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웠던’ 아이 친구 생일파티 초대…다녀보니 엄마들 만남은 비슷[다른 삶]

기자 2023. 6. 9.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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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안 라이프 - 어린이들 파티 문화
아이를 위한 호화 생일파티 시장이 커지면서 키즈카페, 동물원, 영화관, 워터파크, 테마파크 심지어 호텔이나 요트에서도 파티가 열린다.

“이번 파티는 얼마나 성대할까!”

오래된 드라마나 소설에서 들어봤을 법한 이 대사는 다름 아닌 우리 아이 입에서 나온 말이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한 반에 스무 명 정도의 학생이 있고 그중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유럽과 아랍계 친구들이 매년 생일파티를 연다. 반 친구 전체를 초대하는 대규모 생일파티는 한 해 5건 정도이고 친한 친구들만 불러서 여는 소규모 생일파티도 끊임이 없다. 쌍둥이 아이를 키우는 덕분에 우리 집에는 거의 매달 생일파티 초대장이 날아든다.

방학이 끝나고 학기가 시작되자 생일을 맞은 아이 친구들의 초대가 어김없이 이어졌다. 첫 번째 장소는 키즈카페였다. 아이들이 키즈카페 놀이터에서 약 한 시간을 신나게 뛰어노는 동안 엄마들은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서 다과를 먹으며 친목을 다진다. 아이들이 한바탕 놀이를 끝내고 파티룸으로 돌아오면 모두 모여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데 1절은 영어로, 2절은 아랍어로 불러준다. 노래가 어찌나 경쾌한지 좀처럼 입에 붙지 않는 아랍어이지만 이 노래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게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 후에는 다 같이 간식을 먹는데 베지테리언 아이들을 고려하여 치즈만 올린 마르게리타 피자와 감자튀김이 가장 선호된다. 행사가 모두 끝난 뒤 아쉬움을 안고 집에 돌아가는 아이들 손에는 구디백(Goody bag)이 하나씩 들린다. 그 안에는 장난감이나 문구류, 스티커, 사탕과 같은 작은 소품들이 주로 들어있다. 이러한 키즈카페 생일파티가 현재 아부다비에서 가장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생일파티의 모습이다.

따라서 대다수의 키즈카페가 이러한 패키지를 판매하고 있고 인기 있는 곳은 몇 달 전에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비용은 초대하는 아이 한 명당 5만~7만원 정도인데 최소 예약 인원이 15명부터 시작하므로 예산을 100만원부터 잡아야 한다. 여기에 추가로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의 데커레이션이나 맞춤 케이크, 그리고 친구들에게 나누어주는 구디백과 부모들의 다과에 힘을 주기 시작하면 예산은 어느새 두 배를 훌쩍 넘는다. 아부다비의 전문 파티 플래너들은 “예산을 정하고 이를 준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거듭 강조한다. 문제는 이를 뛰어넘는 초호화 생일파티를 다니면서 점점 높아지고만 있는 우리 아이의 눈이다.

별한 날을 위한 고급 맞춤 케이크는 기본.

아이에게 특별한 생일파티를 선물해주고 싶은 마음을 귀신같이 알아챈 엔터테인먼트 업체들은 다양한 장소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동물원이나 영화관 대여를 비롯하여 워터파크, 테마파크 그리고 호텔이나 요트에서 열리는 생일파티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러한 초호화 생일파티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마술쇼, 페이스 페인팅, 풍선 아트, 인형극을 진행하는 전문 엔터테이너를 고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장소에 따라 에어바운스나 트램펄린과 같은 놀이기구를 배치하는 경우도 있다. 진행 요원들에 의해 다양한 게임이 줄지어 이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부모들을 위해서는 호텔의 케이터링이나 유명 커피 체인점의 머신을 준비해 갓 내린 따끈한 에스프레소를 쉴 새 없이 대접하기도 한다. 장식들은 또 얼마나 다채로운지.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 콘셉트로 화려하게 꾸민 실내 공간을 비롯하여 아이들이 쓰는 식기나 마시는 물의 라벨까지도 맞춤으로 제공한다. 거대한 생일파티 비즈니스의 현장이다.

