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가수들이 맨바닥에서 노래할 때('댄스가수 유랑단')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3. 6. 9.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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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오늘 다 바닥이었네." 엄정화가 그렇게 말하자 이효리가 맞장구를 쳤다.

"오늘 바닥 친 날이야. 아니 언제까지 무대 위에서 살 거야? 바닥에 내려오자 이제." 그러자 바닥이라서 공연이 10배는 힘들었다던 김완선이 밝게 웃는다.

흥미로운 건, 부담이 더 되고 그래서 힘겹게 느껴지는 이 '맨바닥' 공연을 하고 난 레전드 가수들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맨바닥의 눈높이는 <댄스가수 유랑단> 이 그저 지역을 다니며 공연을 하는 그런 프로그램과는 사뭇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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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가수 유랑단’, 길바닥 공연이라서 레전드가 더 빛난다는 건

[엔터미디어=정덕현] "우리 오늘 다 바닥이었네." 엄정화가 그렇게 말하자 이효리가 맞장구를 쳤다. "오늘 바닥 친 날이야. 아니 언제까지 무대 위에서 살 거야? 바닥에 내려오자 이제." 그러자 바닥이라서 공연이 10배는 힘들었다던 김완선이 밝게 웃는다. 맏언니로서 그 의미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일 게다. 이젠 보다 대중들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는 그런 말일 테니.

tvN 예능 <댄스가수 유랑단>이 진해에서 했던 건 소규모였지만 그래도 어엿한 공연의 풍경이 느껴졌던 것이었다. 리허설로 해군사관학교 강당에서 생도들을 위해 펼친 공연은 마치 팬 미팅 같은 느낌을 줬고, 진해 군항제에서 펼쳐진 본 공연은 미식축구 중간에 하는 특별 공연 같은 느낌을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번째 유랑지(?)가 된 여수에서 이들이 보여준 공연은 진해와는 사뭇 달랐다. 첫 번째 사연을 받고 달려간 곳은 태권도 대회가 펼쳐지는 체육관. 보아와 엄정화가 차례로 올라 'No.1'과 '페스티벌'을 불렀다. 이들을 알 턱이 없는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신이 난 공연이었다. 특별한 조명도 없고 주목시키는 무대도 없는 체육관 바닥이지만 보아와 엄정화는 베테랑답게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리는 공연을 보여줬다.

하지만 두 번째 공연을 하게 된 소방서는 천하의 이효리마저도 어색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말 그대로의 맨바닥이었다. 소방서 주차장에서 스무 명 남짓의 대원들을 앞에 두고 펼쳐지는 무대. 이효리도 또 소방관들도 낯선 풍경일 수밖에 없었지만, 금세 분위기는 흥겨워졌고, 한 대원이 노래를 따라하자 이효리가 그를 무대(?)로 불러내 함께 춤을 추고 어우러지는 광경이 연출됐다. 소방서 주차장이라도 이효리는 이효리라는 걸 여실히 보여준 무대였다.

세 번째 공연은 포차 거리에 마련된 버스킹 장소에서였다. 역시 특별한 무대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화사는 관객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여줬고, 김완선은 흥겨운 노래와 화려한 댄스에 앵콜 요청까지 받아 한 곡을 더 불러 포차 거리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흥미로운 건, 부담이 더 되고 그래서 힘겹게 느껴지는 이 '맨바닥' 공연을 하고 난 레전드 가수들의 모습이었다. 이들은 모두가 가까이서 관객들과 함께 호흡을 하는 것을 통해 자신들이 "기를 받았다"고 말했다. 지금껏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맨바닥 공연의 힘겨움과 어색함이 어떻게 이들에게는 기억에 남는 시간이 될 수 있었을까.

늘 무대 위에 올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레전드 가수들이다. 물론 관객들과 소통을 하며 공연을 하지만, 거기에도 무대 위와 아래라는 나뉘어진 공간이 분명 존재했을 터다. 하지만 맨바닥은 가수가 관객들의 눈높이에서 그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이다. 같은 위치에서 눈을 마주치고 함께 춤을 추고 떼창을 부르는 그 에너지는 남다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이러한 맨바닥의 눈높이는 <댄스가수 유랑단>이 그저 지역을 다니며 공연을 하는 그런 프로그램과는 사뭇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간간히 규모 있는 공연을 할 수도 있겠지만, 사연을 통해 지역을 직접 찾아가 공연을 한다는 그 방향성 자체가 대중 속으로 보다 깊숙이 들어가려는 가수들의 모습을 담기 마련이다.

여기에 '유랑'의 의미가 더해진 점도 <댄스가수 유랑단>의 차별점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레전드 가수들은 공연 바깥에서 자연스러운 일상의 즐거움과 고민들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간 스케줄과 인기로 인해 자유롭지 못했던 어떤 것들을 훌훌 털어내는 그런 느낌이랄까. 유랑이 가진 '자유로움'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역설적이지만 맨바닥이라서, 또 떠도는 공연이라서 더 빛나는 레전드 가수들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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