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병원들 "소아과 의사 부족해 야간·휴일 진료 축소 불가피"(종합)
"달빛병원 폐지하고 지역별 소아 인구 비례 의료기관 역할 재정립해야"
(서울=연합뉴스) 김영신 기자 = 국내 아동병원들이 병원에서 일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부족해 평일 야간 및 휴일 진료를 운영하기 어려워 진료 시간 단축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아동병원들은 소아 의료 위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경증 환자가 응급실로 몰리는 과밀화를 막을 강제적 장치를 제도화하고, 비중증·경증 환자는 지역 아동병원과 일선 소아과들이 맡을 수 있도록 의료 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한아동병원협회(회장 박양동)는 9일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어린이 진료 시스템 정상화 방안'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아동병원협회는 전국 아동병원 중 회원으로 등록한 108곳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이날 공개했다. 실제 응답에는 60여곳이 참여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아동병원당 근무 의사 수는 평균 5명, 의사의 주당 평균 근무 시간은 78시간이다.
평일 야간 진료는 오후 9시까지 하는 아동병원이 32%로 가장 많았고 오후 7시 20%, 오후 6시와 오후 11시 각각 16% 순이었다.
휴일 진료는 토요일과 일요일 모두 오후 6시(35%) 또는 오후 1시(26%·28%)까지 하는 것이 보통이다.
평일 야간과 휴일에 근무하는 의사는 4∼5명인 아동병원이 47.2%, 2∼3명인 아동병원이 38.9%로 조사됐다.
특히 '향후 평일 야간 및 휴일 진료시간 감축 계획 여부' 문항에 71.4%가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감축 계획이 없다고 한 곳은 28.6%였다.
야간·휴일진료 단축 예상 시점은 '3∼5개월 내'가 45.2%로 가장 많았고, '2∼3개월 내' 단축을 예상하는 곳도 27.8%였다.
진료 시간을 감축하는 이유로는 ▲진료의사 수 감소(34.2%) ▲ 근무직원 이탈(32.9%) ▲ 응급 중증 환자 전원 어려움(24.1%) 등이 꼽혔다.
아동병원의 90%는 의사를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답했다.
국내 첫 아동전문병원이었던 서울 용산구 소재 소화병원은 근무 의사 부족으로 이달부터 휴일 진료를 한시적으로 중단했다.
이번 실태조사 결과 전국 아동병원들도 비슷한 사정으로 진료시간 단축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나타난 것이다.
아동병원협회는 이러한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의료 현장 상황을 반영해 소아 의료 체계를 전면 재개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양동 아동병원협회장(창원 서울아동병원 병원장)은 "소아 의료 현장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더욱 악화되고 있다"며 "부족한 인력은 충원되지 않고 악순환이 반복되는데 정부는 하드웨어 확대 정책에만 집중하고 근본적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동병원협회는 정부 대책 사업으로 도입·시행된 야간·휴일 진료 담당 '달빛어린이병원'은 실효성이 없다며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홍준 정책이사는 "달빛어린이병원은 10여년 간 수요 및 공급 등에 대한 구체적 평가가 없었고 입원 등 배후진료 시스템이 미비하며, 지역 격차가 심하다"면서 "이는 생활 거주 지역 내에서 야간·휴일 진료를 하고 싶어 하는 국민의 수요와 동떨어진 전시행정"이라고 지적했다.
협회가 소개한 사례를 보면 아동병원 중 평일부터 주말까지 매일 오후 9시까지 야간 진료를 운영하지만, 달빛어린이병원은 아니다. 달빛어린이병원 요건은 '최소 평일 오후 11시, 주말·공휴일 오후 6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달빛어린이병원으로 지정된 의료 기관 중 야간·휴일 시간 요건은 충족하더라도, 실제 운영 일수는 주 7일이 아닌 주 2회 정도에 그치는 경우도 있어 실제 야간·휴일 진료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장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실제 환자들은 경증임에도 불구하고 야간·휴일에 응급실로 몰리고, 그 결과 중증 환자가 응급실에 가지 못해 골든타임을 놓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협회는 설명했다.
아동병원협회는 이런 이유로 달빛어린이병원 제도를 폐지하고 전면적인 수가 가산·재조정 등 개편을 하면 통해 전국 시군구의 소아 인구와 비례해서 1·2·3차 소아의료기관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119 소방대원에게 환자 중증도 판단과 조정 기능이 없어 모든 환자가 거점 응급의료기관으로 몰리고 있다며, 경증환자의 거점 응급의료기관 진입을 차단할 규정을 만들고 환자의 응급 단계와 배후 진료까지 통합해서 관리하는 보건복지부 콜센터를 운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동병원협회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자격이 있지만 업무가 과중하고 의료기관 경영이 어려워 소아 진료를 하지 않는 의사들이 많은데 이들을 돌아오게 할 제도 개편과 국민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며 "중장기적인 소아청소년과 인적 자원 충원 계획도 나와야 한다"고 밝혔다.
아동병원협회는 이런 내용을 포함해 소아 필수의료 정상화 대책을 논의할 국무총리 산하 특별위원회와 의료사고면책 특례법, 어린이건강기본법 등 입법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아동병원협회가 개최한 정책 토론회에 참석한 임혜성 보건복지부 필수의료총괄과장은 "수가 제도를 포함해 현행 소아의료 시스템을 개선·보완해야 한다는 문제 인식을 같이하며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올해 초 필수의료 대책을 내놓은 이후에도 '구급실 뺑뺑이' 사고 등이 반복되고 있어 추가 대책을 마련하고 있으며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아동병원협회는 비대면진료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부가 이달부터 시행하는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에서 소아환자는 야간·휴일에 한해 처방 없이 비대면 상담이 가능하다.
칠곡경북대병원 소아응급의료센터 조병욱 진료교수는 "소아 환자를 직접 보지 않고 진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소아 대상 비대면 진료는 절대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sh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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