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닫힌 도시와 열린 도시

기자 2023. 6. 1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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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분양 광고 문구이다. 이 문구는 특권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직접적으로 표현하든 안 하든, 우리는 대부분 자신과 비슷한, 혹은 자신이 속하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고자 한다. 따라서 도시화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사람들이 마주하고 섞이는 과정이자, 이 속에서 동질적인 공간을 구축하려고 끊임없이 분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채석진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

리처드 세넷은 <짓기와 거주하기-도시를 위한 윤리>에서 이러한 도시화의 양면성을 세밀하게 그린다. 세넷은 우리가 “그들로부터 달아나거나, 그들을 고립시키는” 방식으로, 이질적인 타자를 기피해왔다고 말한다. 하이데거가 유대인을 피해 산골짜기에 지은 오두막이 전자의 예라면,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의 유대인 게토는 후자의 예다.

세넷의 도시 읽기가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분리가 도시 설계자의 의도와 전혀 다른 효과를 가져오는 복잡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일례로 베네치아의 유대인 게토에 대한 그의 설명을 살펴보자.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 당국은 기독교도만 도시에 수용하고 유대인 이주민을 배제하고자 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도시에서 기독교도들이 꺼리는 일들을 하는 사람들로, 도시가 제대로 작동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베네치아 당국은 특이한 도시 속의 섬으로 유대인 게토를 지었다. 이 게토는 운하로 둘러싸여 두 개의 다리로만 도시의 나머지 부분과 연결됐다. 아침에 다리가 열리면 유대인은 도시로 나가 활동하고 기독교도는 게토로 들어가 필요한 업무를 봤다. 저녁엔 각자의 거주지로 돌아가고 다리가 올라간다. 밤엔 불빛이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게토 내의 바깥을 향한 모든 문과 창문을 닫게 하여, 유대인의 존재가 도시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도록 했다.

이러한 조치는 의도치 않은 효과들을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게토는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안전하게 모여 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유대인들은 소규모로 흩어져 사는 방식으로 자신을 감추며 박해로부터 스스로 보호해왔다. 베네치아 당국이 게토 연결 다리에 세운 24시간 경비는 과격한 집단의 공격으로부터 유대인을 보호해줬다. 또한 게토 내에 거주하는 조건으로 유대교회당 설립이 허락되었다. 밤 시간은 게토 밖에서는 유대인이 사라지는 시간이지만, 게토 내에서는 교회당에서 성경 공부를 하며 유대인으로 거듭나는 시간이었다. 세넷이 주목하는 또 다른 주요한 효과는 다양한 민족 출신의 유대인들이 언어도 다르고, 공통의 문화도 없는 상태에서 함께 거주하도록 강요된 상황에서 같이 사는 방법을 배워나간 점이다. 세넷에 따르면, 이질적인 유대인 집단들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방식을 발전시키며 ‘이웃 관계’를 구성했다.

강남의 고급 아파트는 하이데거의 오두막을 연상시킨다. 하이데거는 도시 공간에 섞여 있는 유대인으로부터 달아나고자 했다. 그가 추구했던 평화로운 삶은 동질적 사람들끼리 구성하는 것으로, 이질적 타자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를 담고 있다. 앞서 언급한 강남 아파트 광고 문구가 불편함을 주는 이유는 다른 집단에 대한 배제와 혐오를 깔고 있어서다.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가 유대인 없이 돌아가지 못했듯, 현대 고급 아파트촌의 분리된 삶은 이들이 배제하고자 하는 사람들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스마트 시티는 이러한 모순을 기술적 장치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열린 도시는 산골짜기 오두막이나 스마트 시티의 ‘편리하고 단순한’ 삶 속이 아니라, 공통의 기반이 없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불편하고 복잡한’ 삶들 속에 잠재해 있다. 이미 현실에서 구성되고 있는 열린 도시를 위한 윤리적 실천들을 읽어내는 작업이 절실하다.

채석진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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