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오스카의 영광과 부커상의 불발 사이

어수웅 여론독자부장 2023. 6. 1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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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작가의 환호를 보며
가난했던 과거의 한국 떠올라
현재의 K는 세계의 문화강국
남과의 경쟁보다 스스로 향유를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크게 아쉽지 않았다.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던 소설가 천명관의 ‘고래’ 수상이 불발로 끝났다는 소식 말이다. 2016년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이미 그 상을 받았고, 작년에도 정보라의 ‘저주토끼’와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이 각각 최종후보와 예비후보였다는 낭보를 이미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돌아와 잊고 있었는데,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의 한 인터뷰를 읽다가 새삼 생각이 났다. 인터뷰 대상은 천명관을 누르고 부커상을 받은 불가리아의 작가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그 신문의 메인 제목으로도 등장한 인상적인 답변이 거기 있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8강에서 독일을 꺾은 이후, 불가리아 최대의 쾌거입니다.”

불가리아 작가의 부커상은 처음. 그는 자신의 수상을 월드컵에 비유하고 있었다. 개인보다 국가를 앞세운 영광. 주지하다시피 부커상에서 번역가는 작가와 같은 액수의 상금을 받는 공동 수상자다. 수상작 ‘시간 대피소’(Time Shelter)를 영어로 번역한 안젤라 로델의 대답도 비장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지구상에서 가장 슬픈 나라가 아닙니다.”

1인당 소득 대비 행복 비교에서 조사 대상 국가 중 꼴찌를 기록했던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기획 기사를 그는 인용하고 있었다. 국제통화기금 IMF가 발표한 올해 4월 기준 불가리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대략 1만5000달러. 한국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그 나라의 우울은 단지 가난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중세와 근대의 화려했던 왕국 불가리아는 1·2차대전을 거치며 패전국으로 전락했고, 사회주의 소련의 위성국으로 숨죽이며 살다가 1989년에야 실질적으로 독립했다. 냉전시대의 희생양이었고, 자부심을 갖기에는 슬픈 현대사였다.

불가리아 작가와 번역가의 사자후(獅子吼)에서 두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하나는 갈수록 왜소해지는 문학의 영토에서 최선을 다해 화제를 만들고 영역을 확장하려는 이 장르의 노력이다. 부커상 발표 당시 불가리아 작가의 수상을 전하는 조선일보 런던특파원의 기사는 이 문장으로 끝난다. “이번 수상으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은 2년 연속 ‘이전에 수상한 적 없는 언어’로 쓰인 작품에 수여됐다. 지난해 상을 받은 인도 작가의 작품은 힌디어로 쓰였다.” 문학은 예술이지만, 문학상은 정치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뮤지션 밥 딜런에게 상을 줬던 노벨문학상을 보라.

또 하나는 좀 더 본질적 사안, 문학의 이유 혹은 문학의 목적이다. ‘시간 대피소’로 수상작이 결정된 뒤 천명관의 소감은 “올해의 재미있는 이벤트였다고 생각합니다” 였다. 유머 반 스푼 넣어 말하자면, 칸·아카데미·에미상을 모두 받고 BTS를 보유한 나라의 위엄이랄까. 10년 전 경주에서 열린 국제 펜 대회에서 노벨문학상 작가 두 명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한 명은 나이지리아 시인 월레 소잉카, 또 한 명은 프랑스의 르 클레지오다. 문학을 하는 이유를 물었을 때, 나이지리아 시인은 독재 권력에 대한 투쟁이 자기 문학의 엔진이라고 웅변을 토했고, 프랑스의 소설가는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느슨하게 말했다.

불가리아 작가의 감격을 이해하고 축하한다. 하지만 이제 나는 천명관의 여유가 더 매력적이다. 문화는 남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느끼고 향유하는 것. 2001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영국 작가 나이폴의 일성(一聲)은 그래서 멋졌다. “수상 통보를 듣고 매우 놀랐다. 나는 나 자신 이외에는 어느 것도 대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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