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 철망이 ‘뭉게구름’으로… 차가운 금속, 불을 만나 생명력을 얻다[세계로 가는 K-조각의 미래]

2023. 6. 9.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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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카페 - 세계로 가는 K - 조각의 미래 (2) 김재각의 회화적 조각
스폿 용접기로 철사 섬세하게 이어붙여 실타래처럼 표현… 공기중에 드로잉하듯 원하는 형상 만들어
와이어 뭉치가 물감과 만나 한 폭의 그림 되기도… 추상과 구상·조각과 회화 오가는 독특한 작품 세계
‘즉흥 형태’ (2022), 뭉쳐서 보관하고 펼쳐서 재조합할 수 있는 가변형의 스테인리스 와이어 조각. 탄성으로 인해 복원력이 강하기 때문에 의외로 견고하여 형태가 잘 유지된다.

재료의 표현력과 물성이 중요한 조각에 있어서, 철의 사용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전통적인 구상 조각 기술은 나무나 돌 같은 덩어리를 깎아내는 조각(carving)과 흙이나 석고를 붙여가면서 형태를 만들어가는 소조(modelling) 그리고 점토로 만든 모형을 석고로 틀을 떠낸 다음 쇳물을 부어 주조하는 캐스팅(casting)이 대표적이다.

1930년대에 최초로 철을 조각에 도입한 사람은 바로 20세기를 대표하는 화가 피카소였다. 구상과 추상의 중간이라고 할 수 있는 입체주의의 창시자인 그는 철사와 철판을 용접해서 자신의 회화 작품의 입체 버전을 만들었다. 이러한 방식은 기존보다 훨씬 더 가뿐하고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했기 때문에 조각이 구상에서 추상으로 나아가는 촉진제가 됐다.

작가 김재각이 철사를 용접하여 작업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스테인리스 와이어를 스폿 용접기로 섬세하게 이어 붙여 끊임없는 실타래를 만들고, 마치 공기 중에 드로잉하듯이 원하는 형상을 즉각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러한 작업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차갑고 견고한 금속이 뜨거운 불을 만나 예술 작품으로서 새로운 표현성과 생명력을 얻는다는 점이다.

이처럼 거의 회화적 표현이 가능한 용접이라는 행위와 열에 의해 변하는 금속의 물성에 매료된 까닭에, 김재각의 작업은 스테인리스 와이어를 뭉치거나 펼치고, 철망을 겹겹이 이어 붙이는 작업이 주를 이룬다.

이 중 ‘즉흥 형태(Instant Form)’와 ‘즉흥 조각(Instant Sculpture)’ 시리즈는 기본적인 형태가 하늘의 뭉게구름을 닮았다. 미술관 전시장에서, 지하보도에서, 야외공원에서 마치 주변의 공기를 머금은 수증기처럼 땅에서 피어오르거나 천장에 떠 있는 형상은 영락없는 구름이다. 때로는 와이어 뭉치가 물감과 만나서 마치 드리핑 페인팅 같은 한 폭의 추상화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뭉글뭉글한 덩어리 속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사물의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다중적 환영-산 #1’(2016), 산으로 둘러싸인 호수 풍경을 마치 한 폭의 수묵화처럼 담아낸 작품. 철망을 덧이어 중첩된 산의 굴곡과 물에 비친 그림자를 표현했다.

또 다른 시리즈인 ‘다중적 환영(Multiple Illusion)’은 철망을 겹겹이 중첩시킨 것이다. 언뜻 추상적으로 보이는 작품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꽃잎이나, 산봉우리의 형상을 유추해낼 수 있다. 이처럼 추상과 구상, 조각과 회화를 오가는 김재각의 작품은 그 어떤 범주로 규정하기 힘들다. 이는 주어진 조건에서 학습된 방식으로 살아가기를 거부하고 늘 새롭고 남다른 길을 찾아 일탈을 감행했던 자신의 삶의 태도와 상통한다.

