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비전 프로, ‘AR 플랫폼’으로 공간을 말한다

권명관 2023. 6. 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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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동아 권명관 기자] 지난 2023년 6월 5일, 애플이 ‘세계개발자회의(Worldwide Developers Conference, 이하 WWDC) 2023’에서 애플워치 이후 약 9년만에 새로운 신제품을 발표했다. 애플 비전 프로(Apple Vision Pro, 이하 비전 프로)다. 지난 몇 년 동안 소문과 추측 속에 있었던 증강현실 HMD(Head mounted Display, 머리에 착용하는 디스플레이) 비전 프로를 공식화했다.

‘One more thing….’

새삼스럽지 않은 문구다. 매년 애플이 WWDC 키노트 발표 마지막에 ‘하나 더’라며 슬며시 꺼내오는 말이다.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을 모아 발표하는 내용은 항상 WWDC의 주인공이었다.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아이폰X, 애플워치 등이 그렇게 등장했다. 올해는 비전 프로다. 새로운 맥(Mac) 제품과 iOS, iPadOS, macOS, waychOS, Audio & Home 등을 발표하며 WWDC 2023 키노트를 마무리할 것으로 예상할 즈음 애플 팀 쿡 CEO가 ‘하나 더’로 비전 프로를 꺼내 들었다.

지난 2023년 6월 5일, 애플 팀 쿡 CEO가 ‘One more thing…’을 발표하는 모습, 출처: 애플 홈페이지

팀 쿡 CEO는 “개인적으로 이 날을 진심으로 기대했다. 증강현실은 심오한 의미를 지닌 기술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증강현실은) 디지털 콘텐츠를 현실 세계와 어우러지게 해 이제까지 없던 경험을 눈 앞에 펼친다. 오늘 새로운 AR 플랫폼과 신제품을 선보인다”라고 비전 프로를 공개했다.

애플 비전 프로 발표 영상, 출처: 애플 홈페이지

공간 컴퓨팅?

비전 프로를 공개하며 애플은 유독 공간을 강조했다. 맥으로 개인 컴퓨팅을, 아이폰으로 모바일 컴퓨팅의 시대를 열었다면, 비전 프로로 ‘공간 컴퓨팅(Spatial Computing)’을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비전 프로는 공간 컴퓨팅을 시작하도록 돕는, 독립형 기기인 ‘공간 컴퓨터’라는 의미다.

사실 공간 컴퓨팅은 새로운 용어나 개념이 아니다. 지난 2003년 MIT 미디어랩(Media Lab)의 사이먼 그린월드(Simon Greenwold)가 자신의 석사 논문 ‘공간 컴퓨팅’에 처음 사용했다. 당시 그는 “공간 컴퓨팅을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이라고 정의하며, “이를 위해 기계가 실제 사물과 주변 공간을 인식하고 유지하는 방식과 시스템이 공간 컴퓨팅”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03년 MIT 미디어랩 사이먼 그린월드가 발표한 ‘공간 컴퓨팅’, 출처: MIT

정리하자면, 공간 컴퓨팅은 (주변 사물과 공간 정보 등을 바탕으로) 기계와 인간이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방식, 시스템을 뜻한다. 현실 세계와 디지털 세계(가상세계)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담당한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물과 기계 등 현실 세계의 공간 정보를 디지털 정보로 변환하고 그 위에 디지털 세계를 덧입힐 수 있는 기술이라고 이해하자. 때문에 공간 컴퓨팅은 가상현실(이하 VR), 증강현실, 혼합현실(이하 XR), 메타버스 등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기술 개념이다.

공간 컴퓨팅은 몇 가지 단계를 거친다. 먼저 라이다, 레이더, 카메라 센서 등을 통해 현실 세계의 정보를 3D 모델(데이터)로 변환한다. 이후 인공지능 머신비전과 같은 기술을 활용해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해한다. 마지막으로 분석하고 이해한 정보를 바탕으로 사용자가 제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출처: PTC 홈페이지

예를 들어 자율주행 기술이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도로 위 중앙분리대, 차선, 자동차, 보행자 등의 정보를 다양한 센서로 취합해 분석 이해하고, 앞서 가는 자동차가 멈추거나 갑자기 등장한 보행자를 피해기 위해 움직인다. 물류창고를 정리하는 자동 운반차도 있다. 창고 내 정보를 분석해 자동 운반차가 알아서 짐을 옮기고 쌓고 정리한다. 일상 속에서 사용하는 로봇청소기도 집 안의 정보를 바탕으로 움직인다. 이 모든 것이 공간 컴퓨팅의 사례다.

이처럼 실시간으로 주변 정보를 취합해 이를 분석하고 이해한 뒤에, 사용자가 제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술을 구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애플이 비전 프로를 발표하며 공간 컴퓨팅, 공간 컴퓨터라는 점을 강조한 이유다. 비전 프로는 12개의 카메라, 5개의 센서, 6개의 마이크 등의 센서를 탑재해 주변 공간 정보를 인식한다. 이렇게 취합한 공간 정보를 바탕으로 공간이라는 현실 세계와 디지털 세계를 연결한다.

출처: 애플 홈페이지

AR 플랫폼, 그리고 콘텐츠

AR 역시 새삼스러운 기술은 아니다. 2009년 이후 전 세계에서 빠르게 보급되기 시작한 스마트폰과 함께 차세대 먹거리 중 하나였다. 매년 높아지는 스마트폰과 카메라 성능, 네트워크 인프라를 바탕으로 현실 세계를 촬영한 디스플레이 위에 디지털 정보를 더하는 AR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이 같은 관심은 (상용화하지는 못했지만) 구글 글래스까지 이어졌다. 지금의 XR, 메타버스로 이어지는 기틀이었던 셈이다.

