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美 뒷마당에 '도청기지' 만드나…WSJ "쿠바와 비밀 합의"
쿠바 정부는 공식 부인…美 NSC도 "정확하지 않은 보도"
중국이 미국 본토와의 거리가 200㎞도 채 안 되는 쿠바에 도청 기지를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미 중국과 쿠바는 이와 관련한 비밀 합의를 이뤘으며, 쿠바는 그 대가로 거액의 돈을 받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WSJ은 사안에 정통한 미국 관리들을 인용해 중국이 쿠바에 도청 기지를 설립하고, 중국은 재정난에 처한 쿠바에 수십억 달러를 지급하기로 두 나라가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쿠바는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약 100마일(약 160㎞) 떨어져 있으며, '미국의 뒷마당'으로도 불린다. 이런 쿠바에 중국의 도청 기지가 들어서게 되면 중국 정보기관이 군사 기지가 몰려 있는 미국 남동부 전역의 전자 통신을 수집하고 미국 선박의 통행을 감시할 수 있게 된다고 WSJ은 설명했다.
CNN도 2명의 소식통을 인용, 쿠바가 자국 영토에 중국 도청 기지를 건설하는 방안에 동의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지난 몇 주 사이 이 계획을 인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도청 기지의 정확한 위치나 중국이 실제 건설에 착수했는지 등의 세부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다.
WSJ은 미국 뒷마당에 첨단 군사 및 정보 능력을 갖춘 중국 기지가 들어서는 것은 미국에 전례 없는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과거 미국이 서반구에서 외국 세력이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개입한 사례로 쿠바 미사일 위기를 언급하기도 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1962년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려고 시도하면서 미국과 소련이 대립해 핵 사용 직전까지 갔던 사건이다.
미국 연방 상원 정보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공동 성명을 내고 조 바이든 행정부에 조처를 촉구했다. 마크 워너 민주당 의원과 마코 루비오 공화당 의원은 "쿠바와 중국이 미국과 미국인들을 표적으로 삼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는 보도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우리는 중국이 미국에서 100마일밖에 안 떨어진 곳에 정보 시설을 짓는 걸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CNN은 이같은 소식이 미중 관계가 최악에 도달한 시점에 전해진데 주목했다. 지난 2월 중국의 정찰 풍선이 미국 본토 영공을 침범하자 양국 간 대립 구도가 한층 심화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과의 경쟁적인 관계가 충돌로 치닫는 걸 막기 위해선 정기적 소통 채널이 필요하다고 판단, 고위급 접촉면을 늘리려 하고 있다. 미중 고위급 소통은 최근 재개된 것으로 보이나, 중국이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를 계기로 국방수장 회담을 하자는 미국의 제안을 거절하는 등 여전히 긴장감이 감돈다.
중국 도청 기지 건설에 관해 쿠바 정부는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했다. 카를로스 페르난데스 데 코시오 쿠바 외교무 차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혀 사실이 아니다. 미국 관리들은 이런 종류의 비방을 종종 조작해낸다"며 해당 보도가 미국의 대(對)쿠바 제재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WSJ 보도 후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성명을 통해 "보도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고 했다. 패트릭 라이더 미국 국방부 대변인도 "우리가 가진 정보를 바탕으로 그런 보도 내용은 정확하지 않다고 판단한다"며 "중국과 쿠바가 새로운 형태의 도청 기지를 구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미국도 중국 인근에서 정보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점을 들어 쿠바 기지 건설을 정당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미국 싱크탱크 민주주의수호재단(FDD)의 크레이그 싱글턴 선임연구원은 "쿠바 도청 시설은 중국이 미국의 뒷마당에서도 같은 행동을 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줄 것"이라며 "(중국이) 쿠바를 선택한 것은 의도적 도발"이라고 해석했다.
박가영 기자 park080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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