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반 중 코로나 걸리고도 8000m 올라, 70세에 재도전할 것
65세 한인석 이사장, 에베레스트 도전기

그가 7대륙 최고봉 등정의 마침표를 찍는 에베레스트 도전에 나선 건 지난 4월. 이미 남극(빈슨 매시프·4897m), 북미(매킨리·6195m), 남미(아콩카과·6959m), 유럽(엘부르즈·5642m), 아프리카(킬리만자로·5895m), 오세아니아(칼스텐츠·4884m) 정상에 발자국을 남긴 그였다. 에베레스트까지 오르면 전 세계 11번째 고령자로 7대륙 최고봉 등정의 기록을 남기는 거였다.
결과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됐다. 5일간 치료 후 다시 도전에 나섰지만 산소통 부족으로 정상 등정을 포기해야 했다. 쓰리고 아팠지만 그는 성공 못지않은 수확을 얻었다. 대자연 앞에 겸손해야 함을 배웠고, 더 큰 목표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지난 1일 만난 한인석 이사장은 “코로나 후유증 때문에 계속 기침이 나고 목이 마르다”며 인터뷰 내내 물을 조금씩 마셨다.
Q : 어떻게 7대륙 최고봉 등정에 나서게 됐나요.
A : “한양대 1학년 때 끈끈한 선후배 관계가 좋아 산악부에 들어갔죠. 화학과에 입학했는데 ‘전공은 산악, 부전공이 화학’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산에 미쳤어요. 아내도 산악부에서 만났죠. 미국에서 한인 산악회를 만들고, 50개 주 최고봉을 완등한 뒤 한양대 산악회에서 주관하는 7대륙 최고봉 도전(세븐 서밋)에 참여하게 됐죠. 2005년부터 시작했는데 에베레스트만 못 가고 나머지는 다 해냈습니다. 이번이 버킷리스트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1년 동안 열심히 몸을 만들어서 도전하게 됐죠.”
하산 10시간여 만에 베이스캠프에
![한인석 이사장이 에베레스트 캠프3에서 캠프4로 가는 빙벽을 오르고 있다. [사진 한인석]](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306/10/joongangsunday/20230610003603996jnks.jpg)
Q : 그런데 안타깝게 코로나에 걸렸네요.
A : “4월 9일에 등반을 시작했어요. 베이스캠프(5364m)까지 11일 동안 천천히 트레킹을 하면서 고산 적응을 했습니다. 4월 20일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는데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콜록콜록 기침을 하고 있었어요. 이미 몇 사람이 코로나에 걸려 있었던 거죠. 저도 도착 이틀 뒤부터 목이 아프고 증세가 심상치 않아서 코로나 검사를 받아 보니 양성이 나왔어요. 곧바로 헬기로 카트만두로 후송돼 닷새 정도 치료를 받았지요.”
Q : 그리고 다시 도전에 나섰네요.
A : “코로나 때문에 5일 정도 손해를 봤는데 분하고 억울해서 눈물이 다 나더라고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싶어서 다시 베이스캠프로 갔지요. 우선 체력을 회복해야겠다 싶어서 안 넘어가는 밥을 억지로 떠 넣고, 높은 곳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몸을 만들었지요. 다행히 체력 회복이 잘 돼 캠프4(7900m)까지 순조롭게 올라갔습니다.”
Q : 그 뒤 어떻게 됐습니까.
A : “정상 도전 전날 눈이 많이 와서 일정이 하루 늦춰졌어요. 그런데 우리 팀의 중국인 한 명이 고소증으로 사망하고, 말레이시아 친구가 실종되는 사고가 생겼어요. 이번에 480명이 입산 허가를 받아 사상 최다였는데, 13명이 죽고 4명이 실종되는 사상 최악의 일정이 됐어요. 사고 수습하느라 산소통을 많이 쓰는 바람에 우리가 갖고 갈 산소통이 모자란다는 연락이 왔어요. 고민 끝에 도전을 포기하기로 했죠.”
Q :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겠습니다.
A : “저는 컨디션이 꽤 좋았어요. 8000m까지 올라와서 정상을 코앞에 두고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미칠 것 같더라고요. 열 받아서 캠프2까지 한달음에 내려왔습니다. 보통 8~10시간 걸리는데 6시간 만에 도착하니까 사람들이 깜짝 놀라요. 캠프4에서 출발하면 대부분 캠프2에서 1박 하고 내려가는데 저는 거기 더 있을 이유가 없더라고요. 40분 정도 쉬었다가 다시 배낭을 메고 나섰죠. 밤인데다 곳곳에 빙벽과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진 틈)도 있었지만 내려가는 데 큰 문제는 없었어요. 베이스캠프에 도착해서 계산을 해 보니 캠프4에서 10시간 55분만에 내려왔더라고요.”
