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더 이상 위성 발사 신고 안 해!"…북한이 삐친 이유는

안정식 북한전문기자 2023. 6. 9.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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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적 목적' 안 먹히고 한미일에 정보만

북한이 위성을 발사할 때 앞으로 더 이상 국제 기구에 통보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국제해사기구(IMO)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결의문을 채택했기 때문입니다.

국제해사기구 회원국들은 지난달 31일(런던 현지 시간) 채택한 결의문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가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며, 미사일 발사 시 적절한 사전 통보를 하지 않아 선원들과 국제 해운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했다고 비판했습니다. 북한이 아무런 사전 통보 없이 각종 미사일들을 발사해온 데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입니다.

회원국들은 또 결의문에서 북한에게 사전 통보 규정을 지키라고 촉구했습니다. 세계항행경보제도는 미사일 발사, 위성 발사, 해상 훈련 등의 경우 소속된 구역의 조정국에 5일 전에 알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번 군사정찰위성 발사 시 일본 해상보안청에 사전 통보는 했지만, 5일 전이라는 규정은 지키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이에 반발하면서 지난 4일 국제문제평론가 김명철 명의로 조선중앙통신에 실은 글에서 '앞으로 위성 발사 시 더 이상 사전 통보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제해사기구가 우리나라의 위성 발사 관련 사전 통보에 반공화국 결의 채택으로 화답한 것만큼 우리는 이것을 우리의 사전 통보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기구의 공식 입장 표명으로 간주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국제해사기구는 우리가 진행하게 될 위성 발사의 기간과 운반체 낙하 지점에 대해 자체로 알아서 대책해야 할 것이며, 그로부터 초래되는 모든 후과(결과)에 대하여 전적으로 책임질 각오를 가져야 할 것이다."

- 조선중앙통신, 지난 4일
 

2009년부터 국제 기구에 사전 통보한 북한

북한이 위성을 탑재한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것은 1998년부터지만, 항공기와 선박의 안전을 위해 국제 기구에 발사 예정 기간 등을 통보하는 절차를 이행한 것은 2009년 때부터였습니다. 북한은 왜 국제 관례를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었을까요?
2009년 2월 24일 위성 발사 계획을 밝힌 북한의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보면 북한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주는 인류 공동의 재부이며 오늘날 우주의 평화적 이용은 세계적인 추세로 되고 있다. 공화국 정부의 우주 개발과 평화적 이용 정책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부터 자체의 힘과 기술로 인공지구위성을 쏘아 올리기 위한 연구개발 사업이 줄기차게 진행되어 왔다. (중략)... 국가우주개발 전망 계획에 따라 우리는 1단계로 가까운 몇 해 안에 나라의 경제 발전에 필수적인 통신, 자원 탐사, 기상 예보 등을 위한 실용위성들을 쏘아 올리고 그 운영을 정상화할 것을 예견하고 있다."

-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 대변인 담화, 2009년 2월 24일

북한의 주장은 위성 발사가 평화적 목적 하에 이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통신, 기상 예보 등의 실용적 목적을 위해 위성을 쏘아 올리고 있다는 것인데, 이렇게 평화적 목적의 활동이라는 것을 강조하려면 국제 관례에 따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항공기와 선박의 안전을 위해 미리 발사 일정과 로켓 추진체의 예상 낙하 지점 등을 국제 기구에 통보하면서, 다른 나라들도 하고 있는 위성 발사를 북한도 똑같이 국제 관례를 지켜가며 하고 있으니 시비 걸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의 이런 주장은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위성 탑재 장거리 로켓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은 3단 추진체에 위성을 달아 지구 궤도에 진입시키느냐, 탄두를 달아 대기권 재진입을 통해 목표물을 타격하느냐를 제외하고 사실상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유엔으로 대표되는 국제사회는 북한이 위성 탑재 장거리로켓 발사를 통해 실질적으로는 ICBM 기술을 획득하려 하는 속내를 간파했습니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은 그래서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어떤 종류의 발사'도 하지 못하도록 규제함으로써 북한의 위성 발사 행위 자체를 금지시켰습니다. 평화적 목적을 가장한 북한과 그에 속아 넘어가지 않으려는 유엔 사이에 치열한 수싸움이 진행된 것입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유엔의 '금지' 행위는 정당한가

여기서,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보겠습니다. 유엔이 북한의 위성 발사를 금지시킨 것은 알겠는데, 그러한 유엔의 행위가 과연 정당하냐는 것입니다.

위성 발사가 주권국가의 자주적 권리라는 북한의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들이 기술력만 확보된다면 각종 위성 발사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엔은 어떤 정당성을 가지고 북한에게만 위성 발사를 금지시키고 있는 것일까요?

사실 이것은 '정당성'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 정치의 '현실'에 관한 문제입니다. 국가가 법에 따라 강, 절도를 한 사람을 교도소에 수감하고 자유권을 제한하듯이, 국제사회도 유엔이라는 기구의 결정에 따라 각 나라의 권리를 제한하고 제재를 부과하는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유엔의 행위가 정당하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제재 결정에 있어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미, 영, 프, 중, 러)에게는 거부권이 인정되는데, 정당성만을 따지자면 이 5개국에 거부권을 주는 것도 정당하지 않습니다. 세계 각국은 평등한데 왜 5개국에게만 거부권을 줘야 합니까? 하지만, 그것이 지금의 국제사회를 구성하는 규칙이고 '힘의 정치'라는 국제 정치의 현실입니다. 좋든 싫든 지금의 국제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유엔이 만든 규칙 하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국제 관례 준수에 회의적으로 변한 북한

북한은 2009년부터 평화적 위성 발사를 주장하며 국제 관례를 따르는 모습을 보여왔지만, 위성 발사가 자주적 권리라는 북한의 주장은 국제사회에서 설득력을 얻지 못했습니다. 핵 개발을 추진하는 '불량 국가' 북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나라가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어차피 국제사회의 호의적 여론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제관례를 지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고민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전에 발사 일정과 추진체의 예상 낙하 지점을 통보하는 것이 한미일의 감시에 도움만 준다는 판단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번 군사정찰위성의 경우 북한이 발사한 지 1시간 반 만에 우리 군이 추진체의 낙하 지점에서 인양 작업을 시작했는데, 이 같은 신속한 대응도 북한이 사전 정보를 제공하는 데 대한 회의감을 높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안정식 북한전문기자 cs7922@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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