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듯해진 엄마들의 돌봄 노동…그저 ‘나’로 있을 수 있는 시간 허용되길[안주연의 래빗홀]

기자 2023. 6. 9.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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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만든 사람
최은미 지음
문학동네 | 392쪽 | 1만4800원

2023년 5월5일,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 종식을 선언한 데 이어 5월11일 한국 정부도 ‘코로나19 비상사태 종식’을 발표했습니다. 3년4개월간 이어져왔던 방역조치가 완전해제된 것입니다. 아직 치료 중인 분들이 있고 감염 확산에 주의해야 합니다만, 한숨 돌리게 된 건 사실이지요.

이 6월, 저는 누구든 붙잡고 묻고 싶기도 합니다. 다들 그간, 잘 지내셨나요? 지치진 않으셨나요. 코로나를 심하게 앓았던 분도 계실 것이고, 코로나로 가족을 잃은 분도 계실 것입니다. 팬데믹 상황에서 경력이나 재정 면으로 큰 타격을 받은 분도, 유학이나 해외 취업 등에서 인생의 행로가 바뀐 분들도 계실 거예요. 동네 풍경을 순식간에 바꾸며 외신, 마스크, 체온계, 영업제한과 함께 다가왔던 전염병은 어떤 폐막식도 사과도 없이 쪼그라들었고, 세상은 다른 현안들로 복잡합니다. 마음속에서 불안과 답답함과 분노가 몰아치던, 누구를 원망하기도 어렵던 지난 3년의 세월을 가만히 떠올려보면 아득하고 헛헛한 느낌이 듭니다. 이제 우리는 둘러앉아 팬데믹에 대한 이야기를, 그 각자의 어려움과 외로움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도요. 가장이고, 누군가의 엄마이고, 가게의 운영자이기도 한, 어떤 공간을 그리고 어떤 마음들을 안전하게 돌봐야 하는, 갑자기 방역 책임자가 되어버린 여자들 말입니다.

“안전한 장소에 대한 수미의 열망이 얼마나 큰지, 내가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강도는 다를지 몰라도 거기 있는 우리 모두 어느 날부터인가 신체 증상들을 하나씩 겪고 있었다. 트라우마와 분노가 불면으로, 염증으로, 소화불량으로, 흉통으로 기어코 드러나 그 봄에 우리는 발열 없이 계속 아팠다.”(‘여기 우리 마주’)

21세기 들어 두드러지던 번아웃증후군이 팬데믹으로 가속화되었다는 연구를 여럿 접했습니다. 팬데믹은 사람들에게 추가적인 돌봄과 손해와 감정적 노동을 감당하기를 요구했고, ‘웬만하면 누구도 만나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그것은 인간과 인간이 친밀하게 접촉할 때 느끼는 안도감을, 친밀감을, 이완을 대부분 포기하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역사상 세계적으로 포옹 호르몬이라 불리는 옥시토신이 가장 적은 시기가 아니었을까요. 사람들은 고립되었고, 배타적이 되었고, 몸이 약해졌고, 예민해졌습니다. 이러한 부담이 무언가를 돌봐야 하는, 그러면서도 사회적으로는 취약한 그룹-이를테면 엄마, 간호사, 복지공무원들-에게 더 무겁게 다가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작가는 엄마들이 겪는 외로움과 번아웃이 팬데믹을 거치며 최대치로 부풀어오른 순간을 정확히 포착합니다. 개학 네 차례 연기, 휴대폰 속 학교에서 보낸 미회신 알림 11·미확인 알림 39. 재택수업으로 지치고 심심한 아이와 새로운 생활방식을 조정하고 그 감정을 수용해주는 일의 어려움과 막막함. 아침밥, 설거지, 학교 온라인 수업, 점심밥, 설거지, 학원 온라인 수업, 저녁밥, 설거지…. 보살피고 해야 할 일들에 슬래시(/)를 그어나가는, 빠듯한 돌봄노동의 나날들.

그 속에서 주인공 나리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마음 붙일 곳 없는 낮에 대해서, 눈을 붙여도 잠들 수 없는 밤에 대해서. 남편과 노동을 나누기 위한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에너지를 뺏긴 채로 잘 지내는 상상 속 여자들을 가위눌리듯 떠올리던 것에 대해 말하고 싶다고요. ‘보내는 이’의 주인공도 함께 아이를 키우던 동네 친구에게, 진아씨만의 질감을 원한다면서 혼잣말을 합니다. “다른 것 안 바란다고, 무심코라도 하루 안부 물어주는 거. 하루에 십 분쯤은 온통 그 사람한테만 집중해주는 거. (중략) 그걸 나랑 하자”고.

우리는 종종, 아니 자주, 돌보는 사람은 따로 돌보지 않아도 된다고 착각합니다. 마치 그들이 태어날 때부터 돌봄을 위해 특화되어 있었던 것처럼요. 이 주인공들은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추스르고 터뜨리고를 반복하며 간절하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돌보는 자가 아닌 그저 나로 있을 시간도, 아무도 나에게 돌봄과 균형을 종용하지 않는 시간도,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나를 보살펴주고 어루만져줄 시간도 무척이나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작가는 사회에서 많은 의무가 지워지지만 내세울 권리는 적고 내 아이 앞에서조차 망신을 당하는 약자로서의 자신과 주변 삶을 깊이 관찰해 표현하는 작업을 해냈습니다. 이 소설집은 “돌보는 이를 위한 돌봄(care for carer)”의 필요성에 대한 중요한 인류학적 증거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리가 공방을 열며 바랐던 “보살피고 의탁하는 관계들이 아니라 대등한 존재들끼리 친밀감을 나누는” 그런 관계들을 저 또한 꿈꿔보게 됩니다. 우리가 우리로서 반갑게, 그리고 담담하게 마주할 연결점들을 여기에 만들어가며 살고 싶습니다.

안주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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