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니’의 귀환, 지금도 상태 좋은 건 1억원대에 거래 [만물상]

김홍수 논설위원 2023. 6. 9.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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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양진경

1970년대 현대차가 조립 판매한 포드의 코티나 승용차는 잦은 고장으로 악명이 높았다. 미 포드 측은 “비포장 도로에선 운행하지 말라”는 황당한 처방을 내놨다. 포드의 온갖 갑질에 화가 난 정주영 회장이 독자 모델 개발을 결심했다. 일본 미쓰비시 승용차의 플랫폼과 엔진을 사용하되 외형은 고유 디자인을 채택하기로 했다. 정 회장이 이탈리아의 30대 신예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에게 120만달러를 주고 첫 고유 모델 ‘포니’의 디자인을 맡겼다.

▶정 회장은 주지아로가 들고 온 포니 디자인을 보고 “꽁지 빠진 닭처럼 생겼다”며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직선 스타일링이 당시 자동차 디자인의 새 트렌드였고, 프레스 금형의 난이도를 낮추는 이점도 있어 디자인을 수용했다. 포니 생산을 위한 완성차 생산 라인 구축과 430여 개 부품 업체 발굴은 현대차를 자동차 조립 공장에서 완성차 기업으로 거듭나게 했다.

▶1975년 포니 한 대 가격은 228만원으로 서울 아파트 값의 절반에 해당하는 고가였지만 불티나게 팔렸다. 1976년 한 해만 1만726대가 팔려 국내 승용차 시장의 44%를 차지했다. 포니 픽업, 왜건, 포니2 등 후속 모델이 잇따라 나와 1982년엔 누적 판매 대수 30만대를 돌파했다. 1976년 에콰도르 5대를 시작으로 세계 60여 국에 수출됐다.

▶포니는 1970~80년대 대한민국 사회상을 보여주는 문화 아이콘이기도 하다. 1980년 광주 항쟁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에선 이집트에서 역수입해온 포니가 소품으로 사용됐다.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지금도 포니 차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회원 수 1500명에 달하는 동호회 ‘포니 타는 사람들’은 자동차 부품을 구하기 위해 폐차장을 뒤지고, 그래도 못 구하면 3D 프린팅으로 부품을 만들어 쓰기도 한다. 상태 좋은 포니는 1억원대에 거래된다고 한다.

▶현대차가 포니의 역사를 보여주는 ‘포니의 시간’이란 전시회를 마련했다. 현대차 정의선 회장은 “포니라는 독자 모델을 개발하면서 축적된 정신적, 경험적 자산이 오늘날 현대차를 만들었다”고 했다. 현대차의 포니 소환 이벤트는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란 위상에 비해 부족한 ‘역사’와 ‘스토리’를 보충하기 위한 것이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벤츠박물관, 일본 나고야의 도요타박물관 등 세계적인 자동차 도시엔 자동차 박물관이 있는데, 울산엔 현대차 박물관이 없다. 한국 자동차 산업의 역사를 보여주고, 포니의 도전 정신을 되새기게 하는 박물관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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