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을 수 없도다, 막걸리 전성시대[주식(酒食)탐구생활 ⑰]

박경은 기자 2023. 6. 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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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무화과, 멜론, 샤인머스캣... 색다른 재료로 ‘힙’하게

밤 막걸리, 땅콩 막걸리는 들어봤다. 그런데 모히토 맛이 나는 막걸리는 어떨까. 막걸리를 마시면서 밀크티 같은 풍미도 느껴볼 수 있다면? 카프레제 샐러드나 마르게리타 피자에 빼놓을 수 없는 바질을 섞어 막걸리를 만들면 도대체 어떤 맛이 날까. 호기심이 들 수도, 갸우뚱할 수도 있겠다. 그럼 확인해보면 된다. 시중엔 신선하고 재미있는, 기발하기까지 한 수많은 종류의 막걸리가 나와 있으니 말이다. 과일과 채소, 곡물을 조합해 색다르고 독특한 맛을 내는 막걸리 전성시대다.

지난달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막걸리엑스포는 이색적인 막걸리를 맛보려는 인파로 북적였다. 특히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은 과일과 채소를 부재료로 넣은 다양한 막걸리였다. 딸기, 유자, 한라봉 같은 과일은 물론이고 패션프루트, 바질이 들어간 막걸리까지 선보였다.

막걸리는 쌀과 누룩, 물로 빚어내는 전통술의 대표주자다. 시큼털털하고 들큰한 맛의 옛날 술. 서민들이 주로 먹는 싸구려 술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데다, 그마저도 소주나 맥주에 밀려 오랫동안 뒷전으로 물러나 있었다. 적어도 기성세대에게는 그랬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막걸리의 이미지는 달라졌다. 이를 주도한 것은 젊은 소비자와 젊은 생산자들이다.

취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자신만의 취향과 개성을 추구하는 방편으로서의 음주문화가 젊은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호응해 젊은 생산자들의 막걸리 시장 참여도 대거 늘었다. 다른 주류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다는 점도 작용했지만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생산자가 늘어나면서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다양한 제품들이 시장의 활기를 더해주고 있다. 이색적인 부재료를 사용해 막걸리 맛의 스펙트럼을 다채롭게 하는 것은 그 일환이다. 부재료들은 막걸리에 ‘힙’한 이미지를 덧입히고 있다.

‘옛날 술’ ‘싸구려 술’ 이라는 인식 탈피 젊은 층 중심으로 새로운 시도 이어져
맛, 향은 물론 병, 라벨 등도 각양각색...양조장 직접 찾아가 시음 후 구입하기도

“막걸리가 어려울 필요 없잖아요. 우리가 즐겼던 다양한 음료와 기호식품의 맛을 직관적으로 막걸리에 접목한 것이 소비자를 설득할 수 있었다고 봐요.”

연희멜론, 연희유자, 연희민트 등 각양각색의 부재료를 넣은 막걸리 ‘연희’ 시리즈로 상당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같이양조장 최우택 대표의 이야기다. 막걸리라는 정체성은 유지하면서도 격식이나 한계에 얽매이지 않고 실험적으로 했던 시도들이 연달아 히트작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현재 전국에서 생산·판매되고 있는 막걸리에 사용되는 부재료들은 다양하다. 오디, 오미자, 무화과, 모과, 귤, 샤인머스캣, 라임, 포도, 버찌, 단호박, 토란, 연잎, 쑥, 생강, 백년초, 구절초 등 일일이 꼽기도 힘들 정도다.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웬만한 식재료라면 다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또 앞으로 어떤 부재료를 활용할지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우리 전통 막걸리가 만들어낼 미래인 셈이다.

같이양조장에서 다양한 부재료를 넣고 만든 막걸리들

젊어진 막걸리는 취향을 저격하는 맛뿐 아니라 외관도 기존의 막걸리와는 다르다. 페트병 대신 와인병을 연상케 하는 유리병에 담겨 있는 경우가 많고 라벨의 디자인, 브랜드 서체도 세련된 감각으로 입혀졌다. 대형 제조사에서 만드는 막걸리가 아니다 보니 시중의 대형마트에서 구하기는 어렵다. 대신 소비자들 사이에선 직접 양조장을 방문해 시음, 구입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가고 있다. 스마트스토어 등 온라인 판매 플랫폼이 갖춰져 있다면 이를 활용하기도 하며 이유 있는 술집, 애주 금호, 우리술당당, 술술상점 등 전통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보틀숍도 늘고 있다. 최근에는 와인 전문점에서도 막걸리 등 전통주를 갖춰놓는 경우가 많다.

막걸리를 빚기 위해 쌀을 씻고 있는 모습

전통주 전문가인 경기도 농업기술원 이대형 박사는 직접 운영하는 전통주 홈페이지(www.koreasool.net)를 통해 “몇 년 전부터 다양한 부재료를 사용한 술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면서 “맛이 획일화되어가는 전통주 시장에서 젊은 양조인들의 다양한 부재료 첨가는 다양성을 확대시키는 대안이 될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취향 찾아 취해볼까... 요즘 뜨는 이색 막걸리 14선

그렇다면 이렇게 다채로운 막걸리 중 무엇을 맛봐야 할까. 전통주 발굴 및 마케팅·홍보 전문기업 대동여주도 이지민 대표의 추천과 도움말로 14개 제품을 골라봤다.

△지란지교 무화과

(지란지교 @jiranjigyo.official)- 순창에서 재배한 무화과와 햅찹쌀로 빚었다. 무화과가 병당 3~4개 들어 있다. 알코올 도수는 12%.

