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월의쉼표] 나 같은 어른을 위한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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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출발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햇볕 잘 드는 역 광장의 벤치에 앉았다.
평일 아침이라서인지 광장에는 오가는 사람이 드물었고 비둘기들만 부리로 바닥을 쪼며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휴대전화로 음악을 재생하려고 하는데 비둘기들밖에 없던 시야에 조그만 운동화를 신은 두 발이 등장했다.
그러나 한번 허공으로 내쫓긴 비둘기는 바닥으로 다시 내려오지 않았고 아이는 풀 죽은 얼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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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의 주인은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아이는 두 팔을 벌린 자세로 한없이 채도 높은 웃음소리를 사방에 흩뿌리며 비둘기를 쫓아다녔다. 귀여운 여자아이와 비둘기라. 동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러나 한번 허공으로 내쫓긴 비둘기는 바닥으로 다시 내려오지 않았고 아이는 풀 죽은 얼굴이 되었다. 그나저나 아이 부모는 왜 안 보이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던 때였다.
아저씨가 비둘기 불러 줄까? 퍼뜩 고개를 돌렸다. 언제 왔는지 아이 뒤에 노숙자임이 틀림없는 행색에 인상마저 험악한 사내가 서 있었다. 그가 빵 부스러기를 바닥에 뿌렸다. 순식간에 비둘기들이 모여들었다. 아이가 흥분하여 소리를 질렀다. 사내가 아이 옆으로 바싹 다가섰다. 빵 부스러기를 나눠 주려는 모양이었으나 나는 좌불안석이었다. 설마 백주대낮에 이런 공공장소에서 별일 있으랴 싶으면서도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놀랍지 않을 만큼 온갖 사건 사고가 빈발하는 세상 아닌가 싶어서였다.
부모가 안 보이니 여차하면 나라도 나서야겠다는 마음으로 사내와 아이를 주시하고 있는데, 저만치 역 앞에서 줄곧 전화 통화 중이던 젊은 여자가 갑자기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것을 본 아이가 울상을 지었다. 에이, 엄마가 오래요. 하지만 그 직후 아이는 제가 언제 울상이었냐는 듯 함박웃음을 지으며 사내에게 머리를 숙였다. 비둘기 불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렇게 아이가 가고 나서도 사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빵 부스러기를 바닥에 뿌렸다. 몇 분이 흘렀을까. 뜻밖에도 아이가 돌아왔다. 엄마와 함께였다. 아이가 카스텔라 봉지를 사내에게 건넸다. 이건 비둘기 주지 말고 아저씨 먹어요. 엄마가 얼른 아이의 말을 정정했다. 먹어요가 아니라 드세요 해야지. 아이고, 아니야, 괜찮아. 사내가 손사래를 치며 험악한 인상에 어울리지 않게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가 웃고 엄마도 웃었다. 그 비현실적으로 정감 넘치는 서사를 본의 아니게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아 버린 나도, 실은 웃고 싶었다.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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