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사이 제대로 낀 韓 반도체… 파훼법은

이한듬 기자 2023. 6. 10.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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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S리포트-'풍전등화' 위기의 반도체 실적 개선은 언제] ② 패권다툼에 한국 '난감'

[편집자주]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한 수요 부진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주요 반도체 업체들의 실적이 악화했다. 챗GPT 열풍 등의 영향으로 올 하반기부터 업황 반등이 기대된다는 장밋빛 관측이 나오지만 큰 폭의 실적 개선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국제 정세도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격화하는 미·중 갈등 속 샌드위치 신세가 된 것. 미·중 시장 모두 포기할 수 없는 한국 업체로서는 난감하다.

2022년 11월 1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났다. / 사진=로이터
▶기사 게재 순서
①솔솔 피어나는 반도체 반등론
②美·中 사이 제대로 낀 韓 반도체… 파훼법은
③반도체 기초체력 키울 키워드… 기술 개발·용인 클러스터
한국 반도체 업계에 암운이 드리웠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점차 심화하면서 그 불똥이 한국으로 튀고 있어서다. 주요국과 연대로 반중(反中) 동맹을 추진하는 미국은 한국의 동참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중국도 최근 한국과 반도체 협력을 강화하자는 신호를 보내고 있어 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입장이 난처하다.


미국 반도체 맹공에 중국 반격 본격화


최근 중국 상무부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APEC 무역장관 회의에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 회담 뒤 "반도체 산업망과 공급망 영역에서의 대화와 협력을 강화하는 데 동의했다"고 발표했다.

한국이 "상호존중을 기반으로 양국 경제협력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며 통상적인 수준의 양국 경협을 언급한 데 비해 중국은 반도체 산업을 콕 찍었다. 해석에 따라선 한국이 중국와 반도체 공급망에 협력한 것으로 비춰질 여지가 있다.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와중에 나온 발표라는 점에서 업계는 중국이 대(對)미 견제를 강화하는 동시에 한국이 미국 편에 서지 못하도록 압박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분석한다.

앞서 중국 사이버정보국(CAC)은 마이크론 제품에 심각한 네트워크 보안 문제가 있어 중대한 안보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자국 기업들에게 제품 구매를 중단하도록 했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제한에 반격한 것이다.

마이크론은 한국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와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삼분한 업체다. 타이완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43.2%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마이크론과 SK하이닉스가 각각 28.2%, 23.9%로 뒤를 잇고 있다.

세 업체의 점유율 합계가 95.3%에 달하는 과점 시장에서 마이크론 제품을 배제하면 대체 수요는 자연스럽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제품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중국 업체들이 5~6월부터 삼성전자, SK하이닉스로부터 재고축적을 위한 단기 주문을 늘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는 전혀 달가운 상황이 아니다. 미국이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한국 업체가 대체해선 안 된다며 노골적인 압력을 가하고 있어서다. 마이크 갤러거 미 하원 미·중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은 "한국의 기업들이 마이크론을 대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이클 맥콜 공화당 의원도 로이터 통신에 보낸 성명에서 "미국 회사, 미국과 그 파트너 및 동맹국은 중국의 경제적 침략에 맞서야 한다"고 했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진퇴양난 한국… 견제 벗어날 방법은


한국 입장에선 미국의 요구를 무시하긴 어렵다. 미국은 지난해 중국으로의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조치를 내린데 이어 '반도체 과학법'을 발표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중국 내 생산능력 확대를 제한했다. 미국으로부터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10년간 중국에서 첨단 반도체 생산능력을 5% 이상, 범용 반도체는 10% 이상 늘릴 경우 혜택을 전액 반환해야 한다.

중국에 공장을 둔 한국 기업은 이 같은 미국의 규제를 적용받기 때문에 투자시설을 함부로 늘릴 수 없다. 현재 삼성전자의 낸드 캐파(생산설비투자) 38%가, SK하이닉스의 D램 캐파의 44%가 중국에 위치해 있다. 또한 삼성전자는 쑤저우에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SK하이닉스는 충칭과 다롄에 각각 후공정, 낸드플래시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한국 정부가 미국에 한국 기업의 중국 생산능력 확대 허용 기준을 두 배로 늘려달라고 요청한 상황에서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대체하지 말라는 미국 정치권의 요구는 사실상 경고다.

중국의 눈치도 살펴야 한다. 한국의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경제성장률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2.8%이며 반도체 대중 수출 비중은 55.1%다. 품목별로는 ▲시스템반도체 32.5% ▲메모리반도체 43.6% ▲반도체 장비 54.6% ▲반도체 소재 44.7% 등이다. 지난해 한국이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칩4)에 참여를 결정하자 중국이 "상업적 자살행위"라고 노골적으로 위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양국의 패권다툼 사이에서 한국 반도체 업계의 활로를 찾으려면 정부가 직접 대응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한국은행은 최근 발간한 '한국 반도체 수요구조의 특징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미중 갈등은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생산, 투자 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이에 따른 영향을 다각적으로 점검하고 대응책을 마련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는 "지속적인 대화와 협상으로 현 상황을 풀어가는 방법밖엔 없다"며 "반도체 산업 전략에 관한 한국의 선택이 미국과 중국 어느 한 쪽의 편을 드는 게 아니라 반도체 핵심 제조국으로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 것임을 끊임없이 설득하고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한듬 기자 mumfor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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