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은 유해하고 회의는 주의를 빼앗는다”···사장님이 꼭 봐야할 책[책과 삶]

이영경 기자 2023. 6. 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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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인 ‘미드저니’에 ‘사무실에서 AI 기기를 이용해 일하는 사람들’, ‘감시하는 존재’ 등의 키워드를 넣어 생성한 이미지.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

 앤 헬렌 피터슨·찰리 워절 지음|이승연 옮김|반비|348쪽|1만8500원

이 책은 하나의 선언과 같다. 조금이라도 더 경쟁력을 높이고 생산성을 올려야 한다는 사회의 압박에 맞서 “시간을 덜 들이고 일을 더 적게 하라”고 말한다. 더 일하고, 더 벌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불안정하고 경쟁적인 시대에 이 말은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이 ‘선언’은 어찌보면 힘빠질 정도로 당연하다. 애초에 사람은 일만 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자신답게 살기 위해, 삶에서 중요한 가치와 관계들을 지키고 돌보기 위한 수단으로 일을 하지 않는가. 주객이 전도된 상황에 너무 익숙해진 탓에 잊고 있었을 뿐이다.

“삶을 바꾸어서 우리 자신을 더 나은 노동자로 만드는 대신, 노동을 바꾸어서 우리의 삶을 더 나은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

자본이 요구하는 노동에 맞서 우리의 삶의 요구에 맞춰 노동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이 책의 주장은 매혹적이다. 노동자들의 귀에만 달콤한 소리도 아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노동을 덜어내고 ‘진짜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여 회사에도 득이 된다고 말한다. 주당 근로시간을 69시간으로 늘려 노동자들이 보다 ‘유연하게’ 더 많이 일하게 하자는 정책을 추진 중인 한국 사회에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더 절실하게 들린다.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보편화됐던 원격근무에 대한 고찰에서 시작해, 사무실을 벗어난 노동이 일과 삶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끝을 맺는다. 이 논의의 여정을 따라가는 과정은 흥미롭다.

팬데믹은 여러모로 끔찍했지만, 누구나 사무실에 나와서 일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원격근무의 가능성을 시험해볼 기회가 됐다. 물론 현실의 원격근무는 자유롭지도 우아하지도 않았다. 강제로 집에 격리된 상황에서 일과 돌봄, 생활이 한데 뒤섞이는 결과를 낳았다. 팬데믹이 종식되면서 사회는 빠르게 이전으로 복귀를 시도하고 있다. 책은 일터를 팬데믹 이전으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과거로 후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원격근무가 가진 유연한 노동의 가능성을 더 확장할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경영자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다. “다시 직원들을 사무실로 매일 출근하게 하는 일은 바보 같은 짓입니다.”

구글 애플 관련 이미지. 코로나19 팬데믹은 원격근무를 성큼 앞당겨 시행하게 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사무실은 일과를 획일화하고 ‘미묘한 차별’의 온상
불필요한 회의와 일과 생활의 구분 없어 ‘번아웃’
경영자에게만 유리한 ‘유연성’ 대신 노동과 삶을 바꾸는 ‘유연성’ 필요

잘 생각해보자. 우리의 사무실이 진정한 커뮤니케이션과 창의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생산성 넘치는 공간이었던가. 책은 ‘사무실의 유해성’에 대해 여러모로 지적한다. 사람들의 일과를 출퇴근에 맞추도록 강요하고, 회의가 줄기차게 이어져 주의를 빼앗으며, 실제 생산적인 것보다도 ‘생산적인 느낌을 주는 일’을 더 높이 산다. 미묘한 차별(microaggression)과 반복되는 유해한 위계적 행동의 온상이다.

<요즘 애들>에서 불안정한 사회에서 밀레니얼 세대가 처한 상황을 ‘번아웃’으로 설명해 화제를 모았던 앤 헬렌 피터슨은 파트너인 찰리 워절과 함께 지식노동자들이 처한 번아웃에 집중한다. 멋지고 파격적인 디자인의 사무실, 발달하는 디지털 기술 등이 노동자들을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만들기보다는 일과 삶을 분리하지 못하고 늘 일과 연결된 채 살아야 하는 ‘번아웃’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다. 재택근무가 ‘사무실에서 하던 모든 일을 집에서 하는데 단지 임대료와 공과금을 직원이 부담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원격근무는 “의미 있는 통제와 저항의 행위”가 될 수 있으며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개인의 삶과 균형을 맞추는 방식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 책이 원격근무가 가능한 42%의 지식노동자들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한계를 인정한다. 또한 원격근무가 아예 불가능한 노동자들이 팬데믹 시기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었고, 노동의 필수적 성격에 비해 형편없는 임금과 대우를 받는 현실도 지적한다.

