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하의 '그런데'] 방탄복 하나 믿고 싸우는데

2023. 6. 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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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이 나라가 중전을 중심으로 돌아갔다더냐"

여러분은 흥선대원군 이하응 이 사람을 어떤 인물로 기억하십니까. 고종의 아버지? 아니면 명성황후의 맞수이던 시아버지?

사실 그는 세계 최초의 방탄조끼인 '면제배갑' 개발을 주도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프랑스 총기의 위력을 보고 공포를 느낀 흥선대원군은 삼베 면을 12겹 이상 겹치면 총탄을 막아낼 수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이 방탄조끼는 신미양요 때인 1871년 실전에 처음 투입되는데, 하지만 결과는 기대 이하였죠.

그새 미국의 총포는 더 발전했고 이걸 막지 못하는 방탄조끼에 조선군은 속절없이 쓰러졌거든요. 탄환의 위력이 다른데, 그에 대한 기본 정보도 없이 방탄복을 만들었으니 조선군만 희생이 될 수밖에요.

작년, 군 장병들에게 지급된 방탄복이 불량이라는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죠.

총알이 관통되거나 심한 변형이 생긴 방탄복이 무려 5만 벌 이상, 이걸 제작하는 데만 100억 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됐는데.

방탄복 제작 업체가 품질 시험 때 방탄 성능을 측정하는 부위에만 방탄 소재를 추가로 덧대는 '꼼수'를 썼다고 하니, 실수도 아닙니다.

심지어 국방기술품질원은 이를 알고도 납품을 승인했죠.

방탄복 제작업체는 펄쩍 뜁니다. 미 법무부 산하 국립사법연구소 규정대로, 또 나라에서 원하는 대로 만든 거라면서요.

국방기술진흥연구소도 절차대로 국내 공인시험기관과 미국 공인시험기관에 의뢰해 합격한 제품만 납품받은 거라고 주장합니다.

쉽게 말해 업체에는 어디 어디 부분만 방탄이 잘 되게 제작해달라고 하고선, 감사를 할 때는 그 부위가 아닌 다른 곳을 쐈다. 그러니 뚫릴 수밖에 없었다 이겁니다.

다른 말 다 필요 없습니다. 그럼 여러분이라면, 혹 여러분의 자녀라면 저렇게 제작된 방탄조끼를 입고 전장에 나가라 하시겠습니까.

실전에서 총탄은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는데 군인들은 저 방탄복을 입고 천우신조만을 바라야 한다니요.

조선 말기나, 지금이나, 정부가 주는 방탄조끼를 입고 나가 싸우는 군인만 불쌍한 건 달라진 게 하나 없는 거네요.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방탄복 하나 믿고 싸우는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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