애플 팀 쿡 CEO는 비전 프로를 공개하기 전 AR을 ‘심오한 의미를 지닌 기술’이라며, “디지털 콘텐츠와 현실 세계를 어우러지게 해 이제까지 없던 경험을 선사한다”라고 콕 짚어 설명까지 했다. 이어서 언급한 것이 ‘AR 플랫폼’이다. 플랫폼이라는 단어를 전 세계에 주입시켰던 애플이 다시 한번 이 용어를 꺼냈다.

출처: 애플 홈페이지

앞서 언급했듯 AR과 VR, XR 등 공간 컴퓨팅 관련 기술은 지속적으로 차세대 기술로 주목 받았었다. 비전 프로와 유사한 오큘러스, 바이브, 소니 VR 등과 같은 HMD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세상에 등장했고, 각 HMD에서 실행할 수 있는 앱, 게임 등을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도 나타났다. 하지만, AR 시장 아니 AR을 포함하는 공간 컴퓨팅 시장은 지금 이 순간까지 성숙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사용할 수 있는 앱과 콘텐츠의 확보는 여전히 불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애플은 ‘플랫폼’이라는 단어까지 쓰며 출사표를 던졌다.

이 같은 출사표는 그동안 애플이 쌓아 온 플랫폼 경험에서 기인한다. 맥,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워치 등은 애플이 구축한 플랫폼 ‘앱스토어’가 있었기에 지금에 이르렀다. 개발자가 각 기기에 어울리는 앱을 디자인하고 개발해 선보이면, 사용자가 이를 내려받아 실생활에서 유연하게 사용한다. 이처럼 잘 갖춘 플랫폼은 여전히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이렇게 쌓아 온 경험을 애플은 비전 프로에 그대로 녹였다. 애플이 구축한 플랫폼, 애플 생태계의 앱을 끌어 안았다. 비전 프로에 탑재하는 ‘비전OS(VisionOS)’, 공간 컴퓨팅을 위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ARKit’ 등을 통해 기존 아이폰, 아이패드, 맥 등 애플 기기에서 사용하는 앱을 비전 프로로 가져올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맥북 프로와 연동하는 비전 프로 시연을 공개한 애플 WWDC 키노트 영상, 출처: 애플

한가지 걱정이었던 콘텐츠는 협력이라는 카드로 막았다. ‘디즈니+’다. 애플이 WWDC에서 협업 기업과 함께 발표하는 일은 더 이상 드물지 않다. 하지만, 디즈니의 이름값은 남다르다. 디즈니가 선보인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등의 스토리텔링 응집력은 무시하기 어렵다.

디즈니의 밥 아이거(Bob Iger) CEO가 WWDC 2023에 나섰다. 그는 “세상에는 기술과 그 기술이 삶에서 차지하는 역할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제품이 있다고 생각한다. 애플 비전 프로가 바로 그런 제품임을 믿는다”라며, “이 플랫폼을 통해 디즈니를 전에는 불가능했던 방법으로 보다 가깝게 팬들에게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애플 WWDC 2023 비전 발표 도중 등장한 디즈니의 밥 아이거 CEO, 출처: 애플
출처: 애플 홈페이지

이어서 그는 “디즈니+는 (비전 프로) 출시 첫날부터 즐길 수 있다”라며, “방금 보여드린 내용은 디즈니를 당신 (현실) 세계에 구현하는 몇 가지 방법이다. 앞으로 몇 달 안에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를 기대한다”라고 덧붙였다.

비전 프로, AR 플랫폼을 제시한다

애플은 단순히 비전 프로라는 신제품을 시장에 선보인 것이 아니다. 굳이 듣기에 생소한 공간 컴퓨팅이라는 용어까지 사용하며, 애플 생태계를 바탕으로 한 ‘AR 플랫폼’의 시작을 알린 것이다. 시장에 먼저 출사표를 던진 AR, VR, XR, 메타버스 등에 주력하고 있는 경쟁사에게 던진 도전장이다.

비전 프로 발표 이후 증강현실 HMD 제조사인 매직 리프(Magic Leap)의 창립자이자 전 대표인 로니 애보비츠(Rony Abovitz)는 “애플이 문턱을 높였기 때문에 다른 VR 업체들은 어려움에 처했다. 한 방에 모두 능가했다”라고 말했으며, 인사이더 글로벌의 니콜라스 칼슨 편집장은 "비전 프로 공개를 보며 스티브 잡스가 블랙베리와 팜 파일럿(PalmPilot)을 지워버린 제품 발표를 생각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아직 해결할 문제점은 남아 있다. 애플은 비전 프로를 발표하며 계속 전원에 연결해 사용할 경우에는 상관 없지만, 외장 배터리로 구동할 경우 사용시간은 2시간이라고 발표했다. 디즈니의 유명 콘텐츠 중 하나인 어벤저스 영화의 러닝 타임에 미치지 못하는 사용 시간이다. 3,499달러(한화 약 452만 원)이라는 높은 가격도 걸림돌이다. 애플이 키노트를 발표하며 마지막에 공개한 일상 속 비전 프로의 사용 모습을 예상한 영상은 현실 세계로 찾아올까? 아직은 지켜볼 일이다.

출처: 애플 홈페이지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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