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아빠 찬스’와 우리의 ‘아빠 찬스’, 무엇이 다를까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국제관계학 교수 2023. 6. 1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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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장부승의 海外事情]
양국서 논란 된 아빠 찬스
박멸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지난 3월 일본 총리실 회의에 참석한 기시다 후미오(왼쪽) 총리와 뒤편에 배석한 아들 기시다 쇼타로 당시 총리 정무비서관. 쇼타로 비서관은 지난해 말 총리 공저에서 사적 모임을 가진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논란이 됐고, 기시다 총리는 이달 1일 아들을 정무비서관에서 경질했다. / AFP 연합뉴스

선관위의 ‘아빠 찬스’ 논란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국민의 분노는 선관위의 미적지근한 태도로 인해 오히려 더욱 타오르고 있다. 이 와중에 공교롭게 일본에서도 ‘아빠 찬스’ 논란으로 한바탕 떠들썩했다.

한국에선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지난 5월 29일 기시다 총리는 총리비서관인 장남 쇼타로(翔太郎)를 경질했다. 발단은 5월 24일 한 주간지의 폭로였다. 수상 공저(公邸)에서 쇼타로와 그의 친척들이 장관 흉내를 내거나 바닥에 누워 있는 사진들이 공개된 것이다.

기시다 총리는 ‘엄중 주의’를 주었다며 사태를 돌파하려 했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일본 국민의 80% 가까이가 쇼타로 비서관의 행동에 문제가 있다고 보았고, 야당은 “공사 구분이 없다”, “정부를 사유화한다”며 비판했다. 결국 지지율이 급락 조짐을 보이자 ‘읍참마속’(泣斬馬謖)에 나선 것이다.

사실 작년 10월 기시다 총리가 장남을 총리비서관에 임명할 때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일본의 총리비서관은 막강한 자리다. 총 8명 중 6명이 부처 출신, 나머지 2명은 정무직인데, 부처 출신은 보통 공직 경력 30여년의 고위 행정 관료들이다. 정무직 2명 중 1명은 이미 6년 전 경제산업성 차관을 역임한 시마다 다카시(嶋田隆). 다른 한 명은 기시다 총리가 정계에 입문하던 30여년 전부터 줄곧 함께 해 온 야마모토 다카요시(山本高義) 비서관이었다. 작년 10월 기시다 총리는 이 야마모토 비서관 자리에 큰 아들을 앉힌 것이다. 이유야 뻔하다. 지역구를 물려주겠다는 포석인 것이다.

한국이라면 나라가 뒤집힐 일이다. 하지만 일본은 정서가 좀 다르다. 정무직은 정무적 판단 하에 임명하는 것이고, 어차피 내 아들이라는 것 숨긴 적도 없으니 국민들에게 표로 심판받겠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일본 정계에는 정치세습을 거친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2001년 총리에 취임한 고이즈미 이후 지난 22년간 일본에는 기시다까지 포함해 총 9명의 총리가 있는데, 이 중 6명이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가 국회의원이다.

일본이라고 정치세습을 바라보는 시각이 곱기만 한 것은 아니다. 특히 최근 들어 4세 정치인들이 등장하면서 가문의 힘이 약해져 가고 있다. 야마구치(山口)현에서 중의원 10선을 한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 의원은 2021년 은퇴하면서 장남에게 지역구를 물려주려 했지만 실패했다. 아들은 비례대표에 이름을 올렸지만 낙선했고, 작년 참의원 선거에 재도전했지만 또 떨어졌다.

작고한 아베 전 총리의 동생인 기시 노부오(岸信夫) 방위대신 역시 올해 2월 은퇴하면서 지역구를 아들에게 물려주었고, 아들은 4월 보궐선거에 나섰지만, 총리를 3명이나 배출한 일본 최고 정치 명문가라는 후광에도 불구하고 고전했다. 자민당 텃밭인 아버지 지역구를 물려받고도 힘들게 당선됐다는 것은 그만큼 정치세습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시각이 전과 같지 않음을 보여주는 징표가 아닐까.

우리나라의 ‘아빠 찬스’는 일본에 비하면 좀 더 음습하게 그리고 치사하게 이뤄진다. ‘얘가 우리 애에요’라고 같은 조직 구성원들에게도 잘 밝히질 않는다. 그러면서도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내밀하게 부탁한다. 힘있는 사람의 아들, 딸일 경우 밑에서 알아서 기기도 한다. 혹시라도 발각되면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 뗀다. 모든 것이 집단 의사결정의 결과일 뿐이니 규정을 어긴 것이 없다고 항변한다.

사실 공직 인사 채용이나 보직을 둘러싸고, ‘아빠 찬스’가 국민적 분노를 부른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잊은 사람이 많겠지만 2010년 외교부 특채 파동으로 나라가 들썩거렸다. 당시 전현직 고위 외교관 자녀들이 채용, 보직, 연수 등에서 부당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조사 결과 대부분 사실로 밝혀졌다. 그러나 그 후 결과는 어땠는가?

사건 발단의 장본인인 장관은 자리만 물러났을 뿐 처벌을 받지 않았고, 인사담당자 몇 명만 징계를 받았을 뿐 대부분 관련자가 집단 의사결정을 방패 삼아 자리를 보전했다. 돈이 오간 것이 없다고 더 이상 수사도 형사처벌도 없었다. ‘아빠 찬스’ 재발을 막기 위한 인사위원회 개방 등 이렇다 할 제도 개혁이나 예방을 위한 별다른 입법 조치도 없었다. 이러니 어디선가 약한 고리만 나오면 또 폭발하는 것 아닌가? 이번엔 그 곳이 선관위였을 뿐, 이대로 놔두면 또 어디서 폭발할지 모른다.

지금 정부와 여당은 선관위에 대한 구원(舊怨)까지 겹쳐서인지 선관위 맹폭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이 문제는 선관위가 감사원 감사 대상인지 아닌지 정도에 그치는 차원 낮은 문제가 아니다.

윤석열 정부의 캐치프레이즈가 무엇인가? 자유와 공정 아닌가? 원래 보수세력의 사상적 기반인 자유주의는 자유로운 경쟁의 결과를 긍정하는 사상이다. 하지만, 경쟁은 언제나 ‘기회의 평등’에 근거한 ‘공정’한 경쟁이어야 한다. ‘공정’ 없는 ‘자유’는 결국 경쟁이 낳는 편향된 결과를 고착화하여 ‘자유’ 자체마저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13년 전 외교부 인사 파동 때처럼 결국 관련자 몇 명 징계하는 선에서 그쳐선 안 된다. ‘아빠 찬스’를 배제할 수 있는 근본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아빠 찬스’는 ‘공정’에 대한 도전이며, 나아가 ‘자유’에 대한 침해이기 때문이다. 근본적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자유와 공정’은 결국 냉소의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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