Q : 거리가 아니라 표고차만 3000m가 넘는데요.
A : “카트만두에서 만난 인도 친구가 ‘난 40대인데 작년에 10시간 20분 걸렸다. 60대에 그 기록이라면 기네스 신청을 해도 될 것 같다’고 했어요. 기록을 입증할 만한 자료를 찾아봤더니 캠프4와 베이스캠프에서 촬영한 사진에 시간이 찍혀 있더라고요. 등정 과정이 입력되는 앱에도 기록이 남아 있었어요. 저와 함께 내려온 셰르파의 레터, 등정 업무 대행 회사의 인증서까지 받아서 기네스협회에 제출했습니다. 사실 전혀 기록을 의식하지 않았는데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네요. 하하.”
Q : 고산 등정 성공은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얘기가 있던데요.
A : “저는 운오기오(運五技五)라고 봅니다. 내 의지나 노력, 역량과는 상관없는 뭔가 초자연적인 힘이 있다는 걸 믿게 됩니다. 제가 하루만 먼저 갔어도 정상을 밟았을 겁니다. 여러 가지 상황이 저를 늦게 가게 한 건데, 거기에 어떤 뜻이 숨어 있겠죠. 제가 조금만 젊었다면 ‘이판사판 해 보자’면서 올라갔거나, 셰르파들을 닦달해 ‘산소통 구해 와라’고 했을 수도 있죠. 그러나 산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안전입니다. 그리고 구조대와 부상자가 써야 할 산소통을 뺏어 와서 목적을 달성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산을 통해서 배우는 게 뭔지 물었다. 그는 “순종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 사고 난 사람 중에 무리해서 문제가 생긴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우리가 도전이라고 했을 땐 충분한 준비를 갖추고 안전하게 했을 때를 말하는 겁니다.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사고가 나면 도전이라는 가치가 훼손됩니다. 산은 늘 그 자리에 있는 건데, 그걸 정복하겠다면서 무리하거나, 무산소 등정을 고집하거나 하다 보면 동상에 걸리고 조난을 당합니다. 가느냐 마느냐, 언제 가느냐, 어떤 방식으로 가느냐 하는 것 전부를 자신의 판단과 결정으로 해야죠.”
우리 산엔 철학·종교·영성 배어 있어
![해발 8000m인 에베레스트 사우스콜에 선 한 이사장. [사진 한인석]](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306/10/joongangsunday/20230610003605608mmyu.jpg)
Q : 전 세계 명산은 다 올라 보셨는데요. 한국 산만의 특징은 뭔가요.
A : “우리나라 사람들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산에 올랐어요. 개인적인 어려움이 있으면 절이나 산신각,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고 정성을 담아 돌탑을 세웠죠. 공동체가 위기에 빠졌을 때도 산에 모여 의병을 일으키고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이런 삶의 흔적과 철학·종교·영성이 우리 산 곳곳에 배어 있죠. 단순히 자연을 즐기는 것을 넘어서 이런 역사의 흔적을 찾아보고 향유한다면 우리 등산문화가 한 단계 성숙할 것 같습니다.”
Q : 우리 산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누리려면 바뀌어야 할 점이 있을까요.
A :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좀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입산통제 구간을 너무 많이 만들어 우리의 백두대간을 끊어 먹었거든요. 사람들이 자꾸 다녀야 길이 더 편안하고 안전하게 될 것이고, 그게 더 환경을 잘 보존하는 방법이거든요. 무조건 ‘위험하니 가지 말라’며 펜스를 쳐 버리면 오히려 자연을 황폐한 상태로 방치하는 게 될 수 있습니다. 탐방객 수를 제한하거나 시즌제 등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한 이사장에게 “다시 에베레스트에 도전하셔야죠”라고 물었다. 그가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일단은 좀 쉬고 싶고요. 만약 다시 간다면 5년 정도 길게 잡아서 준비한 뒤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그 때 가서 성공하면 최고령 7대륙 최고봉 등정이라는 기네스 기록을 세우게 되겠죠. 가슴 뛰는 목표가 있는 한, 사람은 늙지 않습니다.”
정영재 문화스포츠에디터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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