작가는 작업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요소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자연과 함께했던 유년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그는 시골 분교 교사였던 부모님 덕분에 읍내에서도 비포장도로로 두 시간을 더 가야 하는 오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또래 친구가 없어 형, 누나들과 함께 수업을 받았던 그는 방과 후 산에서 놀며 시간을 보냈다. 상상력이 풍부했던 어린아이에게 나뭇가지는 마술봉이 되고, 산토끼는 술래잡기 친구였다. 지금도 짙은 안개 속을 홀로 산책하던 강원 영월군의 새벽과 뒷동산에서 부모님의 퇴근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바라보던 하늘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의 조각이 추상적이면서도 구름이나 산봉우리 같은 형상을 연상시키는 것은 어린 시절을 풍요롭게 해준 자연의 기억 때문이다. 자연은 남다른 아이의 감성과 상상력을 있는 그대로 품어준 큰 스승이었다.

‘다중적 환영-산 #5’ (2017), 마치 꽃잎 또는 괴석을 연상시키는 작품으로 중국 영석에 영감을 받았다. 어릴 적 기억 속의 자연 풍경을 되살린 ‘산 시리즈’의 하나로, 산봉우리를 해체한 후 재조합한 형상을 철망을 겹겹이 이어 붙여 완성했다.

이처럼 넉넉한 자연의 품에서 자란 아이가 제도권 교육의 틀에서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다. 지역 명문고에서 중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던 모범생 소년은 어느 날 뒷자리에서 바라본 교실이 마치 공장처럼 보이고 자신이 기계 부품 같다는 느낌이 들어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학교를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마침 그의 재능을 발견한 미술 교사의 권유로 미술학원을 등록하게 된다.

이후 그는 한 차례 전공 선택에 실패를 겪으면서도 마침내 조소과에 진학하며 자신의 길을 찾게 된다. 미대 진학 후에도 사춘기 시절 ‘스페셜리스트’라는 별명이 따라붙을 정도로 남과 다른 유별난 행동은 계속됐다. 거의 강박처럼 새로운 시도가 이어졌다. 예를 들면, 일주일 동안 눈을 가리거나 맨발로 다니면서 다른 감각을 경험했다. 학과 수업과 별개로 매일 개인 프로젝트를 하느라 실기실이나 건물 밖에 고철이나 나뭇가지 등 쓰레기 더미를 쌓아놓아 교수와 학생들에게 원성을 듣기도 했다. 대학 시절의 작업은 재료의 물성을 실험하는 과정 중심의 개념적인 작업 위주였다. 디지털카메라가 상용화되기 이전이라 당시 작업은 보존도 기록도 없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평범을 거부하고 남다른 행동을 일삼던 일탈의 DNA가 예술로 발현된 것은 분명하다.

2010년도 국비 유학생으로서 중국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도 작가로서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중국에서 가장 큰 야외조각공원을 갖춘 창춘(長春)시에 소재한 동북사범대의 미술 실기실은 서울에 비해 현저히 낙후된 장비와 열악한 시설이었다. 게다가 매일 8시간이나 인체 모델링에 기반한 보수적인 조각 수업이 이뤄졌다. 하지만 정작 그를 성장시킨 경험은 학교 밖에 있었다. 2010년대 초·중반은 중국 미술이 10조 원 규모로 확장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였다. 작가는 중앙미술학원 등 일부 진보적인 학교를 중심으로 형성 중인 동시대 미술 현장을 가까이하며 한국보다 더 글로벌한 중국 작가들의 행보에 주목했다. 소속 집단은 위계와 서열이 지배적인 보수적 학교파였으나, 준거집단은 동시대성을 흡수하며 글로벌 미술 시장에서 무섭게 떠오르는 진보적인 작가군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조각계의 거물이었던 스승은 새로움에 대한 갈증과 보수적 현실에 갈등하던 작가에게 이례적으로 실험적 작업을 허용했다. 심지어 해외 유학생의 진보적 태도가 학교에 새로운 자극이 된다며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작가에게 또 하나의 큰 스승이던 인샤오펑 교수는 수십 권의 저서를 출판한 학자이자 어떤 상황에서도 매일 드로잉을 빠뜨리지 않는 성실한 노동자였다. 이처럼 중국 유학을 통해 미술계의 양극단을 경험하며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 작가는 새로운 기술과 표현을 추구하던 조각가에서 삶의 철학을 수행하는 예술가로 성장하게 된다.

