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의 벽돌책] 사랑에 빠진 두 여인에게 정말 죄가 있을까
동성애가 가혹하게 배척되는 시대에 두 젊은 여인이 갑작스럽게 사랑에 빠진다. 성애 묘사가 무척 관능적이면서도 아름답다. 그런 그들을 둘러싸고 범죄가 벌어지는데, 이들은 경찰의 도움을 요청할 수는 없는 처지다. 일은 점점 꼬이고, 이 연인들은 범죄의 진상을 놓고 서로를 불신하게 된다….
세라 워터스의 대표작 ‘핑거스미스’(열린책들)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고, 오늘 소개하려는 ‘게스트’(자음과모음)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두 책 모두 한국 번역본 기준으로 700쪽이 넘어가는 두툼한 분량이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며, 여성과 성소수자가 받는 차별을 말하고, 배경이 되는 사회 풍경 묘사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두 작품 사이에 차이점도 있다. ‘게스트’는 ‘핑거스미스’처럼 현란하게 플롯을 꼬아놓지는 않았고, 이야기의 호흡도 느리다. ‘핑거스미스’처럼 반전이 촘촘히 들어 있는 화끈한 서스펜스를 기대하고 집어 들었다간 실망할 수도 있다. 범죄가 발생하는 것도 이야기가 한참 진행되고 나서다. ‘게스트’는 추리물이라기보다는 흡인력 있는 드라마이며, 인물들의 고통에 보다 집중한다.
이 소설의 연인들은 ‘핑거스미스’의 주인공들과 달리 강단이 있지도 않고, 야무지지도 않다. 행동도 부족하다. 대신 그만큼 그들을 둘러싼 상황이 더 절망적으로 다가온다. ‘게스트’의 연인들은 ‘핑거스미스’의 주인공들보다 더 좌절하고 더 두려워한다. 거기에 공감하고 몰입하는 데 독자의 성적 지향은 아무 상관이 없다. 그들의 죄와 그에 합당한 벌에 대한 고민은 끝내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핑거스미스’처럼 휘몰아치는 이야기가 아니어서 문장들에 더 여유가 있었던 걸까, 보다 현대에 가까운 시대가 배경이어서일까. 1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 사회를 살아가는 갑남을녀들의 좌절과 공허함도 잘 전달된다. 많은 이들이 가족을 잃었고, 전쟁터에서 돌아온 군인들은 일자리가 없어 울분에 차 있다. 경제난 속에 희망은 보이지 않고, 특히 여성은 독립하기 어렵다. 책장을 덮을 때에는 주인공 연인들뿐 아니라 살아남은 모든 등장인물들을 응원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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