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라미란·이도현뿐만 아니라 조우리 마을 사람들의 승리다('나쁜 엄마')

최영균 칼럼니스트 2023. 6. 9.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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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엄마’, 잔혹하고 코믹한 이 드라마 성공의 주역은 ‘조우리’

[엔터미디어=최영균의 듣보잡('듣'고 '보'고 '잡'담하기)] JTBC 수목드라마 <나쁜 엄마>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나쁜 엄마>는 최고 시청률 10%(이하 닐슨코리아)를 돌파하며 토일 드라마 <닥터 차정숙>과 함께 JTBC 드라마 호황의 쌍끌이 주역으로, 지난 9일 최종 14화를 마쳤다. 이도현이 방영 직전 <더 글로리>로 주목받기는 했지만 연기파 배우 라미란과 떠오르는 신성 이도현 두 배우가 일반적인 드라마 흥행 보증 주인공 조합에는 부족하다는 우려의 시선을 넘어 멋지게 역전타를 날렸다.

<나쁜 엄마>는 남편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결혼 직후 세상을 뜬 후 라미란이 아들 이도현을 보장된 미래를 위해 독하게 키운다는 이야기다. 제목을 기준으로 설명하면 그렇지만 사실 드라마는 그 아들이 검사가 돼서 아버지 죽음의 실체를 찾고 가해자들에 대한 단죄에 나서는 스토리로 봐야 더 정확하다.

엄마가 '나쁘게' 아들을 대하는 상황은 드라마 초반뿐 오히려 드라마 전체로 보면 제목이 '박복한 엄마'가 돼야 맞을 듯하다. 부모와 동생을 교통사고로 잃고 화가 꿈은 포기하고, 성장해 결혼하니 남편은 아이 임신 상태에서 죽고, 잘 키운 자식은 사고로 수발들어야 하는 정신적 어린 애가 돼버리고, 본인은 위암 말기라는 온갖 불행의 집약체이니 말이다.

<나쁜 엄마>에는 다양한 드라마적 장치들이 뒤섞여 있다. 불쌍한 엄마 부분에서는 신파도 등장하고 이도현과 안은진의 멜로도 깔려있다. 아들이 아버지의 원수를 추적하는 과정과 상대의 위협이 반복되는 상황은 시청자를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스릴러적 요소도 상당하다,

그러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상황과 맛깔난 개그 대사들의 코믹극이 드라마 전반에 등장하기도 한다. 이도현의 아버지나 오태수 내연녀의 죽음처럼 등장인물들이 처절하게 죽어 나가는 잔혹극의 요소도 다분하다.

<나쁜 엄마>는 최근 유행하는 드라마의 하이브리드 경향을 따랐다. 과거에는 따로 작품화되던 이질적 장르들을 뒤섞어 드라마가 줄 수 있는 재미를 풍부하게 하고 시청자들의 관심을 좀 더 강하게 자극하는 방식이다.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장르들을 뒤섞기는 했지만 그 요소들 모두에 고르게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쁜 엄마>의 스릴러적 설정들의 경우 사건과 원인이 치밀하게 설계되고 단서들이 정교하게 배치된 작품이라고 하기는 부족하다.

주인공이 최종 승리하는 과정에서 개별적인 위기들을 극복하는 단락들은 개연성이 잘 갖춰진 복선이 배치돼 있다고 보기 어렵다. 오태수의 내연녀가 끌어안고 물에 뛰어든 아기가 사실은 살아 있었던 장면처럼 '그때 사실 이렇게 된 거야'라는 플래시백 설명으로 적당히 해결하고 지나간다.

아버지 죽음의 가해자들인 검사 출신 정치인 오태수(정웅인)과 악덕기업가 송우벽(최무성)을 단죄하는 대단원의 마무리 법정 장면도 그렇다. 이 둘을 재판대 앞으로 끌어들이는 과정과, 최강호(이도현)가 검사로 승리하는 법정 공방의 흐름은 탄탄하고 극적이기보다는 거칠고 이해하기에 혼잡하다.

사실 <나쁜 엄마>의 복수극은 전체 스토리를 14부를 끌고 나가는데 필요한 지지대 역할을 하고 있고 더 중요한 승부수는 따로 있다. 복수극은 도울 뿐 <나쁜 엄마>를 사랑받게 만든 원동력은 드라마 곳곳에서 반짝였던 코미디들이다.

<나쁜 엄마>는 배세영 작가의 말맛과 코믹한 설정이 멱살 잡고 끌고 간 드라마다. 배세영 작가는 탁월한 대사빨과 개그 설정으로 영화 <극한직업>과 <완벽한 타인> 등을 국민 코미디 영화로 만든 주역이다.

작가의 말맛과 희극 설정은 배우들이 살려주지 못하면 그저 대본 위의 문자일 뿐이다. <나쁜 엄마>에서 코믹한 상황들은 모두 주인공의 고향인 시골 마을 조우리에서 일어난다. 극을 이끌고 간 라미란, 이도현, 안은진을 비롯해 조우리 마을 주민들 모두가 배 작가의 대본을 최상의 코미디로 풀어낸 일등공신들이다.

아역인 기소유와 박다온, 이도현 친구 삼식 역의 유인수는 익숙한 코미디 배우가 아니지만 이보다 훌륭할 수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완벽한 코믹 연기를 보여줬다. 마을 주민인 김원해, 강말금, 서이숙, 장원영, 이상훈, 백현진 등도 자연스럽고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로 드라마에 웃음이 넘쳐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송우벽 부하였다가 마을 주민으로 위장 잠입해 결국 조우리 사람으로 동화된 역할을 맡은 최순진과 박천도 빛났다. 이 둘은 송우벽의 부하 역할을 할 때는 잔혹극의 진지한 일부로, 조우리에서 활동할 때는 이 뛰어난 코미디극의 희극인으로 서로 이질적인 상황을 오가며 각자의 본분을 훌륭하게 해냈다.

<나쁜 엄마>의 종영은 조우리 마을 사람들과 이별하는 아쉬움을 갖게 할 정도다. <나쁜 엄마>의 성공은 조우리 마을 사람들의 승리다.

최영균 칼럼니스트 busylumpen@gmai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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