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병 투병 15년 만에 이식으로 새 생명 찾아[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김상훈 기자 2023. 6. 10. 03: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조양현 삼성서울병원 교수-확장성심근병증 김용덕 씨
소화불량-급체 원인 찾다 발견… 처음엔 약물치료-스텐트 시술
11년째부터 응급상황 수시 발생… 제세동기 이어 인공심장 삽입
이식 직전 기증자 심장 정지 불운도… 두번째 이식에 성공, 드디어 완치
김용덕 씨(왼쪽)는 15년 동안 확장성심근병증으로 고생하다 지난해 11월 심장 이식 수술 후에 완치됐다. 김 씨가 수술을 담당했던 조양현 삼성서울병원 심장외과 교수와 함께 병원 산책로를 걷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제공
충북에 사는 김용덕 씨(50)는 35세이던 2008년 당시의 기억이 선명하다. 배 속에 묵직한 돌덩이가 들어앉은 것처럼 답답해졌다. 이런저런 스트레스 때문이라 생각했다. 속을 뻥 뚫어준다고 광고하는 약을 사 먹고, 열심히 자전거도 탔다. 체했나 싶어 손가락도 따 봤다. 한의원에서 침도 맞았다. 하지만 증세는 개선되지 않았다.

김 씨는 인근 대학병원을 찾았다. 확장성심근병증 진단이 떨어졌다. 의사는 혈관확장제와 이뇨제를 처방했다. 김 씨는 그때까지만 해도 이 병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2010년에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으로 옮겼고, 심장 혈관을 확장하기 위한 스텐트 시술까지 받았다. 별 효과가 없었다. 심장 이식을 받아야 할지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김 씨는 고민 끝에 2011년 삼성서울병원으로 갔다. 상황이 더 악화할 경우 조양현 삼성서울병원 심장외과 교수에게 수술을 받고 싶어서였다.

●소화불량 증세 후 심근병증 진단

김 씨가 진단받은 확장성심근병증은 심부전의 일종이다. 심부전은 심장에 문제가 생겨 각 조직으로 제대로 혈액을 공급하지 못하는 병이다. 심장 근육에 문제가 생겼다면 심근병증(심근증)으로 진단한다. 확장성심근병증은 그중에서도 심장이 늘어나면서 심장 기능이 떨어지는 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흉통, 호흡곤란, 실신 등의 급성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심장의 펌프 기능이 약해졌기에 발목 부종도 생기고 피로감도 심해진다. 김 씨는 소화불량과 급체 증세를 느꼈다.

조 교수는 “이 또한 흔한 증세 중 하나”라고 했다. 소화를 잘해내려면 장에 많은 혈액이 공급돼야 한다. 하지만 심장 기능이 떨어지면 이게 제대로 되지 않는다. 소화불량이나 급체, 더부룩한 증세가 나타나는 게 이 때문이다. 조 교수는 “다만 이 증세만으로 심부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정밀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삼성서울병원에서도 약물치료를 계속했다. 지금은 퇴임한 전은석 박표원 순환기내과 교수들이 담당했다. 다행히 이후 7년 동안 증세는 더 악화하지 않았다. 김 씨는 “약이 내 몸에 잘 맞는 것 같았다. 어쩌면 약물치료만으로 최악의 상황으로 가지 않고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기대감까지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발병 11년 만에 심장 말기 상황 맞아

2019년부터 몸이 급격히 나빠졌다. 평상시에는 괜찮다가도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2019년에만 6회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달려갔고, 입원도 1회 했다. 2020년에도 2회 입원했다. 서울까지 올라오지 못할 정도로 긴박할 때는 인근 응급실로 직행했다. 김 씨는 약물치료가 한계에 왔음을 직감했다. 조 교수 또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심장 말기 상황이 됐다는 신호”라고 했다.

조 교수는 심장 이식이 궁극적인 해법이라고 판단했다. 심장 이식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어 심장이 멈추는 비상 상황에 대비해 제세동기를 삽입했다. 이것은 컴퓨터 역할을 하는 장치다. 심정지 상태가 되면 자동으로 작동한다. 조 교수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응급 처치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 후로도 심장 기능은 더 악화했다. 숨이 차고 배 위쪽이 불편한 증세가 수시로 나타났다. 2021년 들어서도 7월과 8월에 잇달아 응급실로 달려와야 했다. 심장 이식만 무한정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조 교수는 인공심장(LVAD) 삽입 수술을 하기로 했다.

