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처형당한 정보원, 이스라엘 국민 하나 되게 했다
[제3전선, 정보전쟁] 3차 중동전 승리, 이스라엘 정보력 〈하〉
코헨, 이스라엘 승리 못 본 채 교수형
이 사례가 보여주듯 이스라엘의 정보력은 전쟁 승리를 뒷받침하는데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국가지도자가 과감하게 전쟁을 결단할 수 있도록 뒷받침했고 국민을 단결시키는 역할을 했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전쟁 발생 한 달 전인 1967년 5월 전쟁의 먹구름이 갑자기 중동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다. 이집트의 가말 압둘 나세르 대통령이 5월 18일 이집트와 이스라엘간 충돌을 막기 위해 주둔한 시나이반도의 유엔비상군(UNEF)에게 갑자기 철수를 요구했다. 이어 5월 22일에는 이스라엘로 향하는 모든 선박의 홍해 티란해협 통항금지까지 선언했다. 티란해협은 이스라엘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유일한 해상교통로로, 이스라엘의 생명선이나 다름없다. 이스라엘은 티란해협을 봉쇄할 경우 전쟁으로 간주하겠다고 수차례 공언해둔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5월 28일 나세르는 의회에서“우리 목표는 티란해협 봉쇄가 아니라 지구상에서 아예 이스라엘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스라엘로서는 묵과할 수 없는 발언이었고, 3차 중동전의 전운은 짙어져 갔다.
이스라엘의 고민도 깊어졌다. 무엇보다 국력의 열세가 걸렸다. 1·2차 중동전쟁 이후 아직 국력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인데다, 아랍연합국은 이스라엘에 비해 영토크기 50배, 인구 20배 등 모든 면에서 우위였다. 군사력은 이스라엘에 비해 탱크 2배, 야포 7배, 공군기 3배, 함정 4배로 압도적 우위였다. 전쟁을 선택할 경우 자칫 2000년을 기다려 세운 유대 국가를 또 다시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또한 전쟁 초반 72시간 안에 승기를 잡지 못하면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도 나왔다. 아랍연합군의 공군기지는 32개인데 반해 이스라엘 공군기지는 4개 밖에 되지 않아 초기에 제공권을 잡지 못하면 아랍의 반격에 속무무책으로 당할 판이었다. 만일 속전속결로 승리하지 못하고 소련이 개입하거나 유엔이 휴전을 결의하는 사태가 전개되면 불리한 상황에서 휴전 협상을 해야 한다는 우려도 나왔다. 전황이 장기전으로 갈 경우에는 갓 독립한 이스라엘의 국가경제가 파탄날 수 있다는 경고도 잇따랐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전력으로 볼 때 72시간내 승기를 잡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국·이스라엘, 같은 6월 전쟁 다른 기억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지도부는 타협 대신 과감하게 전쟁을 선택했다. 정보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랍의 이스라엘 공격계획, 소련이 아랍에 제공한 무기의 성능 등 적의 강점과 약점은 물론 기습 공격시의 타격 목표도 구체적으로 파악해 놓고 있었다. 그러므로 과감한 작전을 효율적으로 전개할 경우 열세의 전력으로도 승리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특히 전쟁 승리의 관건인 기습 공격의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풍부하게 확보해 놓고 있었다. 아만(군 정보기관)이 수집한 이집트 공군 정보, 모사드가 수집한 시리아 골란고원 정보, 신베트(국내정보기관)의 기만 정보 등은 이스라엘이 전력 열세를 극복하고 초기에 승기를 잡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처럼 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정보를 통해 적정 상황을 손바닥 보듯 훤히 알고 있었다. 한마디로 정보가 누란의 위기 순간에 국가지도자의 결단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또한 전쟁을 앞둔 이스라엘 사회의 분열과 두려움을 해소하는 역할도 했다. 이집트의 대(對) 이스라엘 강경 정책으로 전쟁이 가시화되자,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국론분열과도 마주해야 했다. 강경론자들은 타협적 자세나 약한 모습을 보일 경우 아랍이 이스라엘을 만만하게 보는 빌미를 주어 향후 더 심각한 도전을 받을 수 있다며, 이번 기회에 아랍연합국을 초전박살 내어 다시는 도발하지 못하도록 하자고 주장했다. 반면, 신중론자들은 객관적인 전력열세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독자적인 전쟁을 치르는 것은 위험하므로 서방의 중재를 모색하자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극우정당인 민족종교당(NRP) 마저 “싸울 준비는 되어 있지만, 자살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며 국민들의 두려움과 초조함을 증폭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이스라엘 지도부는 축적해둔 정보를 토대로 혁신적인 선제기습 작전을 펼 경우 승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만약 전쟁에 대비해 정보를 수집해 놓지 않았더라면 이런 과감한 결단을 내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중국 한나라의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결단해야 할 때 결단하지 않으면, 도리어 화를 입는다”(當斷不斷 反受其亂)고 했다. 만약 신뢰할만한 정보가 없어 이스라엘이 선제공격의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면 돌이킬 수 없는 화를 입었을지도 모른다.
이스라엘은 정보에서 이겨 전쟁에서 승리했다. 반면 이집트와 시리아 정보는 실패했다. 이스라엘의 선제공격 가능성을 예측하지 못했고 전쟁지휘부에 대한 정보보고 내용도 수시로 바뀌는 등 오히려 혼선을 초래했다. 우리에게 6월이 6·25 전쟁을 기억하는 달이듯, 이스라엘의 6월은 신생 국가의 생존을 지킨 3차 중동전쟁의 승리를 기억하는 달이다. 3차 중동전만큼이나 국가 위기 시 정보의 책무가 무엇인지, 국가 지도자의 결단을 어떻게 뒷받침하는지, 전쟁에 대비한 평상시의 정보 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선명하게 보여준 사례는 없다.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은 중앙정보국(CIA)설립 당시 “국가가 정보를 필요로 할 때 항상 사용할 수 있도록 CIA는 늘 준비해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범하지만 중요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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