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테러·대형사고… 재난이란 악마는 또 찾아온다

곽아람 기자 2023. 6. 10.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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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가 만난 사람] 줄리엣 카이엠 케네디스쿨 교수

악마는 잠들지 않는다

줄리엣 카이엠 지음|김효석·이승배·류종기 옮김|민음사|308쪽|1만8000원

“대피 경보 발령의 혼돈이 잦으면 대중은 어느 순간 대응하지 않게 될 거다. 정부는 무엇보다 실수를 인정하고 대중의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아 단잠 자던 시민들을 혼란에 빠뜨린 최근 서울시의 북한 미사일 경계경보 발령 사건에 대한 견해를 묻자 줄리엣 카이엠(53)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모든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언제 정보를 대중에게 공유할지에 관한 촉발점(trigger)의 기준을 정하는 거다. 대피 결정의 근거가 된 정보의 타당성을 보장할 만한 기준을 설정하고 검토 절차를 정립해야 한다.”

'악마는 잠들지 않는다'를 쓴 줄리엣 카이엠 하버드 케네디스쿨 교수./ⓒSam Williams

카이엠은 재난 대응, 국토 안보 분야 전문가로 오바마 행정부 국토안보부 차관보, 매사추세츠 주지사 국토안보 보좌관 등을 지냈다. 2남 1녀의 어머니로, 아이 키울 때의 응급 상황을 안보에 빗댄 책 ‘시큐리티 맘(Security Mom)’을 쓰기도 했다. 최근 ‘악마는 잠들지 않는다(The Devil Never Sleeps)’를 펴낸 그를 지난 7일 줌으로 만났다.

카이엠이 말하는 ‘악마’는 팬데믹, 테러, 허리케인, 비행기 추락 사고 등 모든 종류의 ‘재난(disater)’을 이른다. “위기(crisis)가 적절히 해결되지 않고 끔찍한 결과가 발생할 때 재난이 온다. 모든 기관의 핵심 역량이 파괴되고 제한된 시간 내 위기에 대응하는 인간의 능력이 한계에 달한다. 자칫하면 재앙(catastrophe)으로 확장된다.”

‘악마는 잠들지 않는다’는 제목이 곧 책의 골자다. 재난은 일상화돼 있고, 영원히 반복해 일어난다는 것이다. 1918년 스페인 독감에 이어 2020년 코로나19라는 또 다른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카이엠은 “재난은 일회성이 아니다. 악마는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계속 올 것”이라고 했다. “모든 재난을 별개의 사건으로 취급하기보다 공통점을 발견해 연구하면 좀 더 안전해질 수 있다.”

“위기 자체는 막을 수 없지만 그 결과를 최소화하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 카이엠 주장의 핵심이다. 1999년 Y2K 공포 때, 사람들은 컴퓨터가 2000년을 인식하지 못해 운송·의료 시스템 등이 마비될 거라 여겼다. 그러나 2000년 새해 아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Y2K 공포가 과장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당시 미국 기업들은 Y2K 사태를 예방하고 준비하는 데 최대 6000억달러 예산을 지출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전문가들은 ‘사실은 재난이 2000년을 강타했지만 철저한 준비 덕에 피할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카이엠은 코로나 발발 초기인 2020년 3월, CNN방송에 출연해 “셧다운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대중은 공포를 부추긴다며 그를 비난했다. 어머니마저 문자 메시지로 ‘네가 말을 심하게 했다’고 질책했다. 그렇지만 결국 그의 판단이 옳았던 걸로 밝혀졌다. “내게 선견지명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단지 과학을 알았을 뿐이다. 바이러스는 통제되지 않았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바이러스를 퍼뜨릴 것은 자명했다. 악마가 오고 있었다.”

재난 상황에서 보통 지도자들은 현실을 외면한다. 카이엠은 “현실을 직시하고 사고 지휘 체계(ICS, Incident Command System)를 설립해 재난을 ‘관리’해야 ‘덜 나쁜(less bad) 결과’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ICS란 재난 발생 시 지휘부가 공보·안전·조직 간 연락 담당관 등과 긴밀하게 협력해 현장 대응반, 대응 계획 수립반, 물자 전담반, 재정·총무 담당반 등이 즉각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카이엠은 “좀비 영화를 많이 접하며 세상의 종말을 예상하는 데 익숙한 집단이 코로나 사태 때 심리적으로 가장 잘 대응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말했다. “재난의 세계에서 궁극적인 판단은 항상 회색 지대에 있다. 5만명의 사망자를 낸 전염병이 60만명을 죽인 전염병보다 확실히 낫다. 우리는 ‘다시는 안 된다(Never again)’는 오래된 구호에 익숙하지만, 성공의 척도는 악마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거듭되는 악마의 귀환을 덜 비극적으로 만드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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