‘같이 앞으로 가자’고 하려다 말았다. ‘몇 정거장 안 남았으니 그냥 있겠다’고 할 것 같아 원식씨는 혼자 자리로 가서 앉았다. 앉자마자 버스가 정류장에 섰다. 버스가 서자마자(오후 4시22분) “하늘이 쏟아졌”다. “악마의 소리가 들렸”다.

2022년 6월13일 “모두 무죄를 선고해주십시오.”

현산 변호인들은 붕괴 원인에 거듭 의문을 표했다. 증인으로 채택된 토질 전문가와 구조역학 전문가를 상대로 신문을 마친 뒤였다. 참사 1주기 나흘 뒤 열린 1심 최후변론에서 그들은 “사고 원인 자체가 불명확하기 때문에 주의의무 위반이 있다 하더라도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했다. 붕괴 이유가 분명치 않으므로 붕괴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논리였다. 죽은 사람은 있지만 그 죽음에 책임질 사람은 없다는 뜻이었다.

“이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끝까지 거짓말로 자신들을 변호하는 사람들이 부끄럽습니다.”

재판장이 “끝으로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라”고 했을 때 한솔 현장소장(29)이 울먹이며 말했다. “우리가 피해자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모든 죄를 인정하고 사죄하는 것입니다.” 법정 뒤에서 유족들이 울음을 들이마셨다.

검찰은 현산 현장소장과 한솔 현장소장, 백솔 대표에게 각각 징역 7년6개월을 구형했다.

막둥아 막둥아 막둥아…

2021년 6월9일 오후 4시31분 버스 천장 쪽을 유압 절단기로 잘라냈다.

김영조광주동부소방서 소방장(생존자 8명 중 7명 구조)이 통로를 확보해 버스로 진입을 시도했다. 그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119구조대원으로 일한 15년 동안 처음 보는 규모의 참사”가 눈앞에 펼쳐졌다. 버스가 건물 더미에 깔려 보이지 않았고 머리 부분만 조금 노출돼 있었다. 그가 버스 안으로 들어갔을 때 고통을 호소하는 승객들의 비명과 피투성이가 된 얼굴들이 그를 맞았다. 진입 방향으로부터 버스 왼쪽 열과 뒤쪽은 천장과 바닥이 거의 붙어 있어(생존자 8명은 모두 버스 오른쪽 열과 앞쪽에 있던 승객들) 상황 파악 자체가 되지 않았다.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남성이 입구 쪽 벽과 승차 손잡이 파이프 사이에 끼여 있었다. 그가 가슴 통증을 호소했다. 절단기로 파이프를 자른 뒤 “충격으로 넋이 나간 듯한” 그를 빼내 밖으로 내보냈다.

원식씨는 구조(오후 4시43분·승객 17명 중 네번째)되자마자 구급차에 태워져 기독병원으로 이송됐다. “딸이 나올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버텼지만 뜻대로 버텨지지 않았다. 거대한 무게가 갈비뼈를 꺾어 허파를 찌를 때부터 그는 입 밖으로 나오는지도 알 수 없는 말을 기도처럼 반복했다.

막둥아 막둥아 막둥아….

정순씨는 원식씨가 병원에 실려 간 뒤 현장에 도착했다. “일주일 전 54번 버스를 타고 집에 다녀올 때만 해도 가림막조차 쳐져 있지 않던 그 건물” 더미를 구조대원들이 달라붙어 파헤치고 있었다. 접근이 차단돼 다가가지도 못하고 있을 때 “몇째인지도 모를 딸”(병원의 연락을 받은 큰딸)이 전화해 “아빠가 기독병원에 있다”고 했다. 응급실로 달려갔을 때 남편이 깨어 있는지도 분명치 않은 무서운 얼굴로 정순씨를 다그쳤다.

“당장 나가서 막둥이 찾아. 막둥이 못 찾으면 나도 죽어버릴라니까.”