“무화과 탁주의 매력은 색깔과 향에서 나온다. 바로 섞지 말고 맑은 부분을 우선 맛본 뒤 탁주 전체의 맛을 즐기길 추천한다. 여름 과실에서 느껴지는 싱그럽고 경쾌한 풍미가 일품. 목 넘김 후에는 혀를 쫙 조여오며 침샘을 자극한다.”

△오!미자씨

(두술도가 @doosooldoga)- 경북 문경의 오미자 생과즙을 넣어 만들었다.

“오미자의 싱그러움을 담아낸, 고정 팬이 많은 막걸리다. 오미자의 ‘오미’를 밸런스 있게 잘 담아내 누구나 즐길 수 있다. 막걸리 마니아라면 꼭 맛봐야 한다.”

△온지몬

(온지술도가 https://onzisul.modoo.at)- 제주에서 자란 친환경 레몬을 넣었다.

“마치 레몬 커스터드 크림을 입안 가득 머금은 듯한 맛이 특징인 탁주다. 날이 살짝 더워질 때, 낮술이 필요할 때, 입맛 없을 때 최고다.”

△오마이갓

(삼양춘 @samyangchoon)- 송도향주조와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 에빗의 조지프 셰프가 함께 만든 제품. 경북 청도의 모과와 조지프 셰프의 고향 호주의 태즈메이니아 페퍼베리를 넣어 만들었다.

“탁주 특유의 부드러운 질감에 이색적인 부재료 맛이 오묘하고 농밀하게 어우러진다. 한 모금 맛보면 ‘오 마이 갓’을 외치게 될 정도로 마성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지란지교무화과 써머딜라이트 쑥크레 라봉 (왼쪽부터) 대동여주도 제공

△스톡홀롬신드롬

(어릿광대양조장 @clown_brewery)- 어릿광대양조장은 식사 전 입맛을 돋우는 식전주를 콘셉트로 술을 빚는다. 패션프루트와 라임을 넣어 산미를 높였다.

“산미가 뛰어나 식전주로 일품이다. 타코 등 멕시칸 요리와 함께하거나 칵테일로 즐기기 좋다.”

△연희멜론

(같이양조장 @togetherbrewery)- 과숙성시킨 멜론이 통째로 들어간 막걸리.

“멜론의 싱그러움에 반할 만한 맛이다. 달달한 술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탄산수나 토닉워터와 함께 즐겨도 좋다.”

△초록섬 탁주

(양조장 히읗 @brewery_ilo)- 연잎과 연잎 우린 물을 사용해 빚었다.

“은은한 곡향, 약간의 새콤한 향이 어우러져 있다. 적당한 단맛과 튀지 않는 산미로 차분하게 조화를 이룬다. 혀끝에 남는 쌉쌀함이 매력적이다.”

△쑥크레

(주방장 양조장 @jubangjang_brewery)- 애엽쑥을 부재료로 빚었다. 알코올 도수는 10%.

“허브 가든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독보적인 향을 갖고 있다. 쑥을 현대적으로 잘 해석해 쑥에 대한 편견을 줄여줄 제품이다. 단맛 뒤로 화사한 향과 적당히 쓴맛이 뒤를 받쳐준다.”

△라봉

(다도참주가 http://chamjuga.com)- 나주에서 60년 이상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양조장으로 다양한 탁주를 생산한다.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한라봉으로 만든 ‘라봉’.

“한라봉을 듬뿍 갈아 넣은 생막걸리로 상쾌한 향과 맛이 잘 살아 있다. 단맛이 과하지 않고 깔끔해 오래 즐길 수 있다.”

딸기스파클링막걸리 호호 오!미자씨 온지몬 (왼쪽부터) 대동여주도 제공

△딸기스파클링막걸리

(청산녹수 @bluegreenkorea)- 전남 장성군 특산물인 설향 딸기를 부재료로 빚었다. 막걸리를 딸기와 함께 저온에서 발효시켜 딸기의 싱그러운 향과 맛이 녹아 들어가게 했다. 청량감을 위해 탄산을 더했다.

“딸기라는 재료를 쓴 것만으로도 소비자들, 특히 여성들에게 어필할 요소가 충분하다. 봄철 호텔가에서 딸기를 활용한 뷔페 프로모션 때 이 막걸리를 넣어보면 어떨까.”

△시향가

(시향가 www.sihyangga.co.kr)- 동결건조한 토란을 고두밥에 넣고 찐 다음 숙성시켜 만들었다. 알코올 도수는 8%.

“토란의 뭉글한 질감이 느껴지거나 하지 않고 깔끔함을 선사한다. 슴슴한 맛이 편하게 다가오고, 가볍고 편하게 즐기기 좋다.”

△너디호프

(너드브루어리 https://smartstore.naver.com/nerdbrew)- 생바질을 넣어 인기를 끌고 있는 막걸리.

“풍부한 향을 즐기며 마시기 좋은 젊은 감성의 탁주로, 이탈리아 음식 등과 페어링을 해볼 수 있는 막걸리다.”

△호호

(중원당 @haha.hoh0)- 경북 상주에서 직접 농사지은 단호박으로 빚은 막걸리.

“이름처럼 호호! 하하! 웃으며 즐기기 좋은 막걸리다. 단호박의 진한 풍미와 구수함이 담겨 있다.”

△써머딜라이트

(대동여주도×같이양조장 @togetherbrewery)- 대동여주도와 같이양조장이 협업해 선보인 제품. 3차례 발효한 삼양주에 샤인머스캣 과즙을 넣어 만들었다. 한 병에 샤인머스캣 한 송이가 거의 통째로 들어갔다. 알코올 도수는 12%.

“아이스와인 스타일. 식후주로 제격이다.”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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