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지 양식 제각각...”논문 양식 교체만 연간 3000억원”

이병철 기자 2023. 6. 9.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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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 논문 수정에 천문학적 비용 드는 관행 비판
학술지마다 다른 양식 요구… “공통 양식 마련해 시간·비용 줄여야”
과학자들이 학술지 출판을 위해 논문 수정에 연간 3000억원 이상의 기회비용을 사용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픽사베이

과학자들이 서로 다른 논문 형식을 요구하는 학술지 출판 시스템 때문에 매년 천문학적인 기회비용을 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논문 한 편을 출판하기 위해 여러 학술지에 차례로 보내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형식을 바꾸는 데 과도한 시간과 비용이 들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계에선 이런 불필요한 자원 낭비가 연구의 지속성을 해치는 만큼 기존의 학술 논문 출판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네이처는 지난 8일(현지 시각) 2021년 한해 동안 전 세계 과학자들이 의학 분야 학술지에 논문을 출판하는 과정에서 논문 형식을 학술지에 맞게 바꾸는 데 들인 기회비용만 2억3000만달러(약 3000억원)에 달했다고 분석했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다른 과학자와 공유하기 위해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한다. 글로벌 정보 분석기업인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에서 제공하는 학술지 인용 색인 ‘웹오브사이언스(WOS)’에 등재된 학술지는 1만2000여종으로, 전 세계적으로는 수만종이 넘는 다양한 학술지가 있다. 과학자들은 연구 분야와 수준에 따라 적절한 학술지를 찾아 논문을 보내고 학술지에서 승인을 받으면 출판되는 방식이다.

문제는 학술지의 종류가 다양한 만큼 요구하는 논문 형식도 제각기 다르다는 점이다. 같은 연구 결과라도 학술지에 보낼 때마다 형식을 바꾸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가령 연구 결과를 처음 보낸 학술지에서 게재를 거부하면 다른 학술지에 다시 보내야 하는데, 이때 학술지의 형식이 달라 평균 4시간이 넘는 시간이 들어간다고 한다.

티보르 바르가 덴마크 코펜하겐대 공공보건학과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지난달 10일 국제 학술지 ‘BMC 의학’에 의학 분야 학술지 302종의 논문 형식을 검토해 과학자들이 논문 수정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계산한 결과를 발표했다.

분석 결과 논문 형식을 바꾸는 데 약 3000억원의 기회비용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앞으로 10년 동안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2030년까지 약 25억달러(약 3조2370억원)의 기회비용이 추가로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의학 분야에 한해서 계산한 결과로 전체 과학 분야로 확대하면 기회비용은 더 커질 전망이다.

바르가 교수는 “과학자들이 논문을 수정하는데 놀라울 정도로 많은 기회비용을 지불한다는 것은 과학의 발전 측면에서 큰 손실”이라며 “국제적인 합의를 통해 공통된 양식을 만들어 이런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과학계에서도 논문 형식 수정으로 인한 기회비용을 줄일 필요에 있다는 주장에 동의했다. 데이비드 쉬프만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교수는 “지금까지 학술지가 요구하는 형식에 대해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다”며 “우리는 지금까지 비생산적인 일에 많은 시간을 써 왔다”고 말했다.

미셸 스타 미국 인디애나대 교수는 “논문 형식을 바꾸는 작업을 위해 팀을 꾸리는 과학자들도 있을 정도로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라며 “팀을 꾸리기 어려운 젊은 과학자에게는 매우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통일된 양식으로 학술지에 논문을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바르가 교수는 의학 분야 학술지의 편집인 단체인 ‘국제의학편집인위원회(ICMJE)’에 공통 양식을 마련해달라는 내용의 온라인 청원을 진행하고 있다. 온라인 청원에는 현재까지 122명의 과학자가 참여했다.

바르가 교수는 “과학계는 지속가능성이 크게 떨어지는 논문 출판 시스템을 갖고 있다”며 “이런 시스템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점점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학술지들은 논문 형식에 제한을 둘 뿐이지 실제 심사 과정에는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크리스틴 레인 내과학회보(Annals of Internal Medicine) 편집장은 “학술지의 성격과 독자들이 다른 만큼 이에 맞는 논문 형식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다만 양식을 따르지 않더라도 검토 결과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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