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우크라이나 댐 재앙
‘유럽의 곡창지대’ 우크라이나를 있게 한 것은 드니프로강이다. 러시아 스몰렌스크에서 발원해 벨라루스를 지나 우크라이나 땅을 굽이쳐 흘러 흑해에 이르는 약 2200㎞의 긴 강이다. 수천년간 많은 생명이 이 강에 의지해 살아왔다. 이 물을 끌어 농사를 짓고, 식수로 썼다. 하류의 비옥한 퇴적층은 유럽을 먹여 살렸다. 이 강에 세워진 수력발전소들, 그리고 강에서 냉각수를 끌어쓰는 자포리자 원전으로 이른바 문명 생활도 가능했다.
지금 이 강의 하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가장 치열한 전선이 되어 있다. 강을 경계로 한쪽은 우크라이나군이, 다른 쪽은 러시아군이 장악하고 일진일퇴를 거듭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또다시 이 강이 피로 물들고 있다. 그런데 지난 6일 러시아 통제하에 있는 이 강 하류의 카호우카댐이 무너졌다.
이 댐의 저수량은 충주호의 6.7배에 달한다. 많은 물이 갑자기 흘러내리자 댐 아래 마을들이 수몰됐다. 그 장면은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와는 또 다른 차원의 충격을 줬다. 폭격과 점령에도 버텼던 주민 수만명이 밀려드는 물에 집을 버리고 떠나야 했다. 매설된 지뢰가 대거 유실됐고, 댐 발전기에 있던 석유가 다량 유출됐다. 비옥한 땅은 점차 불모지로 변해갈 것이다. 냉각수 공급에 이상이 생기면 자포리자 원전이 위험해질 수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서로 상대방에게 책임을 돌렸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무너뜨렸는지, 그랬다면 누구 소행인지 가려내야겠지만 시간이 걸릴 것이다. 분명한 것은 댐 붕괴로 인한 피해가 진영에 관계없이 미친다는 사실이다. 우크라이나는 공들인 대반격의 동력이 주춤해졌으며 러시아는 크름반도 물 공급에 차질이 생기고 점령한 상당 지역이 수몰됐다. 물론 이 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존재는 친러시아든 친우크라이나든 보통 시민들이다. 또 이번 재앙은 인간을 포함한 뭇 생명에 대한 장기적 영향을 예고하고 있다. 강의 혜택을 국경을 초월한 많은 생명이 누렸듯, 강으로 인한 재앙도 이들 모두가 입게 된다. 자신의 근거지를 스스로 없애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그것은 비단 댐 붕괴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번 전쟁 자체가 그렇다. 전쟁을 속히 중단해야 하는 이유가 또 하나 늘었다.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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