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교부금 282억 부적정…학생 태블릿엔 5,495억 '펑펑'
‘282억’.
최근 국무조정실이 전국 교육청들의 시설 관련 교부금을 점검한 결과, 부적정하게 사용한 것으로 집계된 금액입니다.
‘520억’.
경기도교육청이 고장률이 5배 높은 특정 업체의 태블릿PC를 구매하는 데 쓴 예산입니다. 도교육청 태블릿 사업 전체로 보면 5,495억입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연관 기사] [단독] 경기교육청, 고장률 5배 높은 태블릿 '47% 구매' 논란(EBS 뉴스12, 2023.6.5.)
https://home.ebs.co.kr/ebsnews/menu1/newsAllView/60357162/N?eduNewsYn=N
■ “내 돈 주고는 절대 안 사요”..방치된 태블릿
두 달여 전 제보를 받았습니다. 경기도교육청이 학교에 보급한 A업체의 태블릿PC가 유독 고장이 잦다는 겁니다. 무작위로 교육지원청 담당자들에게 전화를 돌렸습니다. "직접 써보지 않아 말을 옮기기 부담스럽다"면서도 각종 정황을 건넸습니다. 기기를 사용해본 담당 교사, 컴퓨터 관련 학과 교수, 업체 관계자에게 상황을 검증했습니다.
“내 돈 주고는 절대 안 살 거예요.” 고양시 소재 초등 교사의 푸념입니다. 이 같은 불만은 경기도 광주 등 A사 제품이 보급된 복수의 지역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300대 중 80대에서 비슷한 문제가 나타나 수리를 했거나 수리를 맡길 예정이란 증언까지 이어졌습니다.
정말, 한 제품만 문제인 걸까?
■ 경기도교육청 “자료 못 줘”..자료 받아보니 ‘고장률 5배’
경기도교육청 언론팀을 통해 담당자에게 자료를 요구했습니다. “예산 편성을 위한 자료가 아닌 관리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내부 자료”라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습니다. 시민의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감시하겠다는 건데,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실을 통해 자료를 입수했습니다.
실태는 충격적이었습니다. 1.22% 대 0.22%. 5배 넘는 고장률이 드러났습니다. 1,000대, 10,000대를 조사한 결과가 아니라, 54만 대(보급률 40% 기준)를 전수 조사한 내용이었습니다. 사용자 과실을 제외한, 무상 수리 비율로 보면 약 90% 대 60%대였습니다.
문제는 기기 고장보다는 보급을 결정하는 행정기관, 경기도교육청의 비합리적인 의사결정 구조에 있었습니다. 고장률을 조사하고도 같은 업체의 제품을 추가로, 심지어 기존보다 5배 더 샀다는 이야기는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특정 업체 몰아주기, 업체 지역 지방의원 밀어주기 등 각종 '설'이 흘러나오지만 명확한 건 없었습니다. '최저가 입찰'이라는 합법적 의사결정과 그에 따른 행정과 기기 보급이라는 ‘탈’을 쓰고 있지만, 정답은 극소수만 알고 있을 겁니다. 최저가 입찰 말고도 다른 의사결정 구조로 기기를 보급하는 대안도 있기 때문입니다. 추가 취재를 이어갈 대목입니다.
■ 입찰 구조 안 바뀌면 ‘반복’
공공기관이 태블릿을 구매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가격 경쟁력에 100점 만점에 70점을 배정하고, 사실상 최저가를 제시한 업체가 되는 ‘다수공급자계약(MAS)’입니다. 기술점수를 최대 90%까지 볼 수 있는 ‘협상에 의한 계약 방식’도 있습니다. 하지만 두 방식 모두 고장률 등 실제 기기의 안정성을 반영하기 어렵습니다. MAS는 조달청 품질 검사 결과를 10점만 반영할 수 있는데, 최저사양 등 단순히 기기 스펙만을 봅니다. ‘협상에 의한 계약체결기준’에 따르면, 기관장은 세부 기준을 정할 수 있지만, 고장률과 같은 지표는 아직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경기도교육청은 올해 2천 7백억 규모의 태블릿을 추가로 구매할 예정인데, 계약 방식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제도를 바꿀 게 아니라면, 현재까진 협상에 의한 계약 방식이 제품의 품질을 보장하는 데 낫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한국교원대 최현종 컴퓨터교육과 교수는 “협상에 의한 계약의 최종 협상에서 고장이 난 제품을 부품 수리가 아닌 새 제품으로 교환하게 하는 식으로, 업체에게 부담스러운 조건을 다는 게 고장률을 줄일 현실적인 대책”이라고 조언했습니다.
■ ‘디지털 교과서’..태블릿은 ‘인권’의 영역
태블릿 PC 보급은 이제는 ‘인권’의 영역입니다. 2025년부터면 교과서도 태블릿PC 등 디지털 기기로 보게 됩니다. 기기가 멈추면 교과서가 사라지는 아이들은 수업을 듣지 못하고, 법이 정한 의무교육조차 채우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업 시작 2년 만에 전국적으로 태블릿 PC 보급률은 50%를 넘었지만, 속도보다 중요한 건 질입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취임 이후 “디지털 대전환”을 수십 차례 강조하며 미래 교육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교육 소외 지역에 ‘디지털 튜터’를 배치하고, 학생맞춤통합지원법(가칭)도 만들어 학생들이 소외되지 않게 노력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는데요. 새로운 대책만큼이나, 교육청들이 제대로 된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지 감시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 2년간 80만 대 보급..태블릿 홍수 속 ‘책임은 교사만?’
"1.22%면 업계에서 낮은 고장률이다". 업체 담당자는 항변합니다. 또, “교사들이 사용법을 모르는 것이지 실제 고장은 아니”라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남은 과제를 제시하는 대목인데요. 실제, 경기도교육청은 2년 만에 80만 대를 보급했지만, 학교 현장은 여전히 정보화부장이나 담당 교사만이 수백 대의 태블릿을 관리해야 합니다. 일부 학교엔 실무사를 지원해 기기 관리를 지원한다지만, 교사가 태블릿을 ‘박아두는’ 데에는 단순히 제품의 고장 이상의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교육계 관계자들은 “태블릿 관리 등 보조 인력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 ‘지역’, ‘교육’에 절실한 관심
이 업체에 500억 원 넘는 예산이 투입됐고 경기교육청의 전체 태블릿PC 예산은 5,495억이 넘습니다. 당연한 감시와 견제가 있어야 할 영역인데 극소수의 도의원과 지역 언론의 단편성 기사로는 교육청의 비합리적인 행정을 견제하지 못해 왔습니다. 대규모 시설 사업을 제외하면, 교육계에서 단일 교육청이 하는 단일 사업으로는 역대 최대 예산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리 단죄"를 지시한 보조금의 규모는 314억입니다.
지난해 전국 교육청에 배부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80조 원을 넘기며, 역대 최고입니다. 전체 나라 살림이 600조 원인 것에 비교하면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닙니다. 고물가 속에 하루하루 살아가기 빠듯한 시민들의 소중한 세금. 더이상 낭비되지 않도록 철저한 감시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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