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적인 폐허’ 40곳을 통해 본 인간의 오만과 편견

송용준 2023. 6. 9. 23:03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한때 화려한 영광을 누렸으나 이제는 누구도 찾지 않는 장소가 된 폐허들을 찾아 그 의미를 되새기는 책이 나왔다.

'사라져 가는 장소들의 지도'.

'별난 장소들의 지도' 등을 집필한 이색 명소 전문가 트래비스 엘버러가 쓴 '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다.

한때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광지였지만, 지금은 시간의 무게에 잠식된 장소들도 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트래비스 엘버러/성소희 옮김/한겨레출판/2만3000원

한때 화려한 영광을 누렸으나 이제는 누구도 찾지 않는 장소가 된 폐허들을 찾아 그 의미를 되새기는 책이 나왔다. ‘사라져 가는 장소들의 지도’. ‘별난 장소들의 지도’ 등을 집필한 이색 명소 전문가 트래비스 엘버러가 쓴 ‘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다. 저자는 전 세계에 흩어진 ‘세상에서 가장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인 폐허’ 40곳을 통해 파국을 피하지 못한 역사의 유산과 잔재를 들여다본다.

우선 파국이 예정된 장소들이 있다. 포르투갈의 도나시카성은 파우메이라의 지주였던 주앙 주제 페헤이라 헤구가 자기 부부의 결혼을 기념해 지은 건축물이었지만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르며 끝내 완공되지 못한 채 황폐한 모습으로 남았다. 덴마크의 루비에르크누드 등대는 바다가 해안선을 계속 갉아먹으면서 쌓여 드는 모래 더미를 감당하지 못해 1968년 폐쇄됐다. 2019년 내륙 쪽으로 옮겼지만, 이 등대의 운명이 얼마나 갈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트래비스 엘버러/성소희 옮김/한겨레출판/2만3000원
변하는 세상을 따라잡지 못해 폐허가 된 공간도 있다. 스웨덴의 그랜게스베리는 풍부한 철광석층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1990년 광산이 문을 닫은 이후 허물어진 주택들만 남았다. 히틀러는 할아버지의 고향인 오스트리아 될러스하임을 자신의 혈통을 세탁하기 위해 전차훈련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한때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광지였지만, 지금은 시간의 무게에 잠식된 장소들도 있다. 미국 서부의 샌타클로스 마을은 크리스마스를 강조한 휴양지로 1950년대에 크게 번성했지만 시카고와 로스앤젤레스를 연결하던 66번 국도가 폐쇄되면서 마을도 함께 몰락했다.

과거 눈부신 번영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쇠락한 곳들도 있다. 소금사막으로 유명한 볼리비아의 우유니 근처에 있는 ‘열차들의 무덤’이 대표적이다. 초석 등의 천연자원을 운송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철도는 인공 질산염의 등장으로 수요가 사라졌고 기차 폐기장이 생겼다.

차별과 혐오 등 시대의 어둠을 증언하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도 펼쳐진다. 우간다의 아캄펜섬은 결혼 전에 임신한 여성이 유배돼 굶어 죽는 장소였다. 지참금이라는 가족의 수입을 빼앗은 데다가 먹여 살릴 입을 늘린 ‘죄인’이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젊은 여성들을 ‘사라지게’ 만들었던 아캄펜섬은 분요니호수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사라질 운명이다.

이런 폐허들을 두고 많은 이들은 아무 쓸모도 없다고 여기지만, 사실 폐허에는 ‘쓸모 있는’ 교훈이 가득하다. 어리석음과 오만, 차별과 편견 등 인류가 저지른 수많은 흑역사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을 버림받고, 소외되고, 사람이 살지 않고, 사람이 살 수 없는 장소들의 지명 사전이라고 자평하며 “버려진 장소는 다가올 세상을, 잔해에서 구할 가치가 있는 것들을 더 오래 열심히 생각해 보라고 격려한다”(13쪽)고 말한다.

송용준 기자 eidy015@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