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高한 욕망···서울을 바꾸다
◆韓 위상 반영하는 초고층빌딩
1970년대 삼일빌딩 국내최고·亞 3위 높이
1985년 63빌딩은 북미 제외한 전세계 1위
2000년대 들어 롯데타워 세계 5번째 위용
◆하늘로 치솟는 한강변 아파트
높이 제한 없어져 재건축"35층 이상" 속속
고층 1동이 저층 2동보다 건축비 더 들지만
과밀해결·경관·가격 등 '그 이상의 가치' 창출
‘스카이스크레이퍼(마천루)’. 초고층 건물을 일컫는 이 단어는 ‘하늘을 긁어내는 듯 높은 건물’이라는 뜻이다. 신이 하늘에 있다고 믿었던 인간은 절대적 존재에 대한 경외심을 담아 건물을 높게 쌓아올렸고 여기서부터 초고층 빌딩의 역사가 시작됐다.
하늘에 닿는 높은 건물을 짓고자 한 인간의 욕망은 성경 속 바벨탑에서부터 출발한다. 초고층 건물의 첫 구현은 4500여 년 전 건설된 이집트의 쿠푸 피라미드다. 이 건물은 약 147m의 높이로 수천 년간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 자리를 지켰다. 이 기록은 1980년 161m 높이의 독일 울름 대성당이 완공되면서 경신된다. 수천 년이 지났음에도 석조 건축물의 기술적 한계로 높이는 겨우 14m만 높아지는 데 그쳤다. 벽돌을 사용해 건축물을 쌓아올리기 때문에 상층부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아래쪽 벽의 두께가 매우 두꺼워졌는데 이 때문에 창문이 작아지고 공간의 효율성은 떨어지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이런 한계는 19세기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철강’ 기술의 발전과 ‘승객용 승강기’의 개발로 극복됐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더 높은 주거용 건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초기의 승강기가 산업용으로 화물을 나르는 용도로만 사용되고 사람들은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854년 ‘비상 정지 장치’가 개발되면서 비로소 사람들은 승강기를 활용하기 시작했고 초고층 주거 건물의 역사가 시작됐다. 여기에 철근콘크리트 기술이 발전하면서 두껍고 비효율적이었던 기존의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게 됐다. ‘압축력’과 ‘인장력’이 매우 강한 철근콘크리트 기술이 ‘신이 공학계에 내린 선물’이라고 찬양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술적 진보는 초고층 건물에 대한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꿨다. 마침 도시화에 따라 늘어난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저층 건물을 재개발해 초고층으로 바꾸는 개발 경쟁이 시카고와 뉴욕에서 시작됐다.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하에 있던 1931년, 381m 높이의 102층짜리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뉴욕)’이 탄생했고 1위 자리를 40여 년간 이어갔다. 1974년 442m 높이의 110층짜리 ‘시어스타워(시카고)’가 완공되면서 그 자리를 넘겨받았다. 미국이 차지하고 있던 초고층 건축의 독점적 지위는 1998년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타워(452m 높이)’의 준공을 계기로 서양에서 동양으로 넘어오게 된다. 이후 홍콩·상하이·두바이 등 아시아와 중동이 주무대가 됐다.
현재 초고층 건물의 정의는 어떻게 될까. 세계초고층건축도시학회(CTBUH)에서는 고층 건물 가운데 높이 300m 이상의 건축물을 ‘슈퍼톨빌딩’으로, 600m 이상을 ‘메가톨빌딩’으로 분류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115개의 슈퍼톨빌딩이 있으며 메가톨빌딩은 단 3개에 불과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828m 높이의 ‘부르즈할리파(아랍에미리트)’, 632m 높이의 ‘상하이타워(중국)’, 601m 높이의 ‘마카클록로열타워(사우디아라비아)’ 등이다.
우리나라는 150m 이상의 마천루를 기준으로 중국·미국·아랍에미리트·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마천루를 보유한 나라다. 한국의 높아진 위상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에서는 건축법상으로 층수가 50층 이상이거나 높이가 200m 이상인 건축물을 ‘초고층 건축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초고층 건물의 역사는 약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0년 리모델링을 완료한 서울 종로구 관철동의 ‘삼일빌딩’은 1970년대에 지어진 국내 최초의 마천루이자 당시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높은 빌딩이었다. 이후 1985년에 완공된 ‘63빌딩’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63빌딩은 당시 북미를 제외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았고 그 이후로 2002년까지 약 20년간 국내 최고층 빌딩의 타이틀을 유지했다. 2003년 이후에는 ‘목동 하이페리온’ ‘타워팰리스’ 등 초고층 주거 빌딩의 전성기를 지나 현재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롯데월드타워’로 그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기준 상위 10개 건축물 가운데 7개가 주거용 기능을 겸하고 있다.
