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앵무살수’···여성 신체 재현은 '음담패설 댓글'에 얼마만큼 책임이 있을까[위근우의 리플레이]

기자 2023. 6. 9.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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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탐탐’ 기다렸다는듯…저급한 욕망의 발산
통제는 어렵지만 통감해야 한다

예술가는 자기 작품이 저열하게 소비되는 것에 어느 정도의 책임을 져야 할까. 이번주 공개된(무료분 기준) 네이버 웹툰 <앵무살수>에선 주인공 노소하가 의뢰인이자 독을 이용한 무공으로 독인(毒人)이 된 장미려와 재회하는 장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베스트 댓글이 달렸다. ‘장미려, 독공주머니가 아주 묵직하구나.’ 약 2000명의 추천을 받은 이 댓글에는 ‘입으로 독을 빼주어야겠구려’ ‘정말이지 독은 다 유방에 담아둔 듯하네요’ 따위의 성희롱적인 대댓글이 뒤이었다. 야할 정도는 아니지만 여성 캐릭터인 장미려의 가슴이 도드라진 구도에 대한 반응이었다.

그보다 4주 전, 세뇌당한 장미려가 노소하를 공격하는 중 역시 가슴이 부각된 장면에 대해서도 ‘가슴골 공격은 솔직히 정신 차리기 쉽지 않긴 해’ ‘독을 빨아내야 하는데 어딜 빨아야 할지 대충 알겠군’ 등의 댓글이 역시 수백에서 천 단위의 추천으로 베스트 댓글에 올랐다. 평소 정통 무협 장르인 <앵무살수>의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묵직한 대사에 대해 낭만과 운치를 논하던 독자들이 추잡한 본색을 드러내는 데 여성 가슴 한 컷이면 충분했다.

논점을 선명히 하기 위해 입장을 미리 밝히는 게 좋을 것 같다. 이번 글의 목적은 작품과 작가를 비판하는 게 아니다. 나는 <앵무살수>가 성적대상화로 여성혐오를 드러내는 작품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물론 장미려의 가슴을 그렇게 크게 설정할 필요가 있었는지, 또 몇몇 장면에서 가슴을 도드라지게 하는 구도가 필요했는지는 의문이다. 작가의 마음을 읽을 수는 없지만 해당 연출에서 ‘메일 게이즈(Male Gaze)’가 드러나는 만큼, 남성 독자들을 위한 서비스 컷 제공 의도를 추궁할 수도 있겠다. 작품 전체적으로는 장미려를 비롯한 여성 캐릭터 대부분이 서사의 주변부로 밀려난다는 점에서 남성 중심적인 세계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해당 요소들은 작품의 다른 장점과의 대차대조를 통해 총점을 깎아 먹는 단점이자 한계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작품의 본질을 이루진 않는다.

정통 무협 장르인 이 작품에
낭만과 운치를 논하던 독자들이
여성 가슴 한 컷에 드러낸 ‘본색’
상식적 문화 소비자를 가정해야
창작자의 운신이 자유로워지지만
해악을 자정하지 않고 방치하면
최종적으로 마주할 사람은
비평가가 아닌 진짜 재판관일 것

가령 이 지면을 통해 몇 번이고 비판한 바 있는 박태준 작가의 웹툰들, 그리고 그 영향을 받은 네이버 웹툰 학원물 다수의 경우 여성 캐릭터의 신체를 음습하게 훑고 서사 안에서 남성 주인공의 보상처럼 제공하는 것 자체가 작품의 재미(라고 말해도 된다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즉 독자의 저급한 욕망을 자극하는 것 자체가 작품의 주요 전략이자 목표다. 그 욕망에 기생한다 해도 되겠다. 반면 <앵무살수>의 경우 여성 캐릭터의 가슴을 굳이 부각하지 않아도 작품을 이해하고 즐기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그렇기에 그런 장면이 불필요했다고 비판할 수는 있으나, 이 작품이 성 상품화를 조장한다고 보긴 어렵다. 그렇다면 왜, 여성 신체 묘사가 노골적으로 대상화되거나, 실천적 해악을 끼치진 않은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려는가. 바로 그것이 이유다. 그런 작품의 비교적 느슨한 수위의 여성 신체 묘사조차 모욕적인 음담패설로 소비될 때 우리는 어떤 입장이어야 할까.

