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상처를 치료해 준 파독 간호사의 첫사랑을 찾아서
눈부신 안부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316쪽 | 1만6000원
여기 거짓말에 일찍 눈을 뜬 소녀가 있다. 화자 ‘해미’는 열한살에 친언니를 도시가스 폭발 사고로 떠나보냈다. 가족과 함께 이주한 독일에서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 해미가 할 수 있는 것은 친언니의 죽음으로 힘들어하는 가족에게 ‘잘 지낸다’며 거짓말하는 것뿐. 그곳에서 만난 ‘이모’들이 해미가 선의의 거짓말에 무뎌졌음을 알아차린다. 어린 나이에 파독 간호사로 청춘을 바쳤고, 더 이상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들이다. 해미는 이모들, 그 자녀들과 어울리며 비로소 세상의 온기를 느낀다.
소설은 서른이 넘어, 번아웃이 온 해미가 과거를 잔잔하게 되짚으며 전개된다. 거짓말로 소중한 이들을 지키던 그는 이제 타인과 마음을 터놓고 지내지 못하게 됐다. 우연히 자신의 첫사랑 ‘우재’를 만나며, 미뤄왔던 숙제가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독일에서 해미를 위로해 줬던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찾는 일. 선자 이모는 뇌종양으로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해미는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안부를 건네온 수많은 인물들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거짓말로 아픔을 덧칠했던 소녀는 비로소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지게 된다.
문지문학상을 비롯해 굵직한 문학상을 휩쓴 백수린이 등단 12년 만에 내놓은 첫 장편 소설. 해미가 성장하는 서사는 결국 한 문장을 길게 풀어놓은 것과 다름없다. “다정한 마음이 몇 번이고 우리를 구원할 테니까.” 선자 이모가 죽기 전 첫사랑에게 남긴 편지의 한 문장이다. 책은 빛이 닿지 않는 곳에 사는 이들에게 건네는 다정한 문장들로 가득하다. 그 문장이 독자들에게 닿기를 바라는 작가의 모습에서, 어린 ‘해미’를 돌보던 ‘이모’들의 다정한 마음이 엿보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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