2022년 9월7일 “산업안전보건법이나 건축물관리법은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대비해 이중 삼중으로 장치를 만들어놨지만 돈만 벌면 된다는 이기심과….”

재판장이 희진씨와 원식씨 등 언론에 소개된 희생자들의 사연을 언급하며 이 문장을 읽을 때만 해도 유족들은 ‘다른 선고’가 내려질 줄 알았다. 기대와는 달랐다. 재판부는 현산 직원들에게 건물 해체 작업자의 업무 수행을 확인하고 관리·감독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고 판결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므로, 일반인이 사망하거나 다친 이 사건엔 적용될 수 없다’는 현산 쪽 주장도 받아들였다.

판결 직후 시민대책위는 “힘없는 하청기업과 감리에게만 실형이 선고됐다”며 “재판장은 차라리 이 부조리한 판결에 어울리지 않는 립서비스나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비판 성명을 냈다. 결과를 확인한 희진씨의 둘째 언니 서경(가명·42)씨는 “사회에 메시지를 주지 않는 법원을 보며 절망스러웠”다. “법원이 참사를 단순 사고로 만들어버렸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2021년 6월9일 밤 “전화하신 분은 누구세요?”

경기도 화성에서 광주로 가는 차 안에서 서경씨는 연락이 닿지 않는 동생의 휴대폰으로 계속 전화를 걸었다. 수많은 통화 시도에도 응답 없던 전화기에서 처음 듣는 목소리가 오히려 서경씨에게 물었다. “언니”라는 서경씨의 말에 구조대원으로 짐작되는 남자는 “조선대병원으로 가시라”고 했다.

서경씨로부터 남자의 말을 전달받은 정순씨가 조선대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막내딸은 응급실에 없었다. 희진씨는 영안실에 있었다. 정순씨는 주저앉아 “내 새끼 보여달라”며 통곡했다. 희진씨는 저녁 8시2분에 심정지 상태로 수습(승객들 중 14번째)됐다. 생사를 가른 경계선은 “버스 출구 앞 의자”(김영조 소방장)였다. 의자 바로 뒤가 허리를 브이(V)자로 꺾은 버스의 가장 오목한 지점이 됐다. 사망자들은 모두 그 의자 뒤쪽에서 나왔다. 이진의 대표의 어머니(저녁 7시8분)와 말바우시장에 다녀오던 60대 여성(저녁 7시28분)과 17살 고등학생(저녁 8시12분)도 조선대병원 영안실에서 희진씨와 다시 만났다.

희진씨의 발인 때도 언니들은 아버지에게 동생의 사망을 전하지 못했다. “사실을 알면 치료도 거부하고 막내 따라가겠다고 하실 것 같아 ‘의식은 없지만 살아 있다’고 거짓말했”다. 병원에 부탁해 병실에서 티브이도 치웠다. 원식씨가 “뭔가 이상한 느낌”의 실체를 알게 된 건 서울의 대형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고 한참 뒤였다.

“아빠도 짐작하고 계셨잖아요?”

서경씨의 말을 듣는 순간 원식씨가 병상에서 굴러떨어졌다.

참사로 처참하게 부서진 피해 버스가 광주광역시 북구 각화동 각화정수장 안 가건물에 보관돼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우리로선 전화위복”

2022년 3월31일 현산이 법원에 행정처분 집행정지 신청과 취소 소송을 동시에 제기했다. 붕괴 참사의 책임을 묻는 서울시의 영업정지 8개월(부실시공 관련) 결정 하루 만이었다. 법원은 2주 뒤 현산의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여 영업정지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4월13일 현산의 사업자 등록 관청인 서울시가 추가 영업정지 8개월(하수급인 관리의무 위반 관련)을 결정했다. 현산은 닷새 뒤 과징금(4억623만4000원) 처분으로 변경을 요청했다. 하수급인 관리의무 위반의 경우 처분 대상자가 영업정지 대신 과징금 부과를 원하면 처분 기관은 수용(건설산업기본법 시행령)할 수밖에 없었다. 7월13일 현산은 영업정지 대신 선택한 과징금도 취소하라며 소송을 시작했다.

