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용 넘어 레저용까지…픽업트럭 ‘거침 없는 질주’ [ESC]

한겨레 2023. 6. 1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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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자동차]자동차 픽업트럭 돌풍
화물차로 분류돼 세금 적지만
외제차 풀옵션 ‘고가 전략’ 주효
‘허머’ 등 전기차 재탄생 관심
쉐보레 콜로라도

픽업트럭은 국내법상 화물차로 분류되기 때문에 배기량과 관계없이 연간 자동차세가 2만8500원에 불과하다. 일반 승용차에 붙는 개별소비세(3.5~5%)와 교육세(1.5%)도 면제되고 취득세 역시 5%로 승용차(7%)보다 저렴하다. 픽업트럭의 낮은 세금은 가격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적은 부담으로 승용과 상용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이루려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픽업트럭을 만들고 있는 케이지(KG)모빌리티(옛 쌍용자동차)는 레저 쪽에 더 무게를 두는 쪽으로 픽업트럭의 이미지를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하지만 재택근무가 확산되고 레저 활동이 증가하면서 레저용 픽업트럭 구매가 늘고 있다.국내에서 이런 바람을 주도한 건 픽업트럭의 나라인 미국의 자동차 제조사들이다. 미국 자동차 제조사의 픽업트럭 사랑은 대단하다. 매년 신차 판매 순위 상위권을 픽업트럭이 휩쓸고, 소형, 중형, 대형, 심지어 특대형까지 있어 소비자의 선택지도 다양하다.

수입 픽업트럭 ‘완판 행렬’

지프 글래디에이터

가장 먼저 한국 땅을 밟은 건 쉐보레의 중형 픽업트럭 콜로라도다. 케이지모빌리티의 렉스턴 스포츠보다 1000만원이나 비쌌지만 ‘쌍용차’와는 다른 이색적인 스타일도 주목받았고 쉐보레가 국내 시장에서 쌓았던 품질에 대한 신뢰성 덕분에 준수한 판매량을 보였다. 또 다른 미국 자동차 제조사인 지프는 27년 만에 픽업트럭을 부활시켰다. 새 모델의 이름은 글래디에이터로 오프로드용 픽업트럭을 표방한다. 지프의 오프로드 자동차 아이콘인 랭글러를 베이스로 만들어 별명이 ‘짐칸 있는 랭글러’다. 특색있는 생김새 때문에 패션 피플들에게도 큰 사랑을 얻었다. 뒤이어 포드가 레인저를 선보였다. 포드는 픽업트럭의 명가로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픽업트럭(F-150)을 생산하고 있는데 그보다 작은 레인저에 에프(F)-150의 디엔에이를 녹여냈다.

국내에 들어오는 수입 픽업트럭은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옵션을 집어넣어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세 부담이 적어 가격경쟁력을 갖춘 픽업트럭에 이런저런 옵션을 덧붙이는 건 수입 브랜드의 의도된 전략이다. 한국의 소비자들이 국내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고급 픽업트럭을 원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 시장의 움직임도 그렇다. 과거 쌍용차가 주도했던 국내 픽업트럭 시장은 점차 감소해 지난해 판매량은 3만대 선이 붕괴됐다. 하지만 수입 픽업트럭의 상황은 다르다. 판매대수가 많지는 않지만 국내에 들어온 물량 모두가 완판 행렬이다. 숫자는 적지만 수요층이 확실하다는 이야기다.

이에 지엠(GM)은 국내 픽업트럭 시장의 성장을 확인하고 쉐보레에 이은 두 번째 브랜드인 ‘지엠시’(GMC)를 국내에 출시했다. 지엠시는 지엠에서도 픽업트럭이나 밴·버스 등 상용차를 주로 생산하는 브랜드다. 브랜드 네임 마지막에 붙은 ‘시’(C)는 ‘상업’을 뜻하는 ‘커머셜’(Commercial)의 앞자다. 하지만 이름과 다르게 국내 시장에서는 상용차임을 교묘하게 숨기고 ‘럭셔리 액티비티 브랜드’를 표방한다. 그런 방식으로 국내에 들어온 픽업트럭은 시에라, 그 중에서도 최상위 모델인 ‘시에라 드날리’ 단일 모델로만 판매된다. 차량 길이는 6m에 육박하고 내부 디자인이 소박한 다른 차종과 달리 천연 가죽시트와 나무 질감이 살아있는 대시보드 등 고급 소재를 대거 사용했다. 크기가 커 운전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고해상도 광각카메라를 적용한 룸미러와 13.4인치의 고해상도 터치스크린 등 다양한 편의장비를 갖췄다. 다만 가격은 비싸다. 시에라 드날리의 가격은 국내에 시판된 픽업트럭 중 최고가인 9330만원이다. 비싼 가격에도 초도 물량은 이미 모두 팔렸고, 올해 연말까지 준비된 물량도 예약판매가 끝났다. 상용차인 픽업트럭을 고급 레저 활동을 위한 탈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지엠의 작전은 완벽하게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선보이며 패밀리카 넘봐

픽업트럭이 상용차에서 프리미엄 레저용으로 탈바꿈한 상황에서 국내 시장은 어떤 변화를 맞이할까? 역시 이슈는 전동화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세단과 스포츠실용차(SUV)에서 픽업트럭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테슬라는 픽업트럭인 사이버트럭에 대한 국내 예약 판매를 받고 있다. 올해 글로벌 출시가 확정된다면 내년부턴 우리나라 도로에서 사이버트럭을 볼 수도 있다.

테슬라 사이버트럭

시에라로 재미를 본 지엠시 역시 전기 픽업트럭을 준비 중이다. 10년 전 역사 속으로 사라진 허머를 대배기량 엔진이 아닌 전기모터와 배터리를 얹어, 스포츠실용차가 아닌 픽업트럭으로 부활시키는 것이다. 지엠시는 올해 허머 이브이(EV)의 한국 출시를 검토했지만, 미국 현지 계약이 급증하면서 공급할 수 있는 물량이 바닥나 국외 판매가 미뤄지고 있다. 미국의 신생 전기차 스타트업 리비안은 한국에서 상표권 출원을 마쳐 국내 시장 진출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지엠시(GMC) 허머 이브이(EV)

국내 픽업트럭은 고급 레저를 위한 자동차 장르로 자리잡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미국처럼 패밀리카 수준까지 영역을 확장할 수 있을까? 아직 그 시장이 미미하기에 확답을 내릴 순 없다. 하지만 세단이 승용의 주류였던 과거 시장에서 비주류였던 스포츠실용차가 세력을 점차 넓혀 패밀리카 시장을 흔든 것처럼 픽업트럭도 그러지 말라는 이유는 없다. 비주류가 주류가 되는 게 역사의 진보라고도 할 수 있다.

김선관 자동차 칼럼니스트

사진 각사 제공

작당 모의하는 걸 좋아해 20대 때는 영화를 제작했고 현재는 콘텐츠 제작 회사 <에디테인>에서 크리에이티브 에디터를 맡고 있다. 관심사는 사람·방향·풍류. 속이 꽉 찬 한량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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