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난민 ‘책임 분담’ 잠정 합의···‘나눠받거나 돈 내거나’
유럽연합(EU)이 회원국 간 갈등 요인이었던 난민 수용 문제를 해결할 합의안에 도달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EU는 8일(현지시간) 룩셈부르크에서 내무장관 회의를 열어 난민 지위를 신청하는 이민자에 대한 27개 회원국의 의무를 담은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우선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와 그리스 등에 도착한 난민 신청자를 회원국들이 분담해 수용하고, 수용을 거부할 경우 1인당 2만유로(약 2800만원)를 EU 대책기금에 보태기로 했다. 안전한 지역으로 간주되는 국가를 떠나온 부적격 난민 신청자를 본국에 돌려보내기 위한 신속한 절차도 합의에 포함됐다.
반이민 성향의 극우 정부가 집권한 헝가리, 폴란드는 이번 합의에 반대했으며 불가리아, 몰타, 리투아니아, 슬로바키아는 기권했다.
합의안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EU 인구의 65%를 대표하는 회원국 승인이 필요하다. EU는 내년 6월 선거 전까지 새 정책의 법제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EU는 그동안 이민자가 처음으로 도착한 회원국에서 난민 지위를 얻기 위한 망명 신청을 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은 2015년부터 한계에 부딪혔다. 시리아 내전으로 약 100만명에 달하는 난민이 지중해를 건너 그리스와 이탈리아로 몰리면서, EU의 국경을 형성하는 일부 회원국에게 난민 수용 부담이 쏠린 것이다. 수용 능력을 넘어설 정도가 되자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EU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난민 수용 문제는 EU의 분열 요인으로 꼽힐 정도로 회원국 간 큰 입장차를 보여, 하나의 합의안을 도출하기까지 여러 진통을 겪었다. EU 회원국들은 어느 국가가 난민을 책임져야 하는지, 난민이 오지 않은 국가도 소위 ‘고통 분담’을 해야하는지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였다. 2020년 난민 할당제가 제안되기도 했지만 이민자를 의무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건 주권침해라는 폴란드와 헝가리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날 합의안 역시 회원국 간 다양한 입장을 고려하면 추후 깨질 가능성이 있다고 AP는 전했다. 합의 과정에서 체코는 이미 우크라이나 난민을 다수 수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연대 책임에서 제외해달라고 요청했다. 반대표를 던진 폴란드는 난민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2만유로를 내도록 한 것을 두고 ‘벌금’이라 표현했다.
그럼에도 이번 합의는 EU가 오래도록 고민해 온 문제에 공통의 해법을 마련했다는 의의가 있다. EU 순회의장국을 맡은 스웨덴은 할당, 재정부담, 부적격자에 대한 신속한 본국송환을 제시하며 합의를 끌어냈다. 윌바 요한손 EU 내무담당 집행위원은 “신뢰 구축이란 측면에서 거대한 의미가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낸시 패저 독일 내무장관 또한 “회원국 모두에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역사적 결정”이라고 밝혔다. 마테오 피안테도시 이탈리아 내무장관은 “오늘은 무언가가 시작된 날이다. 우리는 도착한 것이 아니라 출발했다”고 언급했다.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도 “중요한 진전”이라고 평했다.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튀니지 등에서 온 유럽행 난민은 증가 추세에 있다. 지난해 유럽에 가려고 바다를 건너다 사망한 이들은 2000명 이상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여기에 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우크라이나인 약 1300만명이 EU 회원국으로 피난하며 난민 문제를 더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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