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거시 심리학, 마케팅!

정양범 매경비즈 기자(jung.oungbum@mkinternet.com) 2023. 6. 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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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호불호, 생각, 인식, 인지, 태도, 걱정, 상상, 논리, 추론, 욕망, 기억, 공포, 배려, 동정 그리고 사랑.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단어는 ‘마음’이다. 마음은 뇌의 활동으로 나타나는 지능과 의식의 모든 면을 포괄적으로 지칭한다. 뇌의 활동 중 하나로 만물과 세상 이치의 실상(實相)을 파악하고 본성(本性)을 알고 싶어하는 지적 욕망은 예로부터 종교, 철학 그리고 과학을 발전시킨 원동력이다. ‘상(相)’이 시시각각 변화하며 겉으로 드러나는 만물의 모습과 그에 대한 관념이라면, ‘성(性)’은 그것의 본질이며 불변의 진리이다. 똑같은 장면을 본 두 사람의 기억이 다르듯이, 사람마다 각각 다른 상(相)을 머리 속에 넣고 산다. 그러나 상(相)은 성(性)을 찾는데 방해가 되고 장애로 작용한다. 상을 없애고 성을 깨닫는 것이 선(禪)의 최종 목표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 말한 귀납법과 경험주의 철학의 창시자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도 머리속의 ‘상’을 제거하고 ‘성’을 찾는 것이 진리와 과학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다만 그는 상을 ‘우상(偶像; Idol)’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다음 4가지로 분류했다. 종족(Tribe)의 우상, 동굴(Cave)의 우상, 극장(Theater)의 우상 그리고 시장(Market)의 우상이 그것이다. 종족의 우상이란 자신이 속한 종족의 입장에서 가진 허상과 관념이다. 예를 들어 “나비가 춤을 춘다”는 표현은 인간이라는 종족이 본 허상 즉 우상이고, 실제 나비의 입장에서는 ‘고달픈 삶의 모습’일 것이다. 동굴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입구를 통해 내다본 바깥 세상이 보이는 것의 전부이니, 우물 안 개구리처럼 좁은 시야로 보는 관념과 편견을 가질 것이다. 동굴의 우상이다. 극장의 배우들은 미리 써준 대본을 그대로 말하 듯이, 기존의 학문, 이론 또는 패러다임을 무조건 답습하려는 관념을 극장의 우상이라 했다.

시장은 근본적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그러므로 시장은 왜곡, 과장 그리고 헛소문의 진원지이고 그로부터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시장에서 생긴 인간의 언어는 본성(本性)과는 다른 관념과 우상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시장의 우상이다. 상승시장을 뜻하는 불 마켓(Bull Market), 반대로 하락시장 베어 마켓(Bear Market), 돈 버는 블루 오션(Blue Ocean), 돈 안되는 레드 오션(Red Ocean) 등 오늘날 시장에서 널리 관념적으로 사용되는 언어는 현상과 본질 간의 불일치를 야기하여 정확한 판단을 어렵게 만든다. 증권시장, 가상화폐 시장 그리고 SNS 상에서 떠도는 과장, 헛소문, 가짜뉴스에 휘말려 피해를 보는 사례는 ‘시장의 우상’에 빠져 잘못 판단한 결과이다. 자신의 부분적이고 일천한 경험만 가지고 판단하지 말고, 네 가지 우상에서 벗어나야 미망에 안 빠지고 올바른 사고로 진리를 볼 수 있게 된다는 점을 베이컨이 강조한 것이다. 정치세력의 반복적인 언어 선동에 현혹되는 것도 시장의 우상이 노리는 효과이니, 이를 간파하는 ‘우상 타파’는 개인의 지적 역량이다.

‘시장의 우상’이 말하는 시장은 추상적인 것이다. ‘추상적 시장’과는 달리, 물물교환과 가격이 형성되는 ‘구체적 시장’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정일치(祭政一致) 시대에는 하늘과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 바로 도읍지였고, 제단 주변은 시장이었다. 거기에서 제사에 필요한 물품이 교환되고 가격이 형성되었으니 이를 제전시(祭典市)라 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신시(神市)도 제전시의 하나로 해석된다. 하느님의 아들이며 단군의 아버지인 환웅(桓雄)은 “신시에서 곡식, 생명, 질병, 형벌 등 인간 세상의 일을 주관하며 다스렸다”는 기록으로 보아 신시는 곧 수도이며 시장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Polis)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폴리스의 중앙은 신전과 관공서가 있는 아크로폴리스(Acropolis)이고, 그 옆에는 아고라(Agora)가 있었다. 아고라는 사람이 모이는 광장이기도 하지만 ‘시장’이라는 의미의 ‘아고라조(Agorazo)’에서 유래하였기 때문이다.

시장은 이렇게 구체적, 물리적 공간의 의미로 제전시에서 시작하였지만, 가격결정과 정부와의 관계 또는 시장의 통제라는 기능적 관점에서 구체적 시장을 일반화하고 학문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추상적 시장’의 개념이 도입되었다. 최초로 추상적 시장을 설명한 이는 역시 경제학의 원조 아담 스미스(Adam Smith)이다. 그는 “시장 기능은 거기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의 마음, 즉 이기심이 모인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s)’에 의해 조절되고 있으니, 정부는 시장 개입을 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자유방임을 주장하였다. 각자의 비인격적 ‘이기적 마음’이 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가격을 결정하는 시장 기능이라고 보았고, 그 점이 시장 경제학의 바탕이다. 이렇게 추상적 시장 개념의 도입으로 노동시장, 자본시장, 시장경제 체제, 통제경제 체제 등 추상적 용어를 바탕으로 한 경제학이 발전되었고, 기업과 정부는 자연히 ‘시장에서 진행되는 일과 시장을 움직이는 마음’에 관심을 가지고 조사와 연구를 시작하였다.

