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가 설계한 도산서당, 좁지만 넓게 보이는 비밀이…
안동 도산서원
청량산과 영지산 줄기가 동서로 병풍처럼 두른 가운데 자리잡은 도산서원은 총 14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고, 크게는 서당과 서원 구역으로 나뉜다. 큰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좌우로 난 두 개의 작은 문 안쪽이 서당 구역이다. 낙향한 퇴계 선생이 1561년(명종 16년) 직접 지었다는 도산서당과 제자들이 기숙사로 썼던 농운정사가 있다. 낮은 담 너머 언덕 위로 펼쳐진 공간은 서원 구역이다. 퇴계 선생 사후 6년 뒤인 1576년에 그의 제자들이 스승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지은 사당과 퇴계 선생의 정신을 기리며 유생들이 모여 공부하던 전교당·광명실 등이 있다.
두 구역은 입구부터 완만한 언덕을 이루며 계단으로 연결돼 있다. 유현준 건축가는 도산서원 건축미에 대해 “전체적으로 터는 좁지만 오랜 시간을 들여 다양한 공간이 증축되면서 그 다채로움 덕분에 넓게 느껴진다”며 “오래된 건물과 새로 지은 건물들이 마치 선생과 제자가 대화를 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퇴계 선생의 15대 손으로 도산서원 행정을 담당하는 이동채 별유사는 “서당 구역에 세 마리의 새가 산다”며 빙그레 웃었다. 가만히 보니 도산서당의 서(書)자 아래 일(日) 가운데 획에 새가 그려져 있다. ‘농운정사’ 동편마루에 걸린 현판 ‘시습재(時習齋)’의 시(時)자 가로 획 두 개에도 새 두 마리가 들어앉았다. 또 자세히 보니 ‘도산서당’의 산(山)자 자리에는 글자 대신 상형문자 같은 봉우리가 세 개 그려져 있다. 모두 퇴계 선생이 직접 쓰고 그려 넣은 것이란다. 이 별유사는 “당시 최고의 학자로 존경받던 분이니 처음 스승을 뵙는 제자들은 잔뜩 얼었겠지만, 이 현판들을 보고는 곧바로 긴장이 풀렸을 것”이라며 “퇴계 선생이 제자들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과 위트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도산서당과 농운정사 툇마루에 앉으니 바로 앞으로 낙동강 줄기가 흐르는 게 보인다. 좌우로, 뒤로 고개를 돌릴 때마다 벽에 난 창과 문으로 숲과 마당 풍경이 가깝게 다가온다. 제자들이 학습하는 틈틈이 자연과 벗하도록 퇴계 선생이 설계한 차경(借景)이다. 차경이란 ‘경치를 빌린다’는 말로 집의 창과 문을 액자처럼 활용해 밖의 경치를 잠시 빌려 감상하며 즐긴다는 뜻이다.
도산서원 제일 꼭대기에 위치한 ‘전교당’ 대청마루에 앉으면 탁 트인 시야와 더불어 시원한 바람까지 즐길 수 있다. 450여 년 간 사람의 손길이 닿아 반들반들해진 마룻바닥에 누우니 일어나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이런 풍경 안에서 잠시라도 쉬어갈 수 있어서 행복하다.
노송정 종택이 또 유명한 것은 퇴계 선생의 태실이 있기 때문이다. 종손에 따르면 “성인이 문으로 들어오는 태몽이 있었다”고 한다. 퇴계 태실은 한국 건축사에서도 보기드문 독특한 양식이다. 안채와 사랑채를 나누는 지점에 작은 마당이 있는데, ㅁ자 모양의 방 하나가 마당으로 홀로 돌출해 있다. 외부에서 사방 벽을 온전히 볼 수 있는 구조여서 하루 종일 해가 비춘다. 예부터 종택과 태실에는 7개의 좋은 기운이 흐른다고 전해진다.
아궁이 지핀 장작 냄새가 은은히 퍼지는 실내는 아늑했다. 한밤중에 나와 칠흑 같이 어두운 밤하늘에서 북두칠성을 찾아내는 재미는 평생 잊히지 않을 추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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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 구시장 안동찜닭 골목
메밀꽃피면
」
안동=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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