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정권’의 노골적 후보 찍어내기…‘코드 대법원’ 서막 열리나
오는 7월 퇴임을 앞둔 조재연(67·사법연수원 12기)·박정화(58·20기) 대법관의 후임 후보로 서경환(57·사법연수원 21기) 서울고법 부장판사와 권영준(53·25기)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임명제청됐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의 특정 후보들에 대한 ‘임명 거부’ 검토설까지 흘러나오는 등 대법원과 대통령실의 신경전이 이어졌으나, 결국 대통령실 뜻대로 된 모양새다. 대통령실의 대법관 인선 개입 우려가 현실이 됐다는 점, 여성 대법관 후임으로 남성을 제청했다는 점 등을 두고 비판이 나온다.
대법원은 9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서경환 부장판사와 권영준 교수를 대법관 후보자로 임명 제청했다고 밝혔다. 김 대법원장은 두 후보자를 “사법부 독립과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대한 확고한 신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소수자 인권보호 의지를 갖췄다”며 “다양성을 담아낼 수 있는 식견, 변화를 읽어내는 통찰력을 갖추고 해박한 법률지식과 합리적이고 공정한 판단능력을 겸비했다”고 제청 이유를 밝혔다.
이번 대법관 후보 제청을 둘러싸고 김 대법원장이 소신을 꺾고 윤석열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카드를 내놓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대법관추천위원회가 대법관 후보를 8명으로 좁힌 뒤 윤 대통령이 ‘이념 성향’을 이유로 특정 후보에 대한 임명 거부를 미리 검토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대법원과 대통령실의 갈등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대통령실이 ‘코드 대법관’을 꽂기 위해 임명 절차가 시작되기 전부터 언론플레이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과 함께 대법관후보추천위를 무력화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실제로 대통령실이 ‘원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 후보는 이번 임명제청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권 교수는 대법관후보추천위가 추천한 후보 8명 중 유일한 ‘학계 인사'다. 대건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고 35회 사법시험을 수석 합격한 뒤 1999년 서울지법 판사로 임관했다. 2006년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자리를 옮긴 뒤 ‘민법 전문가’로 명성을 떨쳐왔다. 현재 한국민사법학회 부회장, 한국재산법학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합리적이고 온건한 성향이라 법원 안팎에서 ‘중립적 후보’라는 평가를 받는다. 독실한 모르몬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서경환 부장판사는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95년 서울지법 서부지원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회생법원장 등을 거쳤다. 2015년 광주고법 재직 당시 세월호 사건 항소심 재판을 맡아 이준석 선장에게 살인죄를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한 바 있다. 이 판결은 대형 인명사고에서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인정된 첫 사례다. 2012년 업무상 배임·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을 “반성의 기미가 없다”며 법정구속한 일로도 유명하다.
대통령실이 꺼린 것으로 알려진 후보가 제청 명단에서 빠지면서 법원에서는 대통령실의 대법관 인선 개입 우려가 현실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현직 부장판사는 “제청도 되기 전에 대통령실이 공개적으로 특정 후보를 배제한 셈인데, 사법권 독립에 대단히 부당한 압력”이라며 “이번 대법관 임명 과정이 정치권력의 ‘법원 통제’ 첫 걸음이 되지 않을지 두려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박정화 대법관의 후임으로 남성이 지명된 점도 실망감을 주고 있다. 대통령실이 임명 배제를 시사한 것으로 알려진 두 후보자 모두 여성이었다는 점에서 이미 예견된 퇴보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현직 판사는 “퇴임하는 여성 대법관 후임으로 남성을 임명한 건 그 자체로 퇴행”이라며 “‘서오남’(서울대·50대·남성)으로 대표되는 보수적이고 획일화된 대법관 구성으로 회귀한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 판사 비율은 매년 꾸준히 늘어나 2019년에 이미 30%를 돌파했지만 여성 대법관 비율은 20% 초반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대통령실은 정치적 부담을 덜었다는 분위기다. 앞서 대통령실은 대법원장의 제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를 고려해 법률 검토까지 마친 상황이었다. 윤 대통령은 이르면 오는 12일 두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인사청문회를 거쳐 본회의에서 인준안을 표결한다. 윤석열 정부 들어 대법관 교체는 오석준 대법관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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