사실 인공심장 삽입 수술은 복잡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인공심장의 1대당 가격이 1억 원을 넘기 때문이다. 워낙 고가인 터라 이 수술이 꼭 필요한지, 정말로 시급한지 등을 인정받아야 건강보험 재정에서 95%를 지원한다.

8월 말 수술 허가가 떨어졌다. 수술은 잘 끝났다. 더불어 김 씨의 심장 이식 대기 순위도 올라갔다. 보통 인공심장을 삽입하면 앞으로는 더 시도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 인정돼 이식 대기 순위가 올라간다. 현재 국내에서는 매년 170여 건의 심장 이식을 시행한다. 장기 이식 적합성, 면역 문제, 시급성 등을 고려해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인공심장 수술 후 14개월 만에 심장 이식

인공심장 삽입 수술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근 병원에서 뇌사자가 발생했다. 그의 심장이 김 씨에게 적합한 것으로 판정났다. 삼성서울병원 장기 적출팀이 심장을 공수하러 간 사이에 조 교수는 이식 수술을 준비했다. 장기가 도착하면 곧바로 이식하기 위해 김 씨의 가슴을 열고 기다렸다.

돌발 상황이 생겼다. 기증자의 심장이 갑자기 정지한 것이다. 조 교수는 다시 김 씨의 가슴을 닫아야 했다. 조 교수는 “의사 생활 하면서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라 무척 당황했다”고 말했다. 마취에서 깨어난 김 씨도 실망한 눈치였다. 그래도 또 다른 측면에서는 이식이 불발된 게 다행이었다. 건강하지 않은 기증자의 심장을 그대로 이식했을 경우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기다림은 결실로 이어졌다. 인공심장을 달고 14개월이 지났을 무렵, 마침내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무사히 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지난해 11월. 김 씨는 새 심장을 얻었다.

회복 과정은 힘겨웠다. 초기에는 심한 섬망 증세가 나타났다. 김 씨는 “칼을 들고 누군가와 싸우는 환각을 많이 봤다”고 했다. 의료진은 김 씨를 꽁꽁 묶어야 했다. 그대로 두면 주변 사람은 물론이고 김 씨 자신까지 다칠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조 교수는 “심장 이식 수술 후에 섬망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이 꽤 많다. 이는 두려움의 표출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개선된다”고 말했다.

이게 마지막 고비였다. 김 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정상으로 돌아왔고, 마침내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다. 심장병 진단을 받고 15년 만에 완치한 것이다. 면역억제제를 쓰느라 손발에 힘이 빠지고 떨리는 부작용이 있지만 대체로 건강하다. 면역억제제 용량도 점점 줄이고 있어 이 부작용도 곧 사라질 거라고 조 교수는 말했다.

●가족의 헌신-의료진 신뢰가 투병 비결

김 씨는 “아내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아내 황옥주 씨(48)는 섬망 증세를 보이는 남편이 걱정돼 지하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에서 잠을 자며 병 수발을 했다.

김 씨는 의료진의 헌신에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김 씨는 “인공심장 삽입 수술을 받았을 무렵부터 의료진이나 주변 환자들 모두가 가족처럼 여겨졌다”고 말했다. 같은 병을 가진 다른 환자들과의 소통도 큰 희망이 됐다. 조 교수는 심장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회원은 500여 명인데,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다.

요즘 김 씨는 제2의 인생을 만끽하고 있다. 예전부터 좋아했던 자전거를 다시 타고 있다. 다만 아직 체력이 회복되지 않아 1회 주행거리는 종전의 200km에서 30∼50km로 줄였다. 주행속도와 시간도 종전보다는 많이 줄어 3∼4시간 정도 걸린다. 그래도 점차 속도가 붙고 있다고 한다.

이와 별도로 김 씨는 퇴원하기 전에 30개 정도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다. 이 중 자전거 타기와 여행, 맛집에서 낮술 먹기 등 일부는 이미 이행했다. 아직 △넉넉히 책 읽기 △찻집에서 쌍화차 마시면서 수다 떨기는 시도하지 못했단다.

조 교수는 “김 씨의 이런 점을 다른 환자들이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긍정적 태도가 병을 떨치는 데 무척 중요하다는 것. 반대로 우울하거나 두려움이 강하면 결과도 좋지 않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조 교수는 환자들에게 “수술이 끝나고 퇴원하면 무엇을 하며 삶을 즐길 것이냐를 생각하시라”고 권한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