여성의 신체는 당연히 그 자체로는 선정적이지 않다. 또한 선정적으로 재현한다고 해서 꼭 남성 욕망을 위한 객체가 되는 것만도 아니다. 실제로는 무 자르듯 나눌 수 없어도 건조한 신체 묘사와 성애화된 묘사, 성적대상화로서의 묘사는 적어도 개념적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스펙트럼 위에서만 여성 신체 재현, 섹슈얼리티 재현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를 할 수 있다. 도식화하자면 이 스펙트럼에서 선정성의 범위가 늘어난다면 연령 등급이 올라갈 것이고, 성적대상화의 범위가 늘어난다면 도덕적 비판과 제재 가능성이 올라갈 것이다.

예를 들어 18세 이상 관람 등급 웹툰인 <헬퍼: 킬베로스>의 지난 1월 연재분에는 ‘타락한 세상을 그리기 위해 선정적인 장면 쓰는 건데 여성 상품화다 뭐다 하며 초창기 있던 섹스신 검열하게 만든 게 자유민주주의 국가냐, 페미로 인한 검열 심하다’라는 베스트 댓글이 있었다. 성적대상화의 기준을 너무 넓게 잡아서 성인 대상 작품에서조차 섹슈얼리티 소비를 할 수 없다는 불만. 젠더가 중심 전선이 된 한국의 온라인 문화 전쟁에서 종종 페미니즘은 정치적 올바름에 매몰되어 문화적 쾌락주의를 배제하는 검열의 주체로 호명된다. 실제로 작품에서 한 줌의 유해함을 발견하는 것만으로 비난하고 배제하는 ‘캔슬컬처(Cancel Culture)’는 존재하며, 그것이 종종 문화에 대한 논의를 빈곤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다시 <앵무살수>의 사례로 돌아와보자. 장미려의 가슴이 그냥 거기 존재하는 신체 부위로서만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것은 해당 장면에 드러나는 남성 시선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알레르기 때문인가, 옳다구나 성적대상으로 삼아 지저분한 말로 유린하는 남성들의 댓글 때문인가. 언제나 텍스트의 의도를 벗어나 극단적으로 반응하는 무리는 있다. 그에 대해 작가가 모두 통제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런 반응이 늘어나고 반복될수록 창작자는 책임을 회피하기 어려워진다.

사실 이것은 최근 대중문화 비평이 처한 곤란함이기도 하다. 종종 그런 오해를 받지만 비평이 작품을 탈탈 털어 작은 유해함이라도 발견하면 유죄판결을 내리는 작업일 수는 없다. 그것이 독단적이어서만도 아니고, 문화를 따분하게 만들어서만도 아니다. 그런 기준을 적용하면 어떤 작품이든 최종적으로 모두 유죄판결을 받고 대중으로부터 격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무해한 작품은 없다. 어떤 훌륭한 작품에서도 일말의 유해함을 발견할 수 있고 여기엔 대단한 비평적 식견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델마와 루이스의 위대한 마지막 질주에도 배기가스는 배출된다. 그러니 무해함이 작품 평가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단지 덜 유해한 방향을 선호하며 작품에 대한 복합적인 평가에 고려할 수 있을 뿐이다. 문제는 과거라면 작품의 장점으로 충분히 상쇄되어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될 거라 믿었던 유해함이 무시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시적인 해악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나는 성 엄숙주의자가 아니며, <앵무살수>의 여성 신체 묘사에 의구심이 없진 않아도 작품이 지닌 장르적 매력에 천착하는 게 적절한 비평적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성 가슴만 보면 자동판매기 버튼이라도 눌린 듯 음담패설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고 거대 플랫폼 댓글창을 선점하는 세계라면, 아예 여성 신체를 꽁꽁 싸매길 작가에게 요청해야 하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현실이 이 모양이니 작품 검열도 불사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창작자의 운신은 상식적인 문화 소비자를 가정해야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오컬트 영화 수작인 <검은 사제들>을 오직 장르적으로 마음 편히 소비하기 위해선 동료 시민 절대다수가 현실에서의 구마 행위를 믿지 않는다는 신뢰가 필요하다. 구마 대상자에 대한 물리적 통제와 억압이 정당하다고 믿는 세계에서 <검은 사제들>은 여고생을 침대에 묶고 신의 이름으로 고문하는 진정한 의미의 공포물이 된다. 마찬가지로 호시탐탐 왜곡된 성 관념과 여성에 대한 지배욕을 발산할 준비가 된 독자들을 예상하며 여성 캐릭터의 성적 매력에 관한 묘사를 편히 즐기기란 어렵다. 낮은 노출 수위로도 그것은 포르노가 된다. 앞서 비평은 유죄판결을 내리는 작업이 아니라고 했다. 당연히 그럴 필요가 없다. 이 해악을 자정하지 않고 방치했을 때 문화 시장의 참여자들이 최종적으로 마주할 사람은 까다로운 비평가가 아닌 진짜 재판관일 테니.

위근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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