저자들은 ‘유연성’에 대한 개념부터 다시 설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영계가 이제껏 추구해온 유연화는 혜택을 전부 회사 몫으로 가져가는 방식이었다. 기업에는 비용 절감을, 노동자들에겐 고용 불안을 뜻했다. 불안정성 때문에 노동자들은 더 많이 일하고 적게 번다. 유연성은 “번아웃에 빠진 노동 인력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현시대에 요구되는 진정한 유연성은 고정되어야 할 업무와 유연해질 수 있는 업무를 면밀히 따져 일, 근무 형태, 업무 일정을 유연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책은 원격근무가 노동자들의 삶과 시간에 맞게 일을 재구성한 모범적 사례와, 이를 가능하게 한 기술적 도구들을 소개한다. 그저 끊임없는 줌 미팅과 e메일의 연속이 아니라, 원격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소통과 교류를 돕고, 일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도구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당신이 소집하는 회의는 직원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가, 아니면 당신이 손쉬운 방법으로 다운로드하는 자리일 뿐인가?” 먼저 ‘회의’에 대해 따져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길 권한다. 미팅 사이언스를 운영하는 에릭 포레스는 “회의와 관련해서는 엔트로피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회의가 회의를 낳고,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간다는 것이다. 한 회사는 한 달 근무시간의 75%를 회의에 썼다. 상태를 점검하는 회의, 다음 회의를 위한 회의, 아무도 아이디어를 내놓을 준비가 되지 않은 아이디어 회의 등이 이어진다. 책은 e메일이나 불필요한 줌 회의를 줄일 수도 있는 ‘룸(Loom)’이란 도구를 소개한다. 룸은 짧은 동영상을 스스로 녹화해 다른 사람에게 빠르게 보내는 도구다. 팬데믹 시기 채용된 사람들은 회사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없고, 온라인 교육은 비생산적이었지만, 룸을 이용해 동료들과 만나고 보다 ‘친밀하게’ 교육받을 수 있었다. “텍스트에 기반하지 않는 대화, 수많은 이모티콘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방식으로 어조와 분위기를 전달”하게 함으로써 이모티콘 하나를 두고 상사와 동료의 기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스트레스받는 일을 덜어주는 셈이다.

팬데믹 기간 주 4일제를 실험한 회사들도 있다. 뉴질랜드 신탁관리 회사 퍼페추얼가디언은 주 4일 근무로 수입의 6%, 수익성의 12.5%를 끌어올렸다. 일본 마이크로소프트는 생산성을 40% 높였다.

재택근무와 관련된 이미지. 현재의 원격근무는 사무실을 그대로 집으로 옮겨 놓은 것으로 일과 생활 구분없이 끊임없이 일하게 한다.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는 노동자들의 삶과 시간에 맞게 노동을 재조직해야한다고 말한다. 출처 언스플래시
재택근무는 ‘구체적 기술’···일로부터 삶을 지키기 위한 ‘가드레일’ 필요
스타트업 문화는 ‘조직맨’ 요구하는 ‘최악의 워라밸’
유연성이 백인 남성 위주의 기업문화를 다양성, 포용적 기업문화로 전환

재택근무는 단지 근무 장소를 집으로 옮긴 것이 아니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일이 시시때때로 삶을 침범해 번아웃을 일으키지 않기 위한 ‘가드레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일과 생활의 경계를 설정하는 건 개인의 문제지만, 가드레일은 구조적 문제다. “가드레일이 없다면, 오래된 사무실의 위계는 스스로 재생산될 것이다. 돌볼 책임이 없는 특권을 누리는 사람이 그런 책임을 분담하고 있는 사람보다 더 우위에 있다. 팬데믹 이후의 유연근무는 그저 이전과 똑같은 커다랗고 불명확한 일덩어리가 되어 늘 유리한 자리에 있던 사람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테크 기업 프런트가 한 예다. 프런트의 직원들은 자기 메일함을 원천봉쇄할 수 있었다. 휴가 등으로 ‘부재중’ 상태라면 받은 e메일은 곧바로 지정된 수신자에게 전달된다. 다른 누군가가 e메일을 받아서 처리하게 되는 것이다. 프런트는 “이메일을 개인이 짊어지는 부담에서 공동 분담의 과업으로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며 동료 간의 신뢰를 두텁게 만들었다. 직원들이 동료들의 시간을 빼앗는 요구사항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됐다. 가드레일을 만드는 것은 회사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직률과 번아웃 비율이 높아지면, 결국 채용과 교육 훈련, 치료비 등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게 된다. 게다가 아무도 진정으로 좋아하지 않는 형편없는 회사가 된다.” 책은 직원들의 자기 돌봄이 가능하도록 충분한 인력을 채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은 회사를 위한 ‘조직맨’이 되기를 요구하는 기업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가장 유연하고 혁신적으로 보이는 스타트업조차 구시대 기업문화와 다를 바 없이 형편없다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회사지만, 회사스럽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있는 힘껏 일하고 있는 힘껏 논다는 불경한 문화”를 만들어 “어떤 형태의 워라밸이든 최종 파멸에 빠뜨렸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스타트업은 “공허한 특전들이 실질적 복지 혜택을 대신했고, 인사(HR)에는 신경 쓰지 않았고, 생산성을 우상화했다.” 이들이 성장해 빅테크 기업이 된 이후에도 캠퍼스와 같은 사무실, 훌륭한 공짜 식사, 사내의 다양한 공동체 프로그램을 제공했지만, 실은 회사에서 일하고, 먹고, 노는 등 모든 것을 해결하게 하는 것이었다.