‘시장(Market)에서 진행되는(~ing) 일’이 ‘마케팅(Marketing)’이고, 시장을 움직이는 마음을 파악하는 것이 시장조사이다. 마케팅의 정의는 시간이 흐를 수록 확장되었다. 미국마케팅학회(American Marketing Association)는 “개인이나 조직의 목표를 만족시키는 교환을 성사시키기 위해 아이디어, 제품 그리고 서비스의 개념을 정립하고, 유통, 가격결정, 프로모션 등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하였다. 피터 드러커는 “마케팅이란 고객의 관점에서 본 사업 전체”라 말하며 짧지만 광범위하게 표현하였다. 그가 지적한 바와 같이 마케팅 활동의 최종 수렴점은 고객이다. 정확히 말해서는 고객의 마음이다. 제품을 생산하는 즉시 판매되던 시절의 전통적 마케팅은 주로 생산과 제품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할 시장을 조사(Market Research)하는 것은 마케팅의 시작이다. 아담 스미스 이후 피터 드러커까지 그들이 말한 시장의 요체에 비추어 설명한다면 이는 ‘시장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시장의 마음은 곧 고객의 마음이고, 마케팅은 그들의 마음, 즉 이기심과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강단에 선 교수 또는 기업의 60대 남자 임원이 청바지를 사고자 하는 마음은 무엇일까? 물 빨래 후 바로 입을 수 있는 청바지의 실용성과 훤칠한 몸매의 과시는 아닐 것이다. 직업상 상대하는 젊은 세대에게 ‘꼰대’나 ‘노땅’이 아니라는 이미지를 주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기저에 깔려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을 위해 몸에 꽉 끼는 청바지나 ‘찢청’을 개발하는 것은 ‘STP 전략’을 잘못 세우는 마케팅의 오류일 것이다.

STP는 시장을 세분화(Segmentation)하고, 가장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어떤 시장을 목표로 선정(Targeting)한 다음, 고객의 마음 속에 타사 제품과 차별화된 이미지를 심어주는 제품 포지셔닝(Positioning)을 하는 것이다. 타겟 시장 선정 후, 제롬 맥카시(Jerome McCarthy) 하버드 대학 교수가 1960년 대에 명명한 ‘4 P’ 를 하는 것이 전통적 마케팅이다. ‘4 P’는 제품개발(Product), 판촉(Promotion), 유통(Place) 그리고 가격결정(Price)의 마케팅 활동을 말하며, 거의 모든 기업들이 신제품 출시 전에 실시한다. 지금의 마케팅에서는 ‘4 P’로는 부족하여 사람(People), 절차(Process) 그리고 물적증거(Physical Evidence)라는 ‘3 P’를 추가하여 ‘7 P’라고 한다. 그 중 People은 ‘고객의 마음’이니 상당히 수긍이 가는 마케팅 이론이다.

이처럼 마케팅은 시장의 마음을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 따라서 마케팅은 여러가지 심리학적 이론과 효과를 총동원하고 있어 마케팅 자체가 ‘거시 심리학’이고 따라서 ‘소비자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중요성을 더해 간다. 5G, 메타버스 그리고 SNS의 발달로 구현된 ‘초(超) 연결 사회’에서 마케팅에는 그 어느 때 보다도 고도의 심리적 전술이 필요하다. 심리 분석을 활용하는 고객중심적 마케팅의 최신 트렌드는 관계마케팅(CRM: Customer Relation Marketing), DB(Data Base) 마케팅, 인터넷 마케팅 등이 있는데, 이들 모두의 공통적 목표는 바이러스처럼 빠르고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입소문 즉 ‘바이럴(Viral)의 형성’에 있다.

바이럴은 자칫 소비자를 ‘시장의 우상’에 빠뜨릴 위험이 있다. 소비자의 욕망은 끝이 없다. 부족한 물건이 더 이상 없도록 필요는 다 충족되었다 하더라도 마음 끌리는 마케팅에 넘어가 다시 물건을 살 수 있다. 에스키모에게 냉장고와 에어컨을 파는 판매력이 브랜드와 마케팅에서 나온다. 현명한 소비자는 바이럴이 지배하는 ‘시장의 우상’에서 벗어나 욕망을 스스로 통제하며 소비를 조절하겠지만, 보통의 소비자는 브랜드와 마케팅의 힘에 굴복하여 제품의 효용이 아니라 그가 주는 ‘차이’에 취하여 불합리한 소비에 빠질 수도 있다. 기업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법적, 윤리적 그리고 환경 보호적 책임을 다하는 ‘사회 지향적 마케팅’을 추구하며, 소비자가 ‘시장의 우상’에 빠지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마음을 잡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해야 한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현) 소프트랜더스 고문/ 서울대학교 산학협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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