최근 서울 한강 변 일대에 50층 이상 초고층으로 재건축을 추진하는 단지가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국내 초고층 건물의 역사도 다시 쓰일 것으로 전망된다. 2014년 서울시의 서울도시기본계획(2030 서울플랜)에 따라 한강 변에 아파트를 지으려면 ‘35층 룰’을 지켜야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올 3월 해당 규제를 폐지한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곳곳에서 ‘35층 천장’을 뚫는 초고층 재건축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여의도 시범아파트(1971년)가 최고 층수 65층, 대교아파트(1975년)가 59층, 진주아파트(1977년)가 58층, 한양아파트(1975년)가 54층으로 초고층을 계획했다. 압구정 재개발의 경우 최저 50층, 최고 70층 건축 계획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최근 공사비 폭증과 늘어나는 공사 기간으로 인해 향후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커지고 있다.
초고층 건축 시공을 주로 맡아온 국내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70층 1개 동을 짓는 비용이 35층짜리 2개 동을 짓는 것보다 30~60%가량 더 소요된다”며 “하중과 풍압을 견디기 위해 자재가 1.5배로 들어가게 될 뿐 아니라 동시에 2개 동을 지을 때보다 공사 기간이 두 배나 돼 인건비가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50층 이상 또는 높이 200m 이상일 경우 지진과 해일 등에 관한 40여 개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심의에 드는 비용과 시간이 늘어나면서 사업성이 크게 떨어진다. 초고층 건물로 생각되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 아크로서울포레스트가 49층에 199.98m 높이로 지어진 이유다.
층수가 높아질수록 공사비도 크게 증가한다. 고층으로 올라갈수록 지진이나 풍압에 취약할 수 있기 때문에 특수 구조물을 설치해야 하고 초강도 콘크리트 시공, 고급 자재 등으로 인해 건축 비용이 늘어난다. 피난안전구역, 비상용 승강기 등의 추가 설치 비용 역시 든다.
해운대 엘시티, 타워팰리스 등의 설계를 맡아온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관계자는 “초고층 건축물은 공사비 외에 얻을 수 있는 랜드마크, 분양가 상승, 인동간격 확보 등 부가가치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면서 “기술적인 부분과 함께 디자인에 대한 가치가 고려돼야 하며, 초고층 빌딩은 ‘긴 수직 이동 거리’와 ‘높은 인구밀도’로 사고가 대형화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안전 설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비용에도 초고층을 추진하는 것은 그 이상의 가치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초고층으로 지어진 주거용 건물들은 해당 지역의 최고가 아파트로 자리 잡는다. 20~30층 아파트에서도 뷰가 잘 나오는 로열층과 저층 간의 시세가 적게는 10~20%에서 많게는 그 이상 차이가 나는 것처럼 초고층 건물과 그렇지 않은 건물의 가격도 크게 차이가 난다. 부자들을 노린 대형 평수일수록 가격 방어도 뛰어나다. 해운대 엘시티 전용면적 186㎡(약 75평)의 경우 올 4월 27일 30층이 47억 원에 거래됐는데 2021년 5월에는 46층이 43억 5000만 원에, 2022년 8월에는 49층이 48억 원에 매매되는 등 부동산 하락기에도 시세에 큰 변동을 겪지 않았다.
이명식 한국초고층도시건축학회 회장(동국대 건축학부 교수)은 “한강 변 초고층 건축은 토지의 효율적인 이용으로 이미 과밀화된 도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도시 내 랜드마크로서 경관적 측면과 상징적 측면에서 장점을 지닐 수 있다”며 “다만 정비사업을 통해 지어지고 있는 건축물들을 보면 초고층화가 주민들에게 아파트 가격을 올릴 수 있는 하나의 매개 수단이 되고 있는데, 도시 경관과 어우러지는 디자인이 먼저 검토되고 여기에 맞춰 경제적으로 최적의 층수를 찾고 자율주행·드론 등 최첨단 기술을 어떻게 접목할지 고민한 뒤 고층화가 이뤄지는 것이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변수연 기자 diver@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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