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병 투병 15년 만에 이식으로 새 생명 찾아[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소화불량-급체 원인 찾다 발견… 처음엔 약물치료-스텐트 시술
11년째부터 응급상황 수시 발생… 제세동기 이어 인공심장 삽입
이식 직전 기증자 심장 정지 불운도… 두번째 이식에 성공, 드디어 완치
김 씨는 인근 대학병원을 찾았다. 확장성심근병증 진단이 떨어졌다. 의사는 혈관확장제와 이뇨제를 처방했다. 김 씨는 그때까지만 해도 이 병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2010년에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으로 옮겼고, 심장 혈관을 확장하기 위한 스텐트 시술까지 받았다. 별 효과가 없었다. 심장 이식을 받아야 할지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김 씨는 고민 끝에 2011년 삼성서울병원으로 갔다. 상황이 더 악화할 경우 조양현 삼성서울병원 심장외과 교수에게 수술을 받고 싶어서였다.
●소화불량 증세 후 심근병증 진단
김 씨가 진단받은 확장성심근병증은 심부전의 일종이다. 심부전은 심장에 문제가 생겨 각 조직으로 제대로 혈액을 공급하지 못하는 병이다. 심장 근육에 문제가 생겼다면 심근병증(심근증)으로 진단한다. 확장성심근병증은 그중에서도 심장이 늘어나면서 심장 기능이 떨어지는 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흉통, 호흡곤란, 실신 등의 급성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심장의 펌프 기능이 약해졌기에 발목 부종도 생기고 피로감도 심해진다. 김 씨는 소화불량과 급체 증세를 느꼈다.
조 교수는 “이 또한 흔한 증세 중 하나”라고 했다. 소화를 잘해내려면 장에 많은 혈액이 공급돼야 한다. 하지만 심장 기능이 떨어지면 이게 제대로 되지 않는다. 소화불량이나 급체, 더부룩한 증세가 나타나는 게 이 때문이다. 조 교수는 “다만 이 증세만으로 심부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정밀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삼성서울병원에서도 약물치료를 계속했다. 지금은 퇴임한 전은석 박표원 순환기내과 교수들이 담당했다. 다행히 이후 7년 동안 증세는 더 악화하지 않았다. 김 씨는 “약이 내 몸에 잘 맞는 것 같았다. 어쩌면 약물치료만으로 최악의 상황으로 가지 않고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기대감까지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발병 11년 만에 심장 말기 상황 맞아
조 교수는 심장 이식이 궁극적인 해법이라고 판단했다. 심장 이식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어 심장이 멈추는 비상 상황에 대비해 제세동기를 삽입했다. 이것은 컴퓨터 역할을 하는 장치다. 심정지 상태가 되면 자동으로 작동한다. 조 교수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응급 처치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 후로도 심장 기능은 더 악화했다. 숨이 차고 배 위쪽이 불편한 증세가 수시로 나타났다. 2021년 들어서도 7월과 8월에 잇달아 응급실로 달려와야 했다. 심장 이식만 무한정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조 교수는 인공심장(LVAD) 삽입 수술을 하기로 했다.
사실 인공심장 삽입 수술은 복잡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인공심장의 1대당 가격이 1억 원을 넘기 때문이다. 워낙 고가인 터라 이 수술이 꼭 필요한지, 정말로 시급한지 등을 인정받아야 건강보험 재정에서 95%를 지원한다.
8월 말 수술 허가가 떨어졌다. 수술은 잘 끝났다. 더불어 김 씨의 심장 이식 대기 순위도 올라갔다. 보통 인공심장을 삽입하면 앞으로는 더 시도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 인정돼 이식 대기 순위가 올라간다. 현재 국내에서는 매년 170여 건의 심장 이식을 시행한다. 장기 이식 적합성, 면역 문제, 시급성 등을 고려해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인공심장 수술 후 14개월 만에 심장 이식
인공심장 삽입 수술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근 병원에서 뇌사자가 발생했다. 그의 심장이 김 씨에게 적합한 것으로 판정났다. 삼성서울병원 장기 적출팀이 심장을 공수하러 간 사이에 조 교수는 이식 수술을 준비했다. 장기가 도착하면 곧바로 이식하기 위해 김 씨의 가슴을 열고 기다렸다.
돌발 상황이 생겼다. 기증자의 심장이 갑자기 정지한 것이다. 조 교수는 다시 김 씨의 가슴을 닫아야 했다. 조 교수는 “의사 생활 하면서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라 무척 당황했다”고 말했다. 마취에서 깨어난 김 씨도 실망한 눈치였다. 그래도 또 다른 측면에서는 이식이 불발된 게 다행이었다. 건강하지 않은 기증자의 심장을 그대로 이식했을 경우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기다림은 결실로 이어졌다. 인공심장을 달고 14개월이 지났을 무렵, 마침내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무사히 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지난해 11월. 김 씨는 새 심장을 얻었다.
회복 과정은 힘겨웠다. 초기에는 심한 섬망 증세가 나타났다. 김 씨는 “칼을 들고 누군가와 싸우는 환각을 많이 봤다”고 했다. 의료진은 김 씨를 꽁꽁 묶어야 했다. 그대로 두면 주변 사람은 물론이고 김 씨 자신까지 다칠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조 교수는 “심장 이식 수술 후에 섬망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이 꽤 많다. 이는 두려움의 표출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개선된다”고 말했다.
이게 마지막 고비였다. 김 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정상으로 돌아왔고, 마침내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다. 심장병 진단을 받고 15년 만에 완치한 것이다. 면역억제제를 쓰느라 손발에 힘이 빠지고 떨리는 부작용이 있지만 대체로 건강하다. 면역억제제 용량도 점점 줄이고 있어 이 부작용도 곧 사라질 거라고 조 교수는 말했다.
●가족의 헌신-의료진 신뢰가 투병 비결
김 씨는 “아내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아내 황옥주 씨(48)는 섬망 증세를 보이는 남편이 걱정돼 지하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에서 잠을 자며 병 수발을 했다.
김 씨는 의료진의 헌신에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김 씨는 “인공심장 삽입 수술을 받았을 무렵부터 의료진이나 주변 환자들 모두가 가족처럼 여겨졌다”고 말했다. 같은 병을 가진 다른 환자들과의 소통도 큰 희망이 됐다. 조 교수는 심장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회원은 500여 명인데,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다.
요즘 김 씨는 제2의 인생을 만끽하고 있다. 예전부터 좋아했던 자전거를 다시 타고 있다. 다만 아직 체력이 회복되지 않아 1회 주행거리는 종전의 200km에서 30∼50km로 줄였다. 주행속도와 시간도 종전보다는 많이 줄어 3∼4시간 정도 걸린다. 그래도 점차 속도가 붙고 있다고 한다.
이와 별도로 김 씨는 퇴원하기 전에 30개 정도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다. 이 중 자전거 타기와 여행, 맛집에서 낮술 먹기 등 일부는 이미 이행했다. 아직 △넉넉히 책 읽기 △찻집에서 쌍화차 마시면서 수다 떨기는 시도하지 못했단다.
조 교수는 “김 씨의 이런 점을 다른 환자들이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긍정적 태도가 병을 떨치는 데 무척 중요하다는 것. 반대로 우울하거나 두려움이 강하면 결과도 좋지 않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조 교수는 환자들에게 “수술이 끝나고 퇴원하면 무엇을 하며 삶을 즐길 것이냐를 생각하시라”고 권한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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