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생장하는 식물이 건네는 위로···‘식물적 낙관’[토요일의 문장]

이영경 기자 2023. 6. 9.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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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 이미지. 출처 언스플래시
“식물을 기를수록 알게 되는 것은, 성장이란 생명을 지닌 존재들이 각자 떠나는 제멋대로의 (때론 달갑지 않은) 모험이라는 사실이다. … 우리가 떠올리는 가드닝의 아름다움은 기실 상상에 가깝고 오히려 성장의 개념을 왜곡하는 측면이 있다. 생명을 가진 것들은 그렇게 누군가의 주재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 김금희 <식물적 낙관>(문학동네) 중에서

김금희는 소설가이기도 하지만 ‘가드너’이기도 하다. 산문집 <식물적 낙관>에선 발코니 정원에서 식물들을 키우며 삶에 대한 깨달음과 성찰을 길어올린다. 책은 식물이 생장하는 흐름인 계절의 변화를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저자는 발코니에서 식물들에게 물을 주고, 병충해로 아픈 식물을 돌보며 성장과 고통, 돌봄과 사랑의 의미를 깨달아간다. 여름의 왕성한 성장기, 가을바람과 함께 찾아오는 상실의 아픔, 성장을 멈추고 힘을 비축하는 겨울, 봄이 되어 연둣빛 새순을 터뜨리는 식물들의 이야기 속에 반려견과 반려식물을 떠나보낸 후 무너진 마음을 다독여 회복하는 과정도 담겼다.

“식물은 자기 상태에 대한 미움이나 비난이 없다. 그리고 마음은 본래 그런 식물의 형태이지 지금 나를 옥죄어오는 이 나쁜 형태가 아니다” “식물에게서 매번 고통을 상상한다면 식물을 기르는 방식은 매우 왜곡될 것이다. 가드닝을 하며 식물과 나는 생존의 드라마를 함께 겪지만 그것은 인간인 내가 구성한 것일 뿐 거기서 발생하는 상념들은 식물 자체와는 무관하다. 내가 배워야 하는 것이 바로 그 무관함이라는 생각을 한다”는 문장에서 김금희가 식물을 통해 어떤 위로를 얻었는지 알아챌 수 있다. 식물은 환경을 선택할 수 없다. “환경에 적응하는 것, 성장할 수 있다면 환희에 차 뿌리를 박차고 오르는 것, 자기 결실에 관한 희비나 낙담이 없는 것”이 바로 식물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낙관적 태도라고 말한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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