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지독한 고정관념…바퀴보다 먼저 발명된 여성혐오의 역사 [사회 탓이 어때서요]

2023. 6. 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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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사회가 변해야 개인도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민낯들' 등을 써낸 사회학자 오찬호가 4주에 한번 '사회 탓이 어때서요?'를 주제로 글을 씁니다.

중세 기독교 시대를 거쳐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여성은 자주 악마화되고, 때론 신격화되면서 평범한 인간성을 끊임없이 부정당한다.

역사가 증명하는 건 과거보다 혐오의 수위가 약간 낮아졌다는 것이지, 그게 차별 없는 세상이 도래했음을 뜻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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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홀런드 '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
편집자주
사회가 변해야 개인도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때로 어설픈 희망을 품기보다 ‘사회 탓’하며 세상을 바꾸기 위한 힘을 비축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민낯들' 등을 써낸 사회학자 오찬호가 4주에 한번 ‘사회 탓이 어때서요?’를 주제로 글을 씁니다.
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잭 홀런드 지음·김하늘 옮김·ㅁ(미음) 발행·374쪽·1만8,000원

독일과 프랑스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기에 차별에 예민하다고 종종 언급된다. 하지만 코로나 초기, 독일의 시사잡지 ‘슈피겔’은 ‘코로나바이러스, 메이드 인 차이나(CORONA-VIRUS, Made in China)’라는 표현을 표지에 큼직하게 담는다. 인위적인 느낌을 주는 메이드라는 단어도 부적절하지만, 유럽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는 오랫동안 중국제품이란 뜻만 내포하지 않았다. 엉성하고 수준이 낮다는 부정적인 설명을 동반했다. 차별적 인식이 담긴 유산에 바이러스를 조합했으니 언론이 혐오를 조장한 셈이다. 같은 시기 프랑스의 지역 일간지 ‘르 쿠리에 피카르’는 ‘황색 경계령’(Alerte Jaune)이라는 적나라한 표현을 당당히 사용한다. ‘중국인 때문에 우리가 죽게 생겼다!’는 황화론을 끄집어낸 것이었다.

한때 형성된 고정관념은 이토록 지독하다. 서양은 문명, 논리, 이성, 과학, 합리성 등의 키워드로 자신을 설정하고 그 반대편에서 동양을 설명했다. 이게 태평성대일 때는 ‘동양은 신비롭다’면서 언급되지만 일상이 뒤틀리면 바로 ‘역시 미개하네’로 변형된다. 이 버릇, 순식간에 사라지지 않는다. 평소에는 수면 아래에 있어도 짜증이 나면 수십, 수백 년 전 조상들의 습관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괜히 역사가 반복되는 게 아니다.

이 문법을 사람들은 잘 안다. 과거가 지금을 이해하는 단서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사회문제의 원인을 과거의 씨앗으로부터 찾는 것이 틀렸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성차별’은 예외다. 옛날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반론이 너무 많다. 가능할까?

19세기 미국 화가 T.H. 매티슨의 그림 '마녀 판정(Examination of a Witch)'은 여성(가운데)이 옷이 벗겨진 채 마녀의 표식이 있는지 조사받는 장면을 담았다. 위키피디아

‘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는 여성의 인간성이 부정된 역사를 기원전 8세기의 판도라 신화부터 추적하며 부제인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편견’이 무엇인지를 방대한 자료를 증거 삼아 단호히 규정한다. 중세 기독교 시대를 거쳐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여성은 자주 악마화되고, 때론 신격화되면서 평범한 인간성을 끊임없이 부정당한다.

주목해야 할 건 책에서 반복되는 “끈질기게 살아남았다”라는 표현이다. 그때 그랬대, 누가 이런 말을 했네를 단순한 지식으로 습득하자는 건 저자의 목적이 아니다.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남근 없는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을 결핍이라는 틀 안에서만 지나치게 해석했다는 건 이미 유명하다. 하지만 그게 빅토리아 시대에 부각된 정조의 여성상, 그전의 마녀사냥 논리,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했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여성론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면’ 일상의 내 태도를 성찰하게 된다. 역사의 실타래가 어찌 자신만 비껴가겠는가.

역사가 증명하는 건 과거보다 혐오의 수위가 약간 낮아졌다는 것이지, 그게 차별 없는 세상이 도래했음을 뜻하지 않는다. “바퀴가 발명되기 훨씬 전부터 남자는 여성 혐오를 발명했다. 그러나 바퀴가 화성에서 굴러다니는 오늘날에도 여성 혐오는 여전히 많은 사람의 삶을 망가뜨리고 있다.”(321쪽)

오찬호 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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