‘즉흥 조각 190501’(2019), 스테인리스 와이어 조각을 매달아 놓은 채 그 위로 물감을 뿌리거나 덩어리가 출렁이며 자국을 남기는 기법으로 회화와 조각적 요소를 결합시킨 작품.

김 작가가 성실한 모범 학생에서 일탈하여 미술의 길을 택하고, 중국에서의 새로운 경험을 통해 자신을 ‘예술가’로 다시 인식하게 된 과정은 철학자이자 시인 니체가 말한 정신의 3단계를 떠올린다. 자라투스트라의 목소리를 빌려 규율대로 살아가는 복종의 단계를 낙타, 의무를 부정하고 스스로 자유를 창조하는 단계를 사자, 그리고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단계를 유희하는 아이에 비유한 것이다. 자기표현의 기술이었던 조각에서 더 나아가 자신을 품어주던 자연을 통해 삶의 원리를 성찰하고 이를 감각적으로 유희하는 수행적 작업은 니체가 말한 궁극의 단계에 가깝다. 차가운 금속에 열을 가해 만들어낸 다중적 추상 이미지 속에서 우리는 산과 숲과 물의 모습을 발견한다. 즉, 작가의 행위가 물성의 변화를 일으키고 감상자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자연의 모습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통해 물질과 감각의 순환이 이뤄지는 것이다. 김재각의 작업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하다.

인간의 감각과 진실을 디지털 매체와 알고리듬 인공지능으로 대체하는 피상적인 세상에서 원초적인 물성, 노동의 즐거움, 그리고 자연의 감각을 되살리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니체가 말한 ‘인류를 어린아이답게 만드는’ 예술가의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임근혜 아르코미술관장

■ 김재각 작가는

1979년생. 시골 분교 교사였던 부모님을 따라 강원 영월군에서 나고 자랐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이사 간 충북 제천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미술 교사의 권유로 미술을 시작했다. 우수한 작업 환경을 갖춘 서울시립대 환경조각학과에 입학하여 다양한 조각 재료와 기술을 배웠다. 그중 작가가 주력한 것은 용접 조각인데, 열을 가해 형태를 변화시키는 용접 행위와 철의 물성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교수 추천으로 중국 정부 장학생으로 뽑혀 중국 창춘(長春)시에 소재한 동북사범대 예술원 조각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6년여간 중국에 체류하며 학교 안의 보수적인 아카데미 조각과 학교 밖의 진보적 동시대 미술을 함께 경험했다.

귀국 후 경남예술창작센터 입주작가를 거쳐 김포시에서 활동하다가 최근 충주호 인근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그간 꾸준히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다양한 야외 조각 프로젝트와 전시에 참여했다. 중국 최대의 조각공원을 자랑하는 창춘을 비롯하여 세 군데 야외 조각이 설치돼 있고, 국내에서는 서울국제조각페스타, 한강조각프로젝트, 창원조각비엔날레 등 굵직한 전시에 초대된 바 있다.

전통적 조각처럼 견고하고 거대한 매스가 아닌 섬세한 선과 면으로 이뤄진 그의 작품은 회화적 조각 또는 조각적 회화라고 할 수 있다. 겹겹이 포개진 철망은 부드러운 꽃잎 같은 느낌마저 주는데, 표면에 열을 가해 회화적 터치와 장식성을 더하기도 한다. 현재 3m 높이의 철망으로 이뤄진 작품을 제작 중인데 서초구의 한 복합문화공간에 설치될 예정이다.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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