참사에 대한 책임을 다하겠다던 현산이 책임을 덜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지적이 일었다. 기우식 시민대책위 대변인은 “애초 형사재판 결과를 기대할 수 없어 책임에 합당한 행정처분을 이끌어내는 데 활동을 집중해왔으나 그마저도 무력화되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현산 쪽은 “그동안 우리는 모든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반박했다. 현산 관계자는 “과징금은 원수급인인 우리 회사가 하수급인의 재하도급을 지시·공모한 경우에 부과되는데, 우리는 불법 재하도급에 대해 지시·공모한 적이 없고 그 사실은 현재 소송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고 했다.

학동 참사 7개월 뒤 현산이 시공 중이던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가 붕괴(지난해 1월11일·6명 사망)했다. 학동 유족들은 “우리가 참사 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해 발생한 비극”이라며 “큰 충격”을 받았다. 화정 참사를 두고도 행정처분을 내려야 하는 서울시는 결정을 계속 미루고 있다. 지난해 3월 공언했던 “6개월 이내 신속한 행정처분”은 참사 책임을 가리는 1심 판결 뒤로 연기됐다. 현산은 그사이 서울주택도시공사(SH)의 공공재개발사업(지난해 8월 동대문구 용두1구역 6지구)을 수주했다.

참사 이틀 뒤인 2021년 6월11일 정몽규 HDC그룹 회장(왼쪽)이 참사 현장에서 참배한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6월3일 “서울 강남도 부러워할 최고급 인테리어 마감재… 강남의 특권이었던 컨시어지 서비스를 광주 최초로 도입… 서울 강남 명품단지만이 가질 수 있는 명품 조경… 최첨단 기술을 적용한 시스템 특화로 광주를 넘어 서울 강남과 비견되는….”

성우의 목소리가 ‘서울 강남’을 거듭 부각했다. 참사 뒤 학동4구역 시공권 유지 여부를 결정하는 총회를 앞두고 “노(NO) 마진을 감수”한 현산의 파격적 업그레이드 안이 조합원들 앞에서 동영상으로 소개됐다. “오직 학동4구역 조합원님만을 위해 단 하나의 찬란한 미래를 선사”하겠다며 “부디 다시 한번 조합원님의 힘을 하나로 모아”달라고 목소리는 호소했다. 설명회에 참석하고 온 조합원들 일부는 그날 밤 단체대화방에서 “사고 전과 후를 비교하면 (광주를 넘어) 서울과 비교 대상”이 됐다거나 “우리로선 전화위복”이라며 기대를 표했다. 2주 뒤 열린 조합원 총회(6월17일)에서 현산은 찬성 562표(89.2%), 반대 53표(8.4%), 기권·무효 15표(2.4%)로 시공권을 지켜냈다. 재개발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던 조합장은 연임(찬성 78.4%)됐고, 조합의 사업 방식에 이견을 제기하던 이사는 해임(찬성 83.1%)됐다.

유튜브에도 올라와 있는 그 영상을 본 한 유족은 “우리 가족 목숨값으로 아파트 업그레이드하면서 왜 추모 공간은 그토록 거부하는지 모르겠다”며 씁쓸해했다.

2021년 12월28일 찬성 14.0%, 반대 75.2%, 기권 8.8%.

추모 공간 설치 찬반을 묻는 투표 결과는 ‘반대’가 ‘찬성’을 압도했다. 석달 전 광주시 동구청은 조합에 공문을 보내 참사 위치에 ‘재발 방지와 주민 안전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공간을 조성해달라’는 유족들의 요청을 전달했다. 조합은 이사회와 대의원회의를 거쳐 연말 총회에 투표로 부쳤다. ‘재개발사업 진행을 위해 부득이하게 공간을 설치해야 할 경우’란 단서를 달아 ‘적절한 위치’도 추가로 물었다. 조합원 64.0%가 참사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영락공원(자동차로 30여분 거리) 등 제3의 장소’를 지지했다.

2023년 6월9일 “지난 2년간 의논과 회의들은 결과 없는 탁상공론의 연속이었습니다.”

추모 공간 설치를 위해 광주시와 동구청, 현산을 오가며 오랜 시간 속을 태웠던 이진의 유가족 대표가 2주기 추모식에서 “관계자분들의 관심”을 호소하며 말했다.

“저희가 거창한 비석과 건물을 만들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덟 사람이 다치고 아홉 사람이 죽어 나간 그 현장. 그 자리에 억울하고 비참하게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는 나무를 심고 싶었습니다.”

1주기 추모식에서도 그는 말했다.

“책임자들은 처벌을 면했고 당연히 주어질 것이라 생각했던 추모 공간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시 1년이 지난 뒤에도 그의 호소는 계속되고 있었다.

참사 희생자인 김희진(가명)씨가 참사 40여분 전 어머니 문병을 가기 위해 집에서 출발하며 보낸 문자. 어머니 이정순(가명)씨는 딸이 남긴 마지막 문자 아래로 이젠 세상에 없는 막내에게 보내는 편지를 2년간 이어 쓰고 있다. 이문영 기자

“잊히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

2023년 5월25일 “어딜 가든 막내가 불쑥불쑥 나타나니까.”

원식씨와 정순씨는 지난해 10월 광주를 떠나 큰딸이 사는 경기도 하남으로 이사했다. “울컥울컥 올라오는 슬픔과 분노로 날마다 낯선 도시를 걷고 헤맸”다. 그들은 ‘현산한테서 보상금 받아 부자됐다’는 “못된 소문”에 큰 상처를 입었다. 시장에서도, 미용실에서도, 성당에서도, 가는 곳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헛소문들이 딸을 빼앗긴 그들을 괴롭혔다. 원식씨는 “평소 친했던 사람들조차 그 말을 하는 걸 듣고 피가 거꾸로 솟아” 절연했다.

2주기가 가까워 오면서 부모는 다시 자책했다. “내가 아파서 그 병원에 입원해 있지 않았다면.” 정순씨는 “엄마가 죄인”이라며 울었다. “그때 10분만 일찍 집에서 출발했다면, 앞자리에 앉을 때 억지로라도 끌고 갔다면.” 원식씨는 버스 타기 직전 선글라스를 쓰고 쳐다보던 딸에게 ‘이쁘다’는 말 한마디 해주지 않은 자신을 두고두고 책망했다. 서경씨는 “동생이 잊히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세상이 동생의 죽음을 잊으면 내 아이들도 언제든 위험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커졌”다.

원식씨는 딸의 2주기 추모식이 끝나면 그동안 차마 보지 못했던 ‘그 버스’를 보러 갈 생각이었다. 참사 버스는 지난해 1월 북구의 한 폐쇄된 정수장으로 옮겨져 보관 중이었다. 처참하게 짓눌린 버스는 지금도 계속 망가지고 있었다.

참사 당일 버스로 진입해 원식씨를 구조했던 김영조 소방장은 7개월 뒤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 현장(25층과 26층 사이)에서 잔해에 깔린 한 남성의 발을 발견했다. 화정동 참사의 최후 수습자가 된 그의 대학생 아들이 희생자들의 공동 발인(6명 중 4명·지난해 2월7일)을 앞두고 말했다.

“학교를 오가며 학동 참사 현장을 자주 봤어요. 그때 내가 좀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아버지가 이렇게 돌아가시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요.”

지난해 5월 시작된 화정 참사 재판에서 현산은 학동 참사 유족을 대리했던 광주의 법무법인을 변호인단으로 추가 선임(학동 참사 1주기 이튿날 선임계 제출)했다.

※하편에선 14년 전부터 시작된 학동의 비극과 지금도 어디선가 뿌려지고 있는 비극의 씨앗을 이야기합니다.

광주/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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