놀이터 있는 키즈카페가 보편적
간식은 피자·감자튀김을 선호해
대행업체 진출로 다양화·고급화
들고 가는 선물 가격 5만~10만원
매달 오는 파티 초대 처음엔 부담
그들의 문화 익힌다 생각하니 재미
공부 관련 정보 교류 통로로 유용
쌓인 육아 스트레스 녹여주기도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들고 가는 선물도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UAE는 장난감과 교구를 모두 수입에 의존하는 탓에 가격대가 한국보다 높은 편이다. 같은 바비 인형이라도 소비자가가 최소 10% 이상 차이가 나는 걸 발견할 수 있다. UAE에서 자녀가 있는 가정은 소비력이 높은 자국민의 비율이 높고 그들은 믿을 수 있는 브랜드의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기에 이곳의 완구 시장은 날로 고급화되어가고 있다. 아이와 함께 장난감 매장에 들러 친구에게 줄 선물을 고르다 보면 어느새 5만원을 훌쩍 넘어 10만원 가까이까지 가고 있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쌍둥이 자녀를 키우다 보니 선물도 곱하기 2가 되어 이제는 우리집 경조사비의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항목이 바로 이 생일선물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이러한 유행을 바라보는 부모들의 생각은 어떨까? 어떤 이들은 “하루 치르는 데 몇백만 원을 호가하는 생일파티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얻는가? 이 행사의 교육적 목적은 무엇인가?”하고 회의적인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파티문화가 발달한 지역에 뿌리를 둔 부모들은 “일 년에 한 번뿐인 아이의 생일을 정성스레 차려주는 것은 부모의 당연한 의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이러한 이벤트를 통해 사회적 지위를 대외적으로 나타내며 친목을 다지는 것이 UAE의 오랜 풍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보니 어느 한쪽으로 의견이 기울어지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조금 다른 시선으로 살펴보면 이러한 트렌드는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되어줄 수도 있다. 아이의 생일파티를 늘 직접 기획하고 해외 사이트를 샅샅이 뒤져 마음에 드는 소품을 찾아다니던 나의 열정 많은 아랍 친구는 결국 얼마 전에 생일파티 대행업체를 차렸다.

파티를 진행하는 전문 엔터테이너도 고용한다.

아부다비는 정원이 있는 빌라나 타운하우스 거주 비율이 높기에 집에서 치르는 파티에 도움을 주는 파티 플래너의 수요가 많으며 소비력이 높은 사람들이 갈수록 맞춤화된 서비스와 특별한 경험을 갈구하므로 이에 대한 ‘니즈’가 높아지고 있다. 또한 UAE 사람들은 집단 안에서의 교류를 중시하고 이슬람 관습에 따라 축제를 뜻하는 ‘이드’와 같은 공휴일에 모두가 모여 시간을 보내고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이 전해 내려오고 있어 이러한 그들의 전통과 맞물려 파티문화가 갈수록 고급화, 고도화되어가고 있다.

어느 날, 등·하굣길에 매일 눈인사를 나누던 아랍계 엄마가 말을 걸어왔다.

“우리집에서 연말 파티를 하려고 하는데 너희 가족을 초대하고 싶어.”

당시의 나는 이곳 생활에 허우적거리며 적응해가던 참이라 그의 제안이 무척이나 고마우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아부다비에서의 파티는 처음이라 혹시 필요한 것을 미리 알려줄 수 있겠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작은 파티이니 편하게 놀러오라”라고만 답했다. 그 말에 용기를 얻은 나는 빈손으로 가긴 조금 멋쩍을 것 같아 작은 장난감을 선물로 챙겨 들고 갔다. 그리고 그 ‘편안한 자리’라는 것이 내가 생각한 것과는 꽤나 달랐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격한 환영과 함께 이끌려 들어간 집의 정원에는 정성스러운 출장 뷔페와 칵테일바가 차려져 있었고, 칵테일바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 무슬림을 위한 화려한 목테일(Mocktail 비알코올 칵테일)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저쪽에서 게임하며 놀 테니 우리는 여기서 편하게 이야기 나누자”라는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아이들을 위한 놀이 전문 강사가 댄스 레슨, 줄다리기, 이어달리기 등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 호화로움에 주눅이 들었던 것도 잠시, 점차 분위기에 휩쓸려 ‘엄마’라는 이름표를 살짝 내려놓고 오로지 ‘나’라는 사람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아부다비의 삶에 막 적응을 시작하던 시기에는 아이 손에 들려오던 생일파티 초대장이 그렇게나 무서웠었다.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선물은 또 뭘 들고 가야 할지 고민의 연속이었지만 막상 파티에 가보니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아이 걱정, 공부 걱정하는 엄마들의 마음은 한국이나 여기나 매한가지이니 스스럼없이 마음을 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자연스럽게 이 문화를 받아들이고 재미를 찾아가게 됐다.

파티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연결 고리가 되어주기도 하고 요긴한 정보를 듣는 통로가 되어주기도 한다. 또한 그간 쌓인 육아 스트레스를 사르르 녹여주는 즐거움이 되어주기도 하니 우리에게 회식문화가 있듯이 이곳에는 파티문화가 자리 잡게 된 것이리라.

▲조혜임

국내외 기업에서 커뮤니케이터로 일했다. 현재는 남편, 쌍둥이 딸과 아랍에미리트연합에 거주하며 현지의 일상을 글과 그림에 담아 소셜 플랫폼에 연재하고 있다.

조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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