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감사원도 정치판이 됐다”

김경필 기자 2023. 6. 1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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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감사원의 최종 감사 결과 발표를 앞둔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기 앞서 ‘권익위 직원 징계 철회하라’ 등이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이태경 기자

국민권익위원회와 전현희 위원장의 비위 혐의를 명시한 감사원 감사 보고서가 9일 공개됐다. 그러나 보고서가 나오기까지의 곡절을 보면, ‘감사원까지 정치판이 돼 버렸다’는 한 전직 감사위원의 개탄에 달리 보탤 말을 찾기가 어렵다.

감사위원회의에는 문재인 정부에서 고위 공직을 역임한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은 최재해 감사원장을 보고서 심의에서 배제하려 했다. 전 위원장이 자기를 감찰한다는 이유로 최 원장을 고발했으니, 최 원장과 전 위원장 사이에 ‘사적 이해관계’가 생겼다는 이유에서였다. 감사원법상 배제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감사원 심의실의 설명도, ‘수사 대상자가 수사관을 고발했다고 둘 사이에 이해관계가 생기지 않는다’는 ‘권익위’의 해석도 무시됐다. 원장 배제는 1표가 모자라 무산됐지만, 성사됐다면 3대3으로 의결 정족수(4명)에 미달해 보고서 공개가 막힐 뻔했다.

문 정부 출신 위원들은 물적 근거와 진술로 확인한 비위 사실까지도 보고서에서 없애려 했다고 한다. 권익위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해 추 장관에게 유리한 유권해석을 했다는 논란이 일자, “유권해석은 전적으로 담당 실무진의 판단 결과”였다고 발표했다. 감사관들은 실제로는 전 위원장이 관여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러나 문 정부 출신 위원들은 ‘전적으로’라는 표현은 “다소 과장된 표현”일 뿐 허위는 아니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전 위원장이 정부세종청사 근무일에 지각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 확인됐지만, 문 정부 출신 위원들은 ‘전 위원장이 세종에서 근무한 날이 다른 장관급 공직자들보다 더 많다’는 엉뚱한 구실을 대며 근무 태만이 아니라고 했다고 한다.

또 있다. 비위 사실 대부분이 보고서 본문에 명시되는데도, 외부에는 ‘전 위원장의 혐의 대부분에 대해 불문(무혐의) 결정이 내려졌다’고 거꾸로 알려졌다. 이를 근거로 더불어민주당은 “먼지 떨이식 감사의 부당성이 명백해졌다”며 “감사원 사무총장을 파면해야 한다”고 호응했다.

감사원은 정부 부처처럼 장관 1인이 단독으로 모든 결정을 하는 독임(獨任)제 기관이 아니라, 복수의 위원들이 집단적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 합의제 기관으로 설계돼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같은 국가의 여러 ‘위원회’도 그렇다. 모두 해당 기관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들이다. 그러나 이런 조직 구조는 특정 당파의 이해관계를 기관에 투사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 위원 자리가 ‘우리 편’에게 주는 ‘보상’이 되면서부터다.

감사원은 통상 최근 5년 새 벌어진 비위를 감찰한다. 문 정부 시절 비위에 관한 다른 감사 보고서 여러 건이 공개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보고서들도 ‘뭉개기’를 할 것인가. 몇 년 뒤에는 현 정부 초반에 벌어진 비위에 관한 보고서들이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는 태세를 바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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