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에 유리해진 청년도약적금…은행들은 ‘호구’가 아니었다 [홍길용의 화식열전]
민간銀 일반상품보다 못한 이자율 제시
비용 부담 거부…국책 기업銀에 떠넘겨
정부도 인기 낮을수록 예산지출 줄일수
저축 여력 적은 저소득 청년 혜택 적어
소득 높을수록 비과세 혜택 크게 누릴수
금융은 자본주의의 핵심이다. 많이 가질 수록 유리하다. 적게 가진 자에게 유리하도록 하려면 누군가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비용 부담을 꺼린다면 포용적 금융은 불가능해진다. 금융을 정치로 접근할 때 부작용이 따르는 이유다. 정치에서 출발한 청년도약적금도 결국 부작용의 벽에 가로 막힌듯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근로·사업소득이 있는 19~34세 청년이 매달 70만원 한도 내에서 저축을 하면 정부가 월 10만~40만원을 보태 10년에 1억원을 만들 수 있는 청년도약적금을 공약했다. 하지만 정부 부담이 너무 크고 기간도 지나치게 길다는 지적에 내용을 수정한다.
우선 정부 기여금을 월 최대 2만4000원으로 낮추고 기간과 금액도 5년 5000만원으로 수정했다. 사실 10년에 1억원 보다 5년에 5000만원이 더 어렵다. 정부 지원을 줄였으니 결국 부담은 은행 몫이다. 게다가 올 초까지 오르던 금리가 최근 크게 하락해 은행들의 부담은 더욱 커지게 됐다.
하지만 은행은 호구가 아니었다. 8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기업·부산·광주·전북·경남·대구은행이 은행연합회에 청년도약적금 기본금리(3년 고정)를 밝혔다. 국책인 기업은행이 4.5%로 가장 높았고, 준국책인 농협은행(4.0%)이 뒤를 이었다. 민간은행들은 마치 짠 듯이 모두 3.5%였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4월 예금은행 평균 수신금리는 정기예금(5년 이상)이 3.26%, 정기적금(3~4년)이 4.25%다. 은행들이 판매하는 특판상품들 가운데에는 이 보다 높은 금리를 주는 상품도 수두룩하다. 명색이 대통령이 공약한 정책상품인데 은행들은 평균에도 못미치는 금리로 답한 셈이다.
물론 우대금리도 있지만 깐깐하다. 저소득자(총급여 2400만원 이하, 종합소득·사업소득 1600만원 이하)에 겨우 0.5%포인트 얹어준다. 그래 봐야 4%다. 은행별 우대금리가 최대 2%포인트다. 은행별 우대금리는 금융거래 실적이 많을 수록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저소득자와는 거리가 멀다.
정부가 공언한 ‘월 70만원으로 5년에 5000만원 마련’을 위해서는 최소 연 6% 금리가 필요하다. 저소득과 은행별 우대금리를 동시에 받기는 극히 어렵다. 은행별 금리를 볼 때 6%가 가능한 유일한 조합은 기업은행에서 은행 우대금리를 최대한으로 받는 방법 뿐이다. 저소득자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은행들이 이처럼 내놓고 청년도약적금을 홀대하는 이유는 뭘까? 팔수록 밑지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5년간 가입자 평균월납입액 50만원에 금리가 연 6%면 이자 총액은 481만원이다. 금리가 연 5%면 399만원이다. 정부 예상 가입자 300만명에게 82만원씩 더 주려면 2조4600억원이 필요하다.
원래 은행은 푼돈으로 목돈을 만드는 적금 보다 처음부터 목돈인 예금을 더 좋아한다. 대출로 벌 수 있는 돈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목돈을 맡기는 예금에 더 많은 이자를 주는 이유다. 가뜩이나 적금을 달갑지 않은데 심지어 기간이 5년이나 되는 정책상품이라면 은행 입장에서는 골칫거리다.
결국 은행들은 청년도약적금 금리를 적금상품 평균치 아래까지 낮춤으로써 단 한 푼도 손해 보지 않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심지어 청년도약적금을 담보로 한 대출금리도 수신금리에 1.0%~1.3%포인트 더한 수준으로 정했다. 일반 상품의 1.0~1.25%와 비슷한 수준이다. 정책금융상품이지만 긴급한 사정으로 돈이 필요할 때 계좌를 유지하는 비용이 꽤 높은 셈이다. 대출 가산금리가 1%포인트 이하인 곳은 기업은행(0.6%포인트)이 유일하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에 가입자가 몰릴 수 있는 구조다. 기업은행의 부담이 커져 재무건전성이 악화되면 정부가 국민 혈세로 자본을 보강해야 한다.
이쯤 되면 은행이 금융위에 내놓고 반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금융위는 왜 이를 막지 못했을까? 우선 최근 금리가 하락해 연 6%는 구조적으로 무리한 금리 수준이 됐다. 아무리 금융위가 힘이 있어도 민간기업인 은행에 조 단위 비용부담까지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정부 사정도 빠듯하다.
금융위는 청년도약적금 가입자를 300만명 정도로 예상하고 올해 6~12월 지원금 예산으로 3678억원을 책정했다. 월 525억원 꼴로 5년이면 3조1500억원다. 정부가 추정한 가입 적격자는 400~500만명에 달한다. 올해 세수 부족이 심각한데 예상보다 가입자가 크게 늘면 재정부담이 더 커진다.
청년도약적금에 가입할 수 있는 소득자격은 중위가구 평균소득 180%까지다. 2인 가구기준 월 622만원 이하다. 꽤 소득이 높은 가구까지 포함된다. 이자가 다소 낮더라도 이자소득 비과세 혜택은 매력적이다. 저소득층 보다는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청년들이 꽤 몰릴 듯 하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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