복스(Vox)의 애나 노스는 “코로나19가 발발하기 훨씬 전에 미국인들은 마치 가족이 없는 사람처럼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2020년 포천 500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중 92.6%가 백인이었다. 백인 남성은 신입 직원의 35%에 불과하지만 고위직 임원의 66%를 차지한다. 대부분 기업에서 백인·남성·고학력·중산층, 회사일 외의 의무를 다른 이들(파트너, 부모, 고용한 도우미)에게 넘길 수 있는 사람이 높은 자리로 올라간다. 하지만 ‘단일 문화’를 가진 기업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책은 생산력을 높이고 활기를 북돋우기 위한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원격근무와 유연근무는 그동안 사무실에 하루 종일 있을 수 없었던 노동자들을 끌어들이며 “요지부동일 것 같던 구조를 해체하고, 새롭고 더 포용적인 구조를 세우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위아로지가 좋은 예다. 장단기 임시직 파견 회사의 21세기 버전인 위아로지는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는 6000명의 노동자들을 전 세계 기업과 광고 회사에 연결했다. ‘로지들(Rosies·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군수공장에서 일한 여성들을 대표하는 문화적 상징)’이라 불리는 고용인들은 환상 속에만 존재할 것 같은 ‘급여 조건이 좋은 시간제 일자리’를 진짜로 찾을 수 있었다. 노동력의 90% 이상이 원격근무를 하고, 40% 이상이 유색인종이며, 99%가 성별과 상관없이 동등한 급여를 받는다. ‘로지들’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고 있는 참전용사들, 가족과 가까이 있기 위해 현재 살고 있는 시골을 떠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위아로지는 ‘유연근무’의 긍정적 속성, 특히 다양성과 포용성을 조합해서 유연근무에 흔히 수반되는 착취와 불안정성에 맞선다.”

재택근무 이미지
관리직은 승진과 권력의 수단 아냐···전문성 필요
유연한 노동은 개인의 삶과 공동체 참여를 늘려
다양한 스펙트럼의 유연한 노동을 구상해야

책은 제대로 된 관리자 교육과 양성을 강조한다. 유연화로 노동자들이 각자 일정에 따라 일하게 된다면 그것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관리자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회사에서 관리자는 ‘관리 능력’과 상관없이 승진과 권력, 연봉 인상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결과적으로 아무런 훈련도 받지 못한 관리자가 조직을 맡았다. 이들은 “자기 업무를 눈에 띄고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불필요할 정도로 세세하게 관리하거나, 상위 관리자가 하는 방식대로 뒷전으로 미룬다”. 경영 관리는 타인에게 주안점을 두는 기술, 피드백 받아들이기, 동료의 발전 뒷받침하기, 원활하게 소통하기 등을 필요로 한다.

장기적으로 ‘유연한 노동’은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서 나아가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스스로를 위해, 육아와 가족 돌봄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일 수 있고, 가사 분담을 공평하게 할 수 있으며 자신이 소속된 지역 공동체에 참여하고, 도시를 가꾸고 돌보는 데에도 관심을 쏟을 수 있다.

책은 단순히 사무실이냐, 재택근무냐 양자택일을 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도 아니면 모’가 아니라 그 가운데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음을, 각자의 조직에 맞는 최적의 근무 방식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의 답은 없다. 하지만 올바른 방향성을 정한다면, 단순히 재택근무는 효율성이 떨어지며 대면근무가 낫다는 식의 (경영진에게 유리한) 결론을 넘어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고,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일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한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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