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와인] ‘무대 뒤에서 무대 앞으로’ 말도나도 로스 올리보스 빈야드 샤르도네

유진우 기자 2023. 6. 10.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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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그저 포도를 따서 오랫동안 묵혀 놓는다고 저절로 와인이 되지 않는다.

포도를 수확한 다음 솎아내서 찧고, 발효해서 압착하려면 어지간한 가공식품 공장 못지 않은 여러 장비가 필요하다. 수만종 와인이 난립하는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티끌만한 불순물까지 걸러내고, 미세하게 온도를 조절하는 첨단 장비도 갖춰야 한다.

여기에 와이너리 하면 떠오르는 수많은 참나무통을 보관할 공간, 완성한 와인을 병에 넣을 컨베이어 벨트까지 감안하면 인력은 물론, 비용이 만만치 않게 필요하다.

이 때문에 미국은 물론 프랑스, 이탈리아 같은 여러 와인 생산국에서는 소유한 포도밭에서 포도는 키우지만 와인은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들은 대부분 정성껏 키운 포도를 와인 양조시설을 가진 다른 생산자들에게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일부는 소작농(小作農)처럼 포도밭 주인으로부터 밭을 빌려 와인용 포도를 소량 키우거나, 그저 포도밭을 관리하는 관리인으로 일한다.

좋은 포도를 키워내는 것 또한 숭고한 일이다. 하지만 와인 양조용 포도 품종을 키우는 재배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저 포도를 키우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결과물인 와인을 만드는 일에 도전하고 싶어한다.

와인을 만드는 일은 포도를 키우는 일보다 부가 가치가 높다. 좋은 와인을 만들면 단순히 포도를 키울 때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금방 썩어버리는 포도와 달리 와인은 오래 보관할 수 있다. 이런 와인을 만든 양조가들은 일생에 걸쳐 시장과 평단에서 마치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 같은 대접을 받는다.

말도나도 패밀리 빈야드(Maldonado Family Vineyards)는 와인으로 써내려간 ‘아메리칸 드림’ 성공 신화를 대표하는 와이너리다.

이 와이너리는 2002년 문을 열었다. 수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 유명 와이너리는 물론, 와이너리 역사가 짧은 미국에서도 비교적 최근 생긴 와이너리에 속한다.

그러나 시작은 창립 40년 전인 19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말도나도 패밀리 빈야드 설립자 호세 과달루페 말도나도는 그해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는 멕시코에서 토르티야 공장과 여러 소매점, 작은 영화관을 운영하는 ‘사장님(el jefe)’이었다.

생활은 윤택했지만, 안정적인 치안과 기회의 땅에 대한 열망은 그와 가족을 미국으로 이끌었다. 대부분 이민 1세대가 으레 그렇듯, 멕시코에서 넉넉했던 그였을지라도 미국에서 시작은 그저 포도를 따는 노동자였다.

그는 포도 수확철에는 당시 막 성장하기 시작한 캘리포니아 일대 포도밭에서 일했다. 포도 수확 시기가 끝나면 나파밸리에서 가장 부자 동네에 속하는 칼리스토가에서 타코를 팔았다. 멕시코에서 여러 가게를 운영했던 경험은 빛이 났다. 그는 곧 인근에 두번째 타코 매장을 열었다. 포도 수확일과 포도밭 관리 일도 꾸준히 병행했다.

그래픽=손민균

그의 성실함은 곧 당시 나파밸리에서도 명망이 높은 와인 생산자 피터 뉴튼 눈에 들어왔다. 영국인 피터 뉴튼은1977년 중국인 아내와 함께 뉴튼 와이너리를 설립한 나파밸리 와인 1세대다.

그가 세운 뉴튼 와이너리는 2001년 세계 최대 고가 소비재 브랜드 LVMH가 인수할 만큼 품질과 상징성이 높다. 이 와이너리는 지금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비싼 와인을 만드는 와인 메이커를 줄줄이 내놓은 ‘사관학교’기도 하다.

호세 과달루페 말도나도 역시 뉴튼과 일하면서 포도밭 관리를 넘어 와인 만드는 법을 배웠다. 같이 일하던 존 콩스가드는 그에게 훌륭한 화이트 와인 만드는 법을 전수했다. 존 콩스가드는 ‘죽음과 부활(death and resurrection)’이라는 전설적인 와인 양조 기법을 개발한 와인 양조가다.

이 양조법은 먼저 와인을 1년 정도 길게 발효한다. 이 과정에서 와인 속 효모가 산소와 접촉하면서 와인 색이 탁하고 어두워진다. 하지만 2년 동안 오래 숙성하면 효모가 녹아들면서 탁했던 와인 색이 황금빛으로 바뀌고, 맛과 향도 풍부해진다.

이들과 수십년을 일하면서 화이트 와인 만드는 법을 숙달한 호세 과달루페 말도나도는 자신만의 와인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마침내 2002년, 미국으로 건너온 지 40년 만에 아들과 함께 가족 와이너리 말도나도 패밀리 빈야드를 열었다.

이 와이너리는 나파밸리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남쪽 재미슨 캐년에 자리를 잡았다. 그나마도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과 함께 천정부지로 치솟던 나파밸리 포도밭 값을 감당하기 어려워 고작 10에이커(약 1만2000평)를 사는 데 그쳤다. 첫 생산량은 3000병에 그쳤다.

그러나 이내 평론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시작하면서 생산량이 급격히 치솟기 시작했다. 현재 말도나도 패밀리 빈야드 연간 와인 생산량은 12만병을 웃돈다.

‘말도나도 로스 올리보스 빈야드 샤르도네’는 말도나도 패밀리 빈야드가 자랑하는 간판 와인이다. 호세 과달루페 말도나도가 뉴튼 와이너리에서 존 콩스가드에게 배웠던 화이트 와인 만드는 법 그대로 호세 과달루페의 아들 휴고 말도나도가 만든다. 휴고는 미국에서 양조학으로 가장 이름 난 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에서 포도 양조학을 전공한 수재다. 가족의 안녕을 위해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넘어온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한 셈이다.

말도나도 패밀리 빈야드는 존 콩스가드와 친분을 이용해 콩스가드 와인을 숙성할 때 사용했던 참나무통을 그대로 쓴다. 콩스가드가 만든 와인은 750밀리리터(ml) 1병에 900달러(약 120만원)를 웃돈다. 1병에 30달러 수준인 말도나도 패밀리 빈야드에 비하면 훨씬 비싼 와인을 만든다.

굳이 가격을 언급하지 않아도 다른 와이너리에 사용했던 참나무통을 넘겨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와인을 숙성한 참나무통에는 와이너리마다 개성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음식점으로 치면 씨간장을 나눠주는 것과 비슷하다.

휴고 말도나도는 “인종적 장벽과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시도해보려고 한다”며 “남들이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할 수록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900달러 와인을 익혔던 참나무통에서 30달러 짜리 와인을 숙성하는 시도는 이런 도전 의식에서 나왔다.

말도나도 로스 올리보스 빈야드 샤르도네는 2023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화이트 와인 신대륙 6만~10만원 부문 대상을 받았다. 수입사는 와인투유코리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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