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보다 위협적인 ‘카드 값’…국가안보에 짓눌린 ‘일상 전쟁’

한겨레 2023. 6. 1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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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김성경의 탈분단 사유][후쿠시마 오염수 방류][한겨레S] 김성경의 탈분단 사유
‘안보 독점’의 이면
‘강제동원·오염수’ 권력자 맘대로
‘성역화한 안보’ 다른 사안 압도
일상적 고통, ‘사소한 것’ 치부
안보 문제부터 시민이 개입해야
유국희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전문가 현장시찰단장이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주요 활동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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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31일 새벽 6시32분. 위급 재난 문자가 서울 지역 주민들에게 발송됐다. 혼란이 상당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일상으로 돌아간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시민들에게 이번 사건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었다는 사실보다 또 하나의 오발송 재난 경보 정도로 치부되는 듯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래 하루에도 수차례 울려대는 재난 문자에 익숙해진 탓일까? 아니면 정전 70년 동안 지속된 군사적 위협과 전쟁 위기에 더는 예민하게 감각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아서일까? 미국의 전략무기와 일본의 군함이 아무렇지도 않게 영공과 영해를 드나들고 중국과 러시아 전투기가 남해와 동해 영공 외곽지역인 ‘카디즈’에 진입해도 한국 사회는 이상하리만치 고요하다.

전쟁 위기에 무감각한 이유에 대해서 몇 가지 추측은 가능하다. 아마도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굳은 믿음이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 나름의 근거도 존재한다.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세계 전쟁을 뜻하는 것이기에 불가능하다는 분석이 있다. 세계 10위권인 한국 경제 규모를 생각할 때 이곳에서의 전쟁은 자본주의 체제의 엄청난 위기를 촉발할 것이므로 전쟁이 일어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인간이 이성적 존재라면 인류 절멸의 길로 내몰 판단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존재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믿음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세계 대전의 끔찍한 경험을 했던 유럽에서 또다시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전쟁으로부터 안전한 곳은 없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발 에너지·식량 위기는 세계 경제에 부담이 되지만 자본주의 체제는 또다시 빠르게 적응하기까지 한다. 경제적 이유만으로 전쟁을 막아서기 어렵다는 뜻이다. 전쟁으로 인한 죽음과 고통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삶을 망가뜨렸지만 다른 지역의 사람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나름의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더욱이 전쟁과 폭력의 역사는 인류가 결코 이성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정의롭거나 올바른 선택만을 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불가능하지 않은 이유다.

잊지 못할 과거가 ‘하찮은 넋두리’로

전쟁 위기에 대한 무감각의 또 다른 이유는 안보 문제에 있어 한국 사회와 시민들이 공유하는 무기력 때문이다. 핵무기를 위시한 안보 위기는 국가가 주요 행위자로 작동하는 국제관계의 영역으로 구분되는 까닭에 시민의 역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국가 안보와 군사력에 관련된 정보는 오직 극소수 정치인과 군인들만이 공유하며, 성역화한 안보 문제는 사회 내 어떤 문제보다 우선시된다. 일찍이 페미니스트 국제정치학자들이 일갈한 것처럼 국가 안보와 국제 정치는 소수의 남성들이 장악한 영역으로 국가와 사회, 남성과 여성, 국제와 국내, 정치와 일상이라는 위계와 서열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국가, 남성, 국제, 정치는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그것의 반대 항으로 존재하는 사회, 여성, 국내, 일상의 문제를 사소한 것으로 폄하한다.

다시 말해 국가 안보라는 성역은 사회 문제보다 우선하며, 여성을 포함한 소수자의 입장이나 혹은 일상의 폭력이라는 시각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인식이 암묵적으로 통용된다. 군사훈련과 무기 생산이 만들어낸 환경오염, 일본군 성노예와 미군 기지촌 여성이 경험한 폭력, 일상 속 군사주의와 구조화된 성차별 등이 국가 안보라는 패러다임 아래 사소한 것으로 취급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구체적으로는 윤석열 정부에서 △사회적 갈등과 피해자 의견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졸속으로 일본의 강제동원 배상 문제를 처리하고 △충분한 사회적 합의 없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며 △엄청난 군사비와 군사적 긴장을 초래할 수 있는 미국 핵잠수함 기항을 추진하는 것 등은 국가 안보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다뤄지는지를 증언한다. 국가 안보라는 미명 아래 사회적 위험과 갈등이 무시되고 있으며 국민이 경험하는 고통과 폭력은 “미래의 발목을 잡는 과거사”로 치부되는 것이다. 여기서의 미래는 모두의 것이 아닌 국가의 미래이며, 잊을 수 없는 과거는 하찮은 사람들의 넋두리로 전락하고야 만다.

자살·산재·우울증…이미 전쟁 중

그러나 문제는 그 ‘사소한’ 문제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에게 전쟁 위기는 자신들이 어찌할 수 없는 머나먼 세계 이야기이지만 당장 일상에서 경험하는 불평등, 실업, 폭력, 차별은 각자의 생존을 위태롭게 하는 실존적 위협이다. 한때 회자됐던 “핵전쟁보다 더 무서운 건 이번달 난방비”라는 우스갯소리를 무겁게 해석해야 하는 까닭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토록 사소해 보이는 문제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산재사망률 3위, 우울증 유병률 1위가 의미하는 것은 한국 사회가 이미 ‘전쟁 중’임을 징후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적어도 현재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체감하는 가장 큰 위협은 북한과의 전쟁이 아니라 ‘카드 값’과 전기요금 고지서이며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일상의 폭력과 혐오다. 지금 국가가 지키고자 하는 국가 안보에 과연 구성원 각자 삶의 구체적 문제가 포함돼 있는지 되물어야만 한다.

국가 안보라는 만능키는 사회 내 수많은 문제를 제압하는 데 효과적이다. 국가를 향해 다른 목소리를 내는 비판자들을 반역자로 낙인찍는 것도 가능하다. 일상 속 생존 경쟁으로 탈진한 사람들의 손쉬운 전략은 국가적 안보 위기에 무감각해지거나 아니면 침묵하는 것이다. 권력자에게 전쟁 위기 문제를 일임하는 것을 선택하기도 한다. 어쩌면 한반도 전쟁 위기의 주요 행위자인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북한은 국가가 안보라는 이름으로 사회와 시민들을 어떻게 통치해왔는지 보여주는 사례일는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가 조금이라도 다른 길을 걷고자 한다면 지금이라도 시민이 안보 문제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 무기는 안 된다고,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그 어떤 행태도 용납할 수 없다고 단호히 말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자 경험하는 일상의 불안과 고통이 안보 문제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간파하는 것이 먼저다. 국가 간의 평화가 아닌 구성원 모두의 평화를 꿈꾼다면 더더욱 안보 문제를 소수의 권력자에게만 맡겨둬서는 안 된다.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영국 에식스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성공회대, 싱가포르국립대를 거쳐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북한 사회와 탈분단 문화를 연구하며, <갈라진 마음들> 등 다수 학술 논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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