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307] 단절, 나 자신을 지키는 권력

백영옥 소설가 2023. 6. 1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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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요즘 책 마감을 맞추느라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다. 덕분에 가끔 여행 대신 여행 유튜버를 구독하며 마음을 달랬다. 듣도 보도 못한 장소를 여행하는 그들의 자유가 부러웠다. 하지만 구독하는 유튜버들이 너무 늘자 선택 장애가 왔다. 결국 정말 좋아하는 채널 몇 개만 남기고 모두 정리했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라 말할 정도로 많은 정보에 노출돼 있다. 그러나 정작 홍수가 닥치면 물이 많아도 마실 물은 없다. SNS도 그렇다. 삶의 여러 측면에서 유효한 정보를 주지만,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능력을 빠르게 빼앗는다. 가장 큰 단점은 자신이 누리는 경험의 가치를 자꾸 폄훼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지나치게 많은 정보와 경쟁 속에서 우리는 종종 나와 타인을 비교하며 자신을 과하게 비하한다.

중요한 마감이나 프로젝트처럼 집중력이 필요한 시기에는 활성화된 SNS의 타임라인을 OFF로 바꾸는 전략이 필요하다. 몰입을 방해하는 불안을 일시 차단하는 디톡스 처방인 셈이다. 스마트폰의 ‘알람’과 ‘좋아요’는 시간을 조각내고, 오염시키는 주요 원인이다. 가정과 직장에서, 휴식 중에, 잠들기 직전까지도 휴대전화를 보는 행위는 만성적 시간 부족의 원인이 된다.

카를 구스타프 융은 스승이었던 프로이트와 결별 후, 스위스 취리히 호수 부근 볼링겐 마을에 돌집을 지었다. 융은 그곳을 ‘탑’이라 불렀고 그곳에서 홀로 지내며 단순하게 생활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림자’라 불리는 인류의 무의식에 대한 그의 상상력이 학문적으로 무르익었다. 빌 게이츠도 1년에 두 번, 다이어트 콜라를 가득 채운 냉장고가 있는 통나무집에서 1주일간 아무도 만나지 않고 책만 읽었다. 그는 이 시간을 ‘생각 주간(Think Week)’이라 불렀고 마이크로소프트를 경영하며 가장 바쁘던 시절에도 예외 없이 실천했다. ‘연결’이 디폴트 값이 된 시대에 ‘단절’은 이전과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제 ‘단절’은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능력이자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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