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英, '대서양 선언'으로 對中 견제 장벽 더 두텁게 세웠다
미국과 영국이 안보와 주요 광물 분야에서의 경제 협력을 한층 강화하기로 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후 다소 소원해졌던 양국 간 유대 관계가 중국과 러시아라는 공동의 적 앞에서 다시 힘을 받게 됐다는 평가다.
다만 양국은 4년 전 약속했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이번 합의가 단지 ‘미니 딜’(mini-deal)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산 전기차도 IRA 혜택 받도록”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한 후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대서양 선언’을 발표했다. 수낵 총리가 백악관을 찾은 건 취임 이후 처음이다.
국방과 핵물질, 전기차 배터리에 쓰이는 주요 광물 등 분야에서 양국 간 교류를 획기적으로 늘리겠다는 게 대서양 선언의 골자다. BBC방송은 이번 선언을 계기로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영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일부 완화될 것”이라고 봤다.
영국은 미국에 전기차 배터리 원료를 수출하고 있지만,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상태여서 IRA법에 따른 보조금이나 감세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양국 정상은 별도의 핵심 광물 협정을 둬 영국산 전기차도 IRA 수혜 대상에 오를 수 있도록 합의했다. 앞서 올해 초 일본이 미국과 체결한 것과 유사한 형태다. 새 협정에 따라 영국산 원료를 사용해 영국에서 만들어진 전기차는 미국에서 대당 3750달러(약 487만원)의 세금 공제를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협정은 미 의회와의 협의를 거쳐 개시될 예정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에 배터리를 포함한 친환경 기술을 제공하는 데 있어 영국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낵 총리는 “이번 선언은 영국 기업들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며 “우리가 현재에 직면하고 있는, 그리고 미래에 맞닥뜨릴 기회와 도전에 부합하는 결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의심할 여지 없이 두 나라 간 경제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고 강조했다.
양국은 더욱 활발한 정보 공유를 약속했다. 양국 기업이 상대방 국가 기관에 세금 등을 지불하지 않고 자유롭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이터 브리지’를 세운 것이다. 영국 정부는 이를 통해 약 5만5000개의 영국 기업들이 매년 9240만파운드(약 1502억원)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수낵 총리가 추진하고 있는 인공지능(AI) 규제 정상회의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 문제와 관련해 우리가 영국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나라는 없으며, 영국이 이 길을 선도하길 희망하고 있다”며 “영국과 보조를 맞추겠다”고 언급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영국을 국방물자생산법(DPA) 3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내 기업’(domestic source)으로 승인해줄 것을 자국 의회에 요청하기로 했다. 최첨단 군사 기술과 관련해 더욱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협력하기 위한 조치다. 또 5세대(G)‧6G 통신망, 양자 컴퓨팅, 반도체, 생물 공학 등도 협력 분야로 거론됐다.
대서양 선언은 주요 공급망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더욱 촘촘하게 차단하려는 서방국 간 경제 안보 연대의 일환으로 읽힌다. 수낵 총리는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나라들은 우리의 개방성을 이용해 지식재산권(IP)을 훔치고, 권위주의적 목적으로 기술을 사용하거나 중요 자원을 빼내려 한다”며 “그들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미국과 영국이 같은 곳에 서 있을 때 세계는 더욱 안전하고, 더 많이 번영할 수 있다”며 “(대서양 선언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대를 위한 새로운 협정”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이번 합의가 “엄청난 힘의 원천”이라면서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의 최전선에 머무르기 위해 우리의 파트너십을 계속해서 업그레이드할 것”이라고 거들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특히 정상회담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미국의 첨단 기술을 대량살상무기(WMD) 등에 사용하고 있다”고 직격했다. 그는 “특정 기술에 대한 수출 통제는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얘기했다”고 부연했다. 시 주석이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에 대해서도 “‘부채와 몰수’ 프로그램에 불과하다”고 맹비난했다.
그러나 협력 방식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데다 양국이 얼마만큼의 경제적 이익을 얻게 될지에 대한 추정치도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서양 선언은 ‘미니딜’(1단계 합의) 수준에 그쳤다는 비판도 나온다. 영국 언론들은 2019년 토리당(보수당) 정부가 2022년 말까지 약속했던 미국과의 FTA 체결에서 한층 멀어지게 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스카이뉴스는 “바이든 대통령은 영국과의 양자 무역협정에 대해 무관심한 상태”라며 “관련 협상은 2025년까지 동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이밖에 가디언은 “일부 영국 관료들에 의해 ‘시장 왜곡’이라고 비판받았던 바이든 행정부의 IRA 생태계에 영국이 편입된 셈”이라며 “정치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짚었다. 수낵 총리는 “보호무역주의에 대해선 여전히 반대한다”면서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뿐 아니라 대만에 대한 중국의 위협을 고려할 때 경제 안보와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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