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문화 그대로인데… 원격근무하면 번아웃 없어질까[북리뷰]

박동미 기자 입력 2023. 6. 9. 09:10 수정 2023. 6. 9.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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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
앤 헬렌 피터슨·찰리 워절 지음│이승연 옮김│반비
코로나 시기에 맛본 재택근무
직원 자유 누리는듯 보이지만
사무실 임대료를 아껴주는 꼴
개인 삶의 질 향상 - 기업 이윤
윈·윈하는 ‘일의 미래’되려면
재택-출근 병행 ‘유연근무’로
성과주의서 벗어나기 위해선
사람 대하는 ‘일의 태도’ 중요
게티이미지뱅크

원격근무나 재택근무는 오래전 일찌감치 전망됐고, 이미 현실화된 ‘일의 미래’였다. 또한, 비용 절감과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노동 형태’ 중 하나로 여겨졌는데, 지난 3년간의 팬데믹이 이를 가시화했다는 분석이 많다. 또, 코로나19의 위협에서 충분히 벗어난 지금도 재택근무를 지속하는 기업도 있으며, 당시의 경험을 발판 삼아 유연근무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도 적지 않다.

밀레니얼 세대의 노동과 번아웃을 다룬 책 ‘요즘 애들’로 주목받았던 저자가 이번에는 동료 기자이자 파트너와 함께 쓴 책에서 왜 우리가 팬데믹 이전과 같은 ‘직장’으로 돌아가서는 안 되는지, 사무실의 한계를 벗어난 업무 방식이 어떻게 삶을 바꿀 수 있는지 설파한다. 이들은 ‘원격근무’가 지닌 가능성을 나열하며 적극적인 도입을 권하지만, 예찬론까지는 아니다. 그게 이 책의 가장 흥미롭고, 또 핵심이며 주의해서 읽어야 할 지점인데, ‘유연근무제’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더 연구하고 더 정교하게 고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은 재택근무가 ‘사무실’이 강요하는 출퇴근에 대한 ‘저항 행위’로서 의미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자본주의의 핵심에 자리한 위기를 바로잡겠다는 약속’이 될 수 없으며, 조직의 ‘유해한 역학 관계’는 원격근무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원격근무’가 지닌 태생적 한계에 주목하는데, 그것은 이 노동 형태가 애초 고용주와 회사에 혜택이 돌아가는 ‘유연성’의 강조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긱 경제’(기업이 필요에 따라 임시직이나 계약직을 고용하는 것)의 한 형태인 재택 콜센터가 한 예다. 책은 미국의 콜센터 직원들이 집에서 편안하게 일하며 업무 시간을 스스로 정하는 ‘자유’를 누리는 듯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사무실 임대료와 공과금을 지불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꼬집는다. 미국의 단편적인 사례지만, 책은 우리가 ‘맛 본’ 원격근무가 얼마나 위험한 요소를 내포하는지 일러주며, 자칫 재택이 가능한 수많은 직업군이 어두운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이는 ‘희망’을 품은 경계심 이기도 하다. 저자들은 결국 기술의 발달과 개인 삶의 질 향상, 기업의 최대 이윤 추구 등 지금 상황에선 모두가 ‘윈-윈’ 할 수 있는 ‘노동의 미래’로 ‘원격근무’는 유효하고, 또 바람직하며, 거스를 수도 없다고 역설한다. 특히, 디지털화로 인해 편리와 편의만큼이나 업무량이 급증한 수많은 지식 노동자들에게는 ‘유연근무제’는 유일한 가능성이다. 일과 삶의 균형, 그리고 지속가능성을 모색하는 통로로서 말이다. 다만, 책은 이를 위한 실행 가이드라인이나 체크리스트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일과 관련한 ‘유연성’ ‘기업 문화’ ‘사무실 테크놀로지’ ‘공동체’라는 4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그동안 새로운 근무 방식을 시도한 사례를 취재해 실었으나 미국의 빅테크와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한 사례는 한국 실정에 적용하기에 무리가 있다. 게다가, 성공이라 할 만한 사례도 별로 없다. 눈에 띄는 건 직원 60명의 한 소프트웨어 회사의 직원들이 독자적인 스케줄로 움직이며, 원격 근무로 절약되는 시간에 골프, 자녀 양육, 하이킹 등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 정도다.

그러나 이 책은 노동자들이 ‘일’과 ‘일에 쓰는 시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것이고, 이는 보다 직원 친화적인 ‘유연 근무’를 향해 가는 ‘한걸음’이다. 저자들은 ‘원격근무’에서 고정해야 하는 것과 유연해야 할 것의 구분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원격근무’의 도입보다 급선무인 것으로 ‘업무 개념 자체를 재정립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일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만큼, 사람을 대하는 일의 태도도 중요하다는 것. 이를 통해 우리는 부단한 ‘생산성’의 쳇바퀴에서 내려올 수 있고, 번아웃과 탈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책에서 단 하나를 얻고, 오래 간직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일은 좋고도, 싫다. 일은 해야 하지만, 출근은 싫다. 이런 대다수 평범한 우리, 직장인 동지들은 책의 ‘선언’과도 같은 제목에 마음을 뺏기고, 묘수라도 있을 법한 부제(‘번아웃과 이직 없는 일터의 비밀’)에 심장이 뛴다. 그러나 책은 장밋빛 미래 대신 생산성 문화에 갇힌 지식 노동자들의 현재와 (만일 이대로라면) 더욱 짙게 드리워질 어두운 그늘을 우려하는 것에 대부분을 할애하고, 또 전심을 다한다. 이는 후반부에 실린, 두 통의 ‘편지’에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관리자들에게 드리는 최종 당부’와 ‘노동자들에게 드리는 글’이 그것이다. 두 저자의 방대한 취재량과 경험이 촘촘하게 엮인 책이 의욕만큼 잘 읽히지 않는다면, 여기부터 읽는 것도 괜찮다. 또한, 이 두 편의 글은, 한국 독자들이 느낄 이질감, 즉 비슷하지만 우리와 꼭 일치할 수는 없는 미국의 기업 운영과 노동 형태, 그에 대한 감각 등 아쉬움을 해소해 주는 역할을 한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세상과 어떻게 소통하고 싶고 무엇을 위해 싸우고 싶은가’ 등 저자들이 마지막에 던지는 질문들은 어느 나라, 어떤 기업에서 무엇을 하든 관계없이, ‘일’을 통해 자기 가치를 규정할 수밖에 없는 이 시대, 지구 위 모든 ‘지식 노동자’들의 ‘기쁨과 슬픔’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하고, 근원